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떠보니 오른쪽 눈에 칼이 박혀 있었다”...암살명령 33년만에 벌어진 실제사건 [나쁜 책]
검은 옷을 입은 한 청년이 무대로 뛰어듭니다. 청년의 손엔 예리한 칼이 쥐어져 있었습니다. 무대 위에 서 있던 노인은 죽음을 직감합니다.
청년은 암살자였고, 노인은 목과 배가 찔립니다. 15곳의 자상(刺傷). 바닥에 쓰러진 노인이 잠시 정신을 차렸을 땐 오른쪽 눈에 칼이 박힌 채였습니다.
1988년 루슈디가 출간한 소설책은 수십만 명의 무슬림 시위를 촉발했습니다. 또 영국과 인도의 ‘외교 단절’을 불러왔습니다. 30년 넘는 과거의 일이지만 ‘루슈디 논쟁’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오늘은 루슈디가 한 젊은 무슬림의 칼에 찔리고도 살아남아 2024년 4월 16일 출간한 회고록 ‘KNIFE(칼)’입니다. 피가 튀고 뼈가 보이는 회고록 첫 장을 함께 펼쳐 봅니다.
유일신 알라를 부정하고, 경전 코란의 정신을 훼손했다는 혐의를 받은 책 ‘악마의 시’는 이슬람 최고 종교 지도자에 의해 ‘절대 금서’로 지정된 책입니다. 무슬림 최고 지도자는 루슈디를 포함해 이 책을 출간한 모든 이들의 암살을 명령했고, 루슈디는 평생을 숨어 지내야만 했습니다.
루슈디 살인 명령에는 유효기간이 없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다 정말로 2022년 미국의 한 강연장으로 24세 무슬림 청년이 잠입했습니다. 검은 옷에 검은 마스크를 쓴 청년이 달려들었는데, 원형극장의 수천 명 청중은 처음엔 그게 ‘연출된 가짜 퍼포먼스’인 줄 알았습니다. 하필 그날 루슈디의 강연 주제가 ‘작가를 위협으로부터 보호하는 법’이었거든요.
하지만 그건 실제 상황이었습니다. 목부터 찔린 루슈디는 셔츠가 붉은 액체로 젖었고 왼손 힘줄과 대부분의 신경이 끊어졌습니다. 또 얼굴 위쪽과 입 왼쪽, 가슴, 허벅지를 깊이 찔립니다.청중은 그제서야 진짜 상황임을 알게 되지요.
청년과 루슈디가 ‘접촉’한 시간은 단 27초. 길지도, 그렇다고 짧지도 않은 시간 동안 루슈디는 죽음 앞에 섭니다. 핏물이 솟구치는 목을 누군가가 엄지손가락으로 눌렀고, 그는 헬기로 이송됩니다. 전 세계 외신은 ‘살만 루슈디 피습’을 생중계로 보도합니다.
◎ [피습 당일 풍경] “…그가 내 턱 오른쪽을 매우 세게 때리는 것을 느꼈다. 처음에는 펀치를 맞은 줄만 알았다. 그러나 손에는 칼이 쥐어져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목에서 피가 쏟아졌고, 셔츠에 액체가 튀는 걸 느꼈다. 모든 힘줄과 대부분의 신경이 절단됐다. (중략) 그리고… 눈에 칼이 박혀 있었다.”
◎ [인간 폭력의 굴레] “…모든 인간은 안정된 세계의 그림 속을 살아가고 있다. 학교는 교육을 하는 장소이고, 회당은 예배를 드리는 장소다. 또 슈퍼마켓은 물건을 사는 곳이며, 무대는 공연을 위한 공간이다. 폭력은 ‘안정된 그림’을 깨뜨려 버린다. 현실은 해체되고 이해할 수 없는 것들로 대체된다.”
인도 영화계 슈퍼스타 지브릴과 친영파(親英派) 성우 살라딘이 테러리스트에 의해 납치된 점보 제트기 AI420편의 폭발로 낙하산도 없이 2만9000피트 상공에서 추락합니다. 그런데 두 사람은, 지상에 떨어진 뒤에도 극적으로 살아납니다. 이후 지브릴은 천사로, 살라딘은 뿔이 난 악마로 변합니다.
문제는 천사 지브릴의 꿈을 다룬 부분이었습니다. 꿈 속에서, 천사 지브릴이 예언자 마훈트(Mahound)를 기술한 부분이 특히 문제가 됐습니다. 잠시만 깊이 들어가 볼까요.
◎ “…알라께서 라트와 우자와 마나트를 승인해주시기를 바라는 겁니다. 그리고 그 대가로 우리에 대해서도 묵인하겠다고, 아예 공식적으로 인정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소설 ‘악마의 시’ 상권, 158~159쪽)
이게 무슨 말이냐면, 이슬람의 신인 알라가 현지의 고대 종교의 세 여신(라트, 우자, 마나트)를 승인하면 현지 주민들도 이슬람을 공식 종교로 인정하겠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이슬람교는 절대 유일신(알라)의 종교입니다. 따라서 알라께서 ‘현지 종교’인 세 여신을 승인한다는 건 다신교가 되므로, 유일신 교리를 흔들고 정면으로 부정하는 모양새가 됩니다. 신앙의 측면에서 본다면 이건 ‘교리의 간음(姦淫)’으로 간주될 위험한 상상이었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세계 여러 종교가 토착 종교와 유입 종교의 융합에서 비롯됐다는 사실 역시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처럼 블랙코미디에 가까운 소설 ‘악마의 시’는 우주와 종교의 탄생, 선악의 문제, 그리고 인간의 무관심과 조롱을 현대를 무대 삼아 질문하면서 우리 시대 종교의 여러 금기를 풍자합니다. 책을 읽어보면 살만 루슈디가 ‘지독할 정도의 입담을 가진 광기의 수다꾼’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각 문장이 웃음과 패러디로 가득한데, 저 개인적으로는 그 자체로 종교의 권위를 해체시키는 걸작이라고 느꼈습니다.
이어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남아프리카공화국,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이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쿠웨이트, 베네수엘라, 태국, 스리랑카, 케냐, 탄자니아, 수단, 카타르도 루슈디의 이 책을 금서로 지정합니다. 특히 파키스탄에선 ‘시위대 1만명’이 타이어를 불태우면서 루슈디를 규탄합니다.
‘악마의 시’ 논쟁은 20세기 현대 문학사를 지배하는 사건으로 확전됩니다. 결정적인 클라이맥스는 이슬람 최고 종교 지도자이자 이란의 국부(國父)로 추앙받는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1900 혹은 1902~1989)의 파트와(fatwa) 선포였습니다. 파트와란 일종의 종교적 판결인데 당시 호메이니의 발언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파트와가 선포되자 영국 경찰은 루슈디를 보호합니다. 그러나 이 논쟁은 단지 한 작가의 생명을 보호하는 문제를 넘어 서방세계와 반(反)서방세계의 양자 대결구도로 확전됩니다. 이게 어느 정도의 파장이었는가 하면 영국과 인도의 국교 단절까지 거론됩니다.
바티칸 교황청도 이 사건에 성명을 냈습니다. 교황청은 “루슈디가 이슬람에 대한 예의를 어기고 불경을 범했다”고 지적하면서도 “그러나 신성불가침이 한 개인의 생명의 신성함을 무시해서도 안 된다”고 일갈했습니다. 무슬림을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서방세계의 손을 들어준 것이었지요.
하지만 문제는 이제 시작이었습니다. 파트와에서 사형 언도를 받은 인물은 ‘책을 쓴’ 루슈디만이 아니었으니까요. ‘악마의 시’ 번역가들이 세계 곳곳에서 시체로 발견됩니다.
그러다 결국 테러의 칼이 30여년, 정확히는 파트와 선포 이후 33년 6개월 만에 자신의 목을 찌르기 위해 다가온 것입니다. 루슈디가 전속력으로 달려오는 범인을 보고 “그래, 바로 당신이었구나(So it’s you. Here you are)”라고 생각했던 건, 그저 순간의 단상이 아니라 33년 세월을 응축한 한 마디였습니다.
미국 경찰에 따르면 하디 마타르는 ‘악마의 시’를 두 페이지 읽은 뒤 범행을 계획했고, 그의 집에선 3만개가 넘는 증거물들이 쏟아졌다고 합니다. 그의 범행은 단독 범행으로 보이며, 이란 등 이슬람 국가도 이 사건과 자국의 연관성을 전면 부인한 상태입니다.
루슈디는 범인의 실명을 이 책에서 거론하지 않고 대신 알파벳 ‘A’로만 지칭하는데, 제6장에서 루슈디와 ‘A’는 일문일답 형식의 대화를 이어갑니다. 가상의 대화이지만, 루슈디는 이 문답을 통해 신, 인간, 종교, 금서에 대한 사유를 이어갑니다.
―루슈디 : “당신 생각에 그게(소설 출간 등) 사람을 죽일 이유가 됩니까?”
▷ A : “당신은 작은 악마일 뿐이다. 작은 악마라도 악마는 악마니까 우쭐대지 말라.”
― 루슈디 : “신에게서 오는 모든 것이 신성하다는 것을 믿는지? 다시 말해, 그것이 거룩하다고 믿는지?”
▷ A : “신(알라)의 말씀도, 그분의 행사(行事)도 모두 거룩하다.”
― 루슈디 : “인간의 생명은 신의 선물인데, 신께서 주신 것을 인간이 빼앗는 게 어떻게 옳다는 건가? 그건 신께서 결정하실 일이 아닌가?”
▷ A : “신에 대적하는 자에게는 살 권리가 없다. 우리는 그걸 끝낼 권리가 있다.”
― 루슈디 : “지구상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신의 신을 따르지 않는다. 그들이 ‘다른 신’을 따른다면 당신에게 그것도 끝낼 권리가 있다는 건가? 20억 명의 사람들만이 당신의 신을 따른다. 나머지 60억 명, 그들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 A : “당신은 악마처럼 속임수를 쓰고 있다. (당신 같은) 무신론자는 가장 낮은 것 중에 낮다. 당신은 내게 말을 걸 자격조차 없다.”
A는 사실상 무기징역 이상의 실형이 확실하며, 아마도 사형선고를 받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혹 무기징역 선고 후 훗날 감형을 받더라도, 본인 사망 전에는 출소하기가 힘들 겁니다.
그럼에도 ‘악마의 시’를 압축하는 단일한 주제는 이 책이 ‘종교의 절대성’에 대해 질문하면서 풍자와 패러디의 힘으로 신앙적 의문을 던지는 작품이란 점입니다. 2년 전 루슈디 피습 직후 ‘악마의 시’를 우리 말로 옮긴 김진준 번역가와 통화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나눴던 김 번역가의 말을 옳겨적어 봅니다.
한 사람의 생명과 20억명이 믿는 종교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중요할까요. 그 영원한 난제는 ‘시대의 금서’인 ‘악마의 시’를 둘러싼 이 난제는 1000년이 지나도 풀리지 않을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작가 루슈디가 은유하는 칼은 한 테러범의 칼만을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KNIFE’의 한 부분을 깊게 읽어볼까요.
◎ “…칼은 도구였고 우리가 그것을 사용함으로써 의미를 얻는다. 언어도 마찬가지였다. 언어는 칼이었다. 그것(언어라는 칼)은 세상을 열 수 있고 그 의미, 내부 작동, 비밀을 드러낼 수 있다. 그 진실, 그것은 하나의 현실에서 다른 현실로 전환될 수 있다. 언어는 나의 칼이었다. 만약 내가 뜻밖의 칼싸움에 휘말렸다면 아마도 ‘언어’라는 칼 때문이었을 것이다.”
언어는 세상의 비밀을 들추고 전혀 다른 세계, 저 너머의 세상을 우리에게 보여줄 수 있다고 그는 봅니다. 언어로 세상을 베고 찌르면서 우리는 현실의 외피를 벗어던지고 세상과 인간의 본질로 들어가게 됩니다. 겹겹의 굴레를 찢고 나아가기, 그것을 인간은 자유라고 불렀고, 그 자유만이 인간을 행동하고 발화하게 만들었습니다. 루슈디는 그 과정에서 자신의 펜을 칼이라고 부른 것이지요. 그게 ‘악마의 시’ 논쟁이 우리에게 주는 하나의 강력한 교훈이 아닐까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루슈디는 바로 이 지점에서 언어의 힘, 문학과 예술의 힘을 간파해 냅니다. 그의 예술론을 압축하는 이 책 ‘KNIFE’ 최고의 문장을 옮겨적으며 글 맺습니다.
◎ “…중요한 건 예술이 전통에 도전한다는 것이다. 이를 빌미로 예술을 거부하거나 비방하는 것은 예술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중략) 시인 오비디우스는 아우구스투스에 의해 추방됐지만 오비디우스의 시(詩)는 로마 제국보다 오래 지속되었다.”
※ 다음주에는 엑토르 오에스테르엘드의 《체 게바라》를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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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서라는 나침반이 가리키는 불화의 방향은 소수의 권력자가 탈취한 이념이었다. 금서의 작가들은 복종하지 않음으로써 세계와 독자에게 자유를 선물하고자 했다.” (『나쁜 책』, 글항아리,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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