왕을 낳은 명당..동작동[땅의 이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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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에 다리가 없던 시절 배는 강을 건너는 사실상 유일한 수단이었다.
한강 주요 나루 가운데 하나가 동재기나루다.
한강에 다리가 하나둘 늘어가면서 결국 나루는 설 자리를 잃었다.
예나 지금이나 한강 남북을 잇는 주요 지점이 나루였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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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터 마을, 국립서울현충원 들어서면서 자취감추고
한강다리 늘어가면서 나루도 기능잃고 폐지
창빈 안씨 묘, 현충원 이장하고 손자가 왕에 올라 명당 평가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한강에 다리가 없던 시절 배는 강을 건너는 사실상 유일한 수단이었다. 배가 드나들기 시작하는 요지에는 나루가 생겼다. 한강 주요 나루 가운데 하나가 동재기나루다. 반포천이 한강으로 흘러드는 합류지에 있었다. 지금 행정 구역으로는 동작동에 속한다. 주로 경기 과천과 수원, 평택 등을 드나드는 이들이 이용했고, 나아가 호남과 충남 지역에서 한양을 오고 가는 이들로 붐비는 곳이었다.
1917년 한강인도교(현 한강대교)가 개통하면서 배는 더는 한강을 건너는 유일한 수단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동재기나루는 여전히 사람이 붐비는 교통 요지였다. 한강대교는 노량진 북단과 용산 남단을 잇는 다리였다. 여타 서울 모든 지역에서 한강대교를 이용하느니 차라리 나루를 통해 강 건너로 가는 편이 나았다.
한강에 다리가 하나둘 늘어가면서 결국 나루는 설 자리를 잃었다. 동재기나루는 1984년 동작대교가 개통하면서 아예 자취를 감추고 사라졌다. 공교롭지만 동작대교는 동재기나루가 있던 곳에 지었다. 동재기나루뿐 아니라 광나루(광진교·천호대교), 삼밭나루(잠실대교), 뚝섬나루(영동대교), 한강나루(한남대교), 서빙고나루(반포대교), 마포나루(마포대교)가, 양화나루(양화대교·성산대교)가 다 그렇다. 예나 지금이나 한강 남북을 잇는 주요 지점이 나루였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전재욱 (imfew@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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