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떠보니 오른쪽 눈에 칼이 박혀 있었다”...암살명령 33년만에 벌어진 실제사건 [나쁜 책]

김유태 기자(ink@mk.co.kr) 2024. 5. 18. 14:0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나쁜 책, 시즌2] ② 살만 루슈디 ‘KNIFE(칼)’
현대의 금서를 여행하는 [금서기행, 나쁜 책] ‘시즌2’입니다. 해로운 걸작, 불온한 명저, 필화를 겪은 세계의 금서를 여행합니다. 소장만으로 죽임을 당했던 책, 독재국가가 추방한 불온서적 등을 다룹니다. ‘금서의 역사’는 진행형입니다.

검은 옷을 입은 한 청년이 무대로 뛰어듭니다. 청년의 손엔 예리한 칼이 쥐어져 있었습니다. 무대 위에 서 있던 노인은 죽음을 직감합니다.

청년은 암살자였고, 노인은 목과 배가 찔립니다. 15곳의 자상(刺傷). 바닥에 쓰러진 노인이 잠시 정신을 차렸을 땐 오른쪽 눈에 칼이 박힌 채였습니다.

살만 루슈디는 소설 ‘악마의 시’ 저자입니다. 1988년 쓴 이 소설 때문에, 그는 평생 살해 위협을 받았습니다. 2022년 한 강연장에서 무슬림 괴한에게 눈을 찔린 그는 이듬해 한쪽 눈만 가린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대중 앞에 다시 섰습니다. 사진은 2023년 독일의 한 도서전에 참석한 루슈디. [Elena Ternovaja·Wikimedia Commons]
2022년 8월 12일 오전 11시경, 미국의 한 강연장에서 벌어진 실제 사건입니다. 노인은 바로 소설가 살만 루슈디. ‘20세기 가장 뜨거웠던 금서 논쟁’의 주인공인 그가 살인명령을 수행하러 강연장에 침입한 암살자에게 테러를 당한 겁니다.

1988년 루슈디가 출간한 소설책은 수십만 명의 무슬림 시위를 촉발했습니다. 또 영국과 인도의 ‘외교 단절’을 불러왔습니다. 30년 넘는 과거의 일이지만 ‘루슈디 논쟁’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오늘은 루슈디가 한 젊은 무슬림의 칼에 찔리고도 살아남아 2024년 4월 16일 출간한 회고록 ‘KNIFE(칼)’입니다. 피가 튀고 뼈가 보이는 회고록 첫 장을 함께 펼쳐 봅니다.

루슈디가 지난달 16일 출간한 회고록 ‘KNIFE’의 모습. ‘Meditations After an Attempted Murder(살인미수 후의 명상)’이라는 부제에서 짐작되듯이, 그가 살해 위협을 받았던 30년 넘는 세월을 돌아본 책입니다. 아직 한국어로는 출간되지 않았습니다. [김유태 기자]
‘살인 명령’을 수행하러 온 레바논 청년의 칼날
인류가 썼던 책 가운데 가장 논쟁적이었던 작품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루슈디가 1988년 발표했던 장편소설 ‘악마의 시(The Satanic Verses)’를 빼놓을 수 없을 겁니다.

유일신 알라를 부정하고, 경전 코란의 정신을 훼손했다는 혐의를 받은 책 ‘악마의 시’는 이슬람 최고 종교 지도자에 의해 ‘절대 금서’로 지정된 책입니다. 무슬림 최고 지도자는 루슈디를 포함해 이 책을 출간한 모든 이들의 암살을 명령했고, 루슈디는 평생을 숨어 지내야만 했습니다.

루슈디 살인 명령에는 유효기간이 없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다 정말로 2022년 미국의 한 강연장으로 24세 무슬림 청년이 잠입했습니다. 검은 옷에 검은 마스크를 쓴 청년이 달려들었는데, 원형극장의 수천 명 청중은 처음엔 그게 ‘연출된 가짜 퍼포먼스’인 줄 알았습니다. 하필 그날 루슈디의 강연 주제가 ‘작가를 위협으로부터 보호하는 법’이었거든요.

하지만 그건 실제 상황이었습니다. 목부터 찔린 루슈디는 셔츠가 붉은 액체로 젖었고 왼손 힘줄과 대부분의 신경이 끊어졌습니다. 또 얼굴 위쪽과 입 왼쪽, 가슴, 허벅지를 깊이 찔립니다.청중은 그제서야 진짜 상황임을 알게 되지요.

청년과 루슈디가 ‘접촉’한 시간은 단 27초. 길지도, 그렇다고 짧지도 않은 시간 동안 루슈디는 죽음 앞에 섭니다. 핏물이 솟구치는 목을 누군가가 엄지손가락으로 눌렀고, 그는 헬기로 이송됩니다. 전 세계 외신은 ‘살만 루슈디 피습’을 생중계로 보도합니다.

루슈디 피습 당일 그의 소식은 전 세계에 생중계로 보도됐습니다. 응급조치 장면과 구급차, 헬기 이송 장면이 실시간으로 보도됐습니다. 세계 현대사 비극의 또 다른 한 장면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CNN 유튜브 영상 캡처]
루슈디 피습 직후의 무대 위 모습. 범인이 청중들에게 제압돼 끌려 나가는 가운데(왼쪽) 목숨이 위태로운 루슈디가 무대 바닥에 누워 응급조치를 받고 있습니다. 이날 강연 주제가 ‘작가를 위협으로부터 보호하는 법’이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연사인 루슈디가 무대 위에서 피습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AP·연합뉴스]
“눈 떠보니…내 오른쪽 눈에 칼이 박혀 있었다”
그러나 루슈디는, 세상의 비관에도 불구하고 결국 살아 남았습니다. 그리고 한 권의 책을 쓰기 시작하는데, 그게 바로 이 책 ‘KNIFE’입니다. 루슈디는 피습 당일 풍경, 회복 과정, 아내의 헌신, 예술의 본질, 인간 폭력의 굴레 등에 관한 사유를 이 책에 씁니다.

◎ [피습 당일 풍경] “…그가 내 턱 오른쪽을 매우 세게 때리는 것을 느꼈다. 처음에는 펀치를 맞은 줄만 알았다. 그러나 손에는 칼이 쥐어져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목에서 피가 쏟아졌고, 셔츠에 액체가 튀는 걸 느꼈다. 모든 힘줄과 대부분의 신경이 절단됐다. (중략) 그리고… 눈에 칼이 박혀 있었다.

◎ [인간 폭력의 굴레] “…모든 인간은 안정된 세계의 그림 속을 살아가고 있다. 학교는 교육을 하는 장소이고, 회당은 예배를 드리는 장소다. 또 슈퍼마켓은 물건을 사는 곳이며, 무대는 공연을 위한 공간이다. 폭력은 ‘안정된 그림’을 깨뜨려 버린다. 현실은 해체되고 이해할 수 없는 것들로 대체된다.”

루슈디의 ‘KNIFE’에는 그날 피습 상황과 그간 살해 위협을 당하면서 소설을 썼던 삶의 기록이 자세합니다. 루슈디는 이 책에서 끊임없이 묻습니다. “왜 지금인가?(Why now?)” 33년 만에 수행된 살인이 그에게는 평생 따라다녔던 가장 무거운 짐이었을 겁니다.
루슈디는 이날 피습으로 오른쪽 눈을 잃습니다. 찔린 눈의 붓기가 너무 심해서, 그를 치료한 의사들은 그의 눈꺼풀이 남아 있는지조차 확신을 못하지요. 눈을 그냥 놔둬야 할지, 세라믹 안구(의안)를 제작할지를 두고 고민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살아남았고, 결국 대중 앞에 섰습니다.
족발·베이컨을 허겁지겁 삼킨 신의 사도(使徒)
도대체 소설 ‘악마의 시’가 무엇이길래, 살만 루슈디는 소설을 쓰고 33년간 살해 위협을 받았을까요.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악마의 시’가 처음 발표됐던 1988년의 시간으로 되돌아가야 합니다.
루슈디의 소설 ‘악마의 시’ 2022년 문학동네판(왼쪽)과 2001년 문학세계사판의 표지. 두 판본은 김진준 번역가에 의해 언어의 옷을 갈아입었지만 21년의 격차가 있습니다. 이 글에 적힌 원고는 문학세계사판을 저본 삼았습니다.
‘악마의 시’는 그야말로 종교의 심장을 건드리는 책입니다.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두 남성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장면에서 ‘악마의 시’는 시작됩니다.

인도 영화계 슈퍼스타 지브릴과 친영파(親英派) 성우 살라딘테러리스트에 의해 납치된 점보 제트기 AI420편의 폭발로 낙하산도 없이 2만9000피트 상공에서 추락합니다. 그런데 두 사람은, 지상에 떨어진 뒤에도 극적으로 살아납니다. 이후 지브릴은 천사로, 살라딘은 뿔이 난 악마로 변합니다.

루슈디의 홈페이지 모습. 그는 ‘한밤의 아이들’로 부커상을 수상하면서 세계적인 소설가로 인정받았지만 ‘악마의 시’로 인생 최대의 위기를 겪습니다. [살만 루슈디 웹사이트]
동양계 독자, 특히 한국인인 우리가 이 책을 읽어보면 ‘이게 뭔 소리지?’ 싶어지는 것도 사실이겠지만 어렵게 생각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지브릴은 선(善)을, 살라딘은 악(惡)을 의미합니다. 비행기에서의 폭발과 추락은 아마도 우연의 빅뱅을 의미하겠지요.

문제는 천사 지브릴의 꿈을 다룬 부분이었습니다. 꿈 속에서, 천사 지브릴이 예언자 마훈트(Mahound)를 기술한 부분이 특히 문제가 됐습니다. 잠시만 깊이 들어가 볼까요.

“…알라께서 라트와 우자와 마나트를 승인해주시기를 바라는 겁니다. 그리고 그 대가로 우리에 대해서도 묵인하겠다고, 아예 공식적으로 인정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소설 ‘악마의 시’ 상권, 158~159쪽)

이게 무슨 말이냐면, 이슬람의 신인 알라가 현지의 고대 종교의 세 여신(라트, 우자, 마나트)를 승인하면 현지 주민들도 이슬람을 공식 종교로 인정하겠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이슬람교는 절대 유일신(알라)의 종교입니다. 따라서 알라께서 ‘현지 종교’인 세 여신을 승인한다는 건 다신교가 되므로, 유일신 교리를 흔들고 정면으로 부정하는 모양새가 됩니다. 신앙의 측면에서 본다면 이건 ‘교리의 간음(姦淫)’으로 간주될 위험한 상상이었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세계 여러 종교가 토착 종교와 유입 종교의 융합에서 비롯됐다는 사실 역시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아라비아 반도의 고대 종교의 세 여신인 라트, 우자, 마나트의 조각상. 이슬람이 창시되기 전인 2세기경의 작품입니다. [Wikimedia Commons]
더구나 마훈트라는 예언자, 어딘지 모르게 이름이 익숙하지 않으신가요. 마훈트는 이슬람교 창시자인 예언자 마호메트(무함마드)의 이름을 떠올리게 합니다. 무슬림 입장에선 신성모독에 가까운 문장으로 이해됐습니다.

이처럼 블랙코미디에 가까운 소설 ‘악마의 시’는 우주와 종교의 탄생, 선악의 문제, 그리고 인간의 무관심과 조롱을 현대를 무대 삼아 질문하면서 우리 시대 종교의 여러 금기를 풍자합니다. 책을 읽어보면 살만 루슈디가 ‘지독할 정도의 입담을 가진 광기의 수다꾼’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각 문장이 웃음과 패러디로 가득한데, 저 개인적으로는 그 자체로 종교의 권위를 해체시키는 걸작이라고 느꼈습니다.

“용감한 자여, 그(루슈디)를 지체없이 죽여라”
‘악마의 시’ 발표시점은 1988년 9월이었습니다. ‘고작’ 책 한 권이 낳은 파장은 지금의 기준으로도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일단, 책의 중심인물인 지브릴의 국적인 이 책의 수입을 최초로 전면 금지합니다(1988년 10월 5일). 무슬림을 의식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어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남아프리카공화국,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이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쿠웨이트, 베네수엘라, 태국, 스리랑카, 케냐, 탄자니아, 수단, 카타르도 루슈디의 이 책을 금서로 지정합니다. 특히 파키스탄에선 ‘시위대 1만명’이 타이어를 불태우면서 루슈디를 규탄합니다.

‘악마의 시’ 논란이 불거지면서 1989년은 전 세계 곳곳에서 “루슈디를 죽여라”라고 외치는 시위가 이어집니다. 루슈디는 은닉해야 했고, 영국 경찰이 그를 보호합니다. 1989년 3월 유럽 내 무슬림들이 루슈디를 “악마 루슈디”로 지칭하며 행진하는 모습. [Rob Croes·Anefo·Wikimedia Commons]
1989년 3월 유럽 내 무슬림들이 루슈디를 “악마 루슈디”로 지칭하며 규탄하는 집회의 모습. [Rob Croes·Anefo·Wikimedia Commons]
상황이 정말로 심각해지자 영국 항공사 브리티시에어웨이(BA)는 인도 지역의 항공편 화물의 정밀 검색을 강화했으며, 규탄집회가 확산되자 미국 서점 왈든북스, 반스앤노블은 책 ‘악마의 시’를 매대에서 아예 치워버립니다. 테러 위험 때문이었습니다.

‘악마의 시’ 논쟁은 20세기 현대 문학사를 지배하는 사건으로 확전됩니다. 결정적인 클라이맥스는 이슬람 최고 종교 지도자이자 이란의 국부(國父)로 추앙받는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1900 혹은 1902~1989)의 파트와(fatwa) 선포였습니다. 파트와란 일종의 종교적 판결인데 당시 호메이니의 발언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이란 이슬람의 최고 종교지도자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의 생전 모습. 그는 루슈디에 대한 살해 명령인 파트와를 선포하면서 외교가를 뒤흔들었습니다. 그는 파트와 선언 이후 몇 개월 뒤 심장마비로 사망하는데, 파트와는 선포한 자만이 거둘 수 있다는 이유로 루슈디에 대한 살해 명령은 지속됐습니다. [Mohammad Sayyad·Wikimedia Commons]
“…나는 세계 어디에 있든 모든 용감한 무슬림들이 지체 없이 그들(‘악마의 시’를 출간한 모든 출판 관계자들)을 죽여 앞으로는 누구도 감히 무슬림의 신성한 신앙을 모욕하지 못하도록 촉구합니다. 그리고 이 때문에 죽는 사람은 누구나 순교자가 될 것입니다.” (1989년 2월 14일, 호메이니는 이 발언을 정식 파트와로 보지 않았다는 해석도 있는데, 세상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파트와는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이 발언입니다.)

파트와가 선포되자 영국 경찰은 루슈디를 보호합니다. 그러나 이 논쟁은 단지 한 작가의 생명을 보호하는 문제를 넘어 서방세계와 반(反)서방세계의 양자 대결구도로 확전됩니다. 이게 어느 정도의 파장이었는가 하면 영국과 인도의 국교 단절까지 거론됩니다.

바티칸 교황청도 이 사건에 성명을 냈습니다. 교황청은 “루슈디가 이슬람에 대한 예의를 어기고 불경을 범했다”고 지적하면서도 “그러나 신성불가침이 한 개인의 생명의 신성함을 무시해서도 안 된다”고 일갈했습니다. 무슬림을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서방세계의 손을 들어준 것이었지요.

1989년 호메이니의 루슈디 파트와 선포 이후 33년 만인 2022년 루슈디는 결국 무슬림 청년에 의해 피습됐습니다. 사진은 루슈디 피습 이후인 2022년 8월 미국 뉴욕의 한 도서관앞에서 루슈디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모인 모습. [AP·연합뉴스]
(좀 곁길로 새는 것 같긴 합니다만, 여기서 특이하게도 당시 북한의 김일성까지 루슈디 논란에 한 마디를 보탰다고 외신은 기록합니다. 김일성은 당시 이라크와 전쟁을 치렀던 이란을 지원하기 위해 이란을 방문한 자리에서 ‘악마의 시’를 “거대한 악마(미국)와 인종주의자들의 합작품”이라고 비난했습니다.)
일본·이탈리아·튀르키예… 번역가들이 죽다
파트와 선포 이후 루슈디의 목에는 150만달러의 현상금(이후 300만달러, 600만달러로 증액)이 걸렸습니다. 그 사이, 그의 소설 ‘악마의 시’를 출간했던 출판사 펭귄북스는 협박전화에 시달렸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제 시작이었습니다. 파트와에서 사형 언도를 받은 인물은 ‘책을 쓴’ 루슈디만이 아니었으니까요. ‘악마의 시’ 번역가들이 세계 곳곳에서 시체로 발견됩니다.

‘악마의 시’ 일본어 번역가 이가라시 히토시 교수는 1991년 사망한 채로 발견됩니다. 루슈디 논쟁의 후폭풍이었습니다. [dailyshincho.jp]
‘악마의 시’ 일본어 번역가인 이가라시 히토시 교수는 1991년 7월 13일 자신이 재직중이던 쓰쿠바대학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됩니다. 이미 죽은 지 이틀이 지난 상태였는데, 이는 처형에 가까웠습니다. 범인은 청소부였다고 전해지는데 외신 자료를 검색해보면 목이 잘렸다는 설명도 있고, 목이 수차례 찔렸다는 설도 있습니다. 그러나 파트와의 여파로 그가 사망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합니다.
‘악마의 시’ 이탈리아어 번역가 에토레 카프리올로는 칼에 찔려 중상을 입었습니다. [Wikimedia Commons]
히토시 교수가 사망하기 바로 열흘 전에는(7월 3일), ‘악마의 시’ 이탈리아 번역가 에토레 카프리올로가 칼에 찔려 중상을 입었습니다. 범인은 밀라노에 위치한 그의 집을 찾아가 “살만 루슈디의 집 주소를 대라”고 압박했습니다.
‘악마의 시’를 튀르키예에서 출간하려 했던 학자 아지즈 네신은 호텔 방화사건으로 집단 사망합니다. [Bright estrellas·Wikimedia Commons]
그로부터 2년이 지난 1993년 7월, 튀르키예의 한 호텔에서는 끔찍한 방화사건이 발생해 37명이 한 자리에서 동시에 집단 사망합니다. 희생자 중 한 명은 터키에서 ‘악마의 시’를 출간하려 했다가 무슬림에게 맹비난을 받았던 아지즈 네신이 있었습니다. 그의 죽음의 원인이 파트와라는 건 정설입니다.
“그래서, 그게 사람을 찔러 죽인 이유입니까?”
따라서 루슈디의 이번 회고록 ‘KNIFE’는 저 긴 세월의 수많은 죽음을 관통한 문장인 것이지요. 루슈디 자신은 결국 살아남았지만 그의 소설 ‘악마의 시’는 예술계뿐 아니라 외교가와 정치권을 발칵 뒤집었고 그 과정에서 소중한 사람들을 잃어야 했습니다.

그러다 결국 테러의 칼이 30여년, 정확히는 파트와 선포 이후 33년 6개월 만에 자신의 목을 찌르기 위해 다가온 것입니다. 루슈디가 전속력으로 달려오는 범인을 보고 “그래, 바로 당신이었구나(So it’s you. Here you are)”라고 생각했던 건, 그저 순간의 단상이 아니라 33년 세월을 응축한 한 마디였습니다.

회고록 ‘KNIFE’은 총 8개 장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루슈디가 자신을 찌른 테러범과 가상 대화를 진행하는 제6장 ‘The A.’입니다. [김유태 기자]
테러범의 이름은 하디 마타르. 24세인 그는 레바논 출신으로 현장에서 검거됐습니다.

미국 경찰에 따르면 하디 마타르는 ‘악마의 시’를 두 페이지 읽은 뒤 범행을 계획했고, 그의 집에선 3만개가 넘는 증거물들이 쏟아졌다고 합니다. 그의 범행은 단독 범행으로 보이며, 이란 등 이슬람 국가도 이 사건과 자국의 연관성을 전면 부인한 상태입니다.

루슈디는 범인의 실명을 이 책에서 거론하지 않고 대신 알파벳 ‘A’로만 지칭하는데, 제6장에서 루슈디와 ‘A’는 일문일답 형식의 대화를 이어갑니다. 가상의 대화이지만, 루슈디는 이 문답을 통해 신, 인간, 종교, 금서에 대한 사유를 이어갑니다.

루슈디를 살해하려 했던 범인 하디 마타르. 그는 현재 미국 교도소에 수감돼 있습니다. 루슈디는 이번 책의 제6장 ‘The A.’에서 하디 마타르(A로만 지칭)와의 가상 대화를 진행합니다. 이 책에서 가장 눈여겨 봐야 하는 대목입니다. [AP·연합뉴스]
루슈디와 ‘A’의 대화 가운데 중요한 부분만 번역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루슈디 : “당신 생각에 그게(소설 출간 등) 사람을 죽일 이유가 됩니까?”

▷ A : “당신은 작은 악마일 뿐이다. 작은 악마라도 악마는 악마니까 우쭐대지 말라.”

― 루슈디 : “신에게서 오는 모든 것이 신성하다는 것을 믿는지? 다시 말해, 그것이 거룩하다고 믿는지?”

▷ A : “신(알라)의 말씀도, 그분의 행사(行事)도 모두 거룩하다.”

― 루슈디 : “인간의 생명은 신의 선물인데, 신께서 주신 것을 인간이 빼앗는 게 어떻게 옳다는 건가? 그건 신께서 결정하실 일이 아닌가?”

▷ A : “신에 대적하는 자에게는 살 권리가 없다. 우리는 그걸 끝낼 권리가 있다.”

― 루슈디 : “지구상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신의 신을 따르지 않는다. 그들이 ‘다른 신’을 따른다면 당신에게 그것도 끝낼 권리가 있다는 건가? 20억 명의 사람들만이 당신의 신을 따른다. 나머지 60억 명, 그들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 A : “당신은 악마처럼 속임수를 쓰고 있다. (당신 같은) 무신론자는 가장 낮은 것 중에 낮다. 당신은 내게 말을 걸 자격조차 없다.”

A는 사실상 무기징역 이상의 실형이 확실하며, 아마도 사형선고를 받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혹 무기징역 선고 후 훗날 감형을 받더라도, 본인 사망 전에는 출소하기가 힘들 겁니다.

‘KNIFE’에 대한 서평 사이트 굿리즈닷컴 이용자들의 평가는 현재 4.29점입니다. 루슈디는 살해 위협조차 책으로 만들어 이를 기록화하는 대범함을 보였습니다. [굿리즈닷컴 웹사이트]
20세기의 금서 ‘악마의 시’… 그 천년의 질문은
루슈디는 이 책에서 스스로 밝히듯이 ‘무신론자’입니다. 신을 믿든 신을 믿지 않든, 누군가의 신을 모독할 권리는 없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믿는 신을 누군가가 모독했다고 해서, 그를 자의적 판단으로 ‘살해’할 권리도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루슈디의 ‘악마의 시’가 실제로 신성을 모독했는지 여부조차 학자들마다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럼에도 ‘악마의 시’를 압축하는 단일한 주제는 이 책이 ‘종교의 절대성’에 대해 질문하면서 풍자와 패러디의 힘으로 신앙적 의문을 던지는 작품이란 점입니다. 2년 전 루슈디 피습 직후 ‘악마의 시’를 우리 말로 옮긴 김진준 번역가와 통화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나눴던 김 번역가의 말을 옳겨적어 봅니다.

피습 전의 살만 루슈디. 그는 파트와 이후 은둔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사진은 2019년 촬영된 모습. [Christoph Kockelmann·Wikimedia Commons]
◎ “허구와 유머를 이해하지 못하면 문학은 성립되지 않는다. 그런 논리라면 추리소설의 살인도 금지돼야 한다. 누군가는 살인으로 가족을 잃었는데 금지와 허락, 그걸 누가 판단하겠는가. 그리고 이 소설 ‘악마의 시’는 발표되기가 무섭게 금서로 지정돼 수입·유통·출판이 금지됐다. 이슬람권에서 책을 읽은 사람이 드물었다는 얘기다. 그런 상황에서 왜 사람들이 이 책에 반발했을까를 생각해보면 대강의 줄거리만 파악했다는 얘기가 된다. 책을 꼼꼼히 읽어봤다면 대부분 오해는 풀릴 것이다.”

한 사람의 생명과 20억명이 믿는 종교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중요할까요. 그 영원한 난제는 ‘시대의 금서’인 ‘악마의 시’를 둘러싼 이 난제는 1000년이 지나도 풀리지 않을 것만 같습니다.

“내 소설은 폭력에 대응하는 한 자루 칼이었다”
이제 긴 이야기를 끝마칠 시간입니다. 이 회고록은 현재 세계 출판계에서 가장 뜨거운 책입니다. 자신의 삶 주변을 맴돌았던 ‘칼(knife)’을 사유하기 때문이겠지요.

그런데 놀랍게도, 작가 루슈디가 은유하는 칼은 한 테러범의 칼만을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KNIFE’의 한 부분을 깊게 읽어볼까요.

◎ “…칼은 도구였고 우리가 그것을 사용함으로써 의미를 얻는다. 언어도 마찬가지였다. 언어는 칼이었다. 그것(언어라는 칼)은 세상을 열 수 있고 그 의미, 내부 작동, 비밀을 드러낼 수 있다. 그 진실, 그것은 하나의 현실에서 다른 현실로 전환될 수 있다. 언어는 나의 칼이었다. 만약 내가 뜻밖의 칼싸움에 휘말렸다면 아마도 ‘언어’라는 칼 때문이었을 것이다.

살만 루슈디 최대 문제작 1988년 ‘악마의 시’ 초판본 모습. 루슈디의 사인이 적힌 이 책의 초판본은 상태에 따라 가격이 600~2000달러를 호가합니다. 20세기 최고의 금서인 만큼 중고가격도 상상을 초월합니다. [raptisrarebooks.com·Wikimedia Commons]
여기, 물리적인 형태의 뾰족하고 예리한 칼이 검은 마스크를 쓴 청년의 손에 들려 있습니다. 그것은 루슈디를 포함한 예술의 세계를 베고 찌를 수 있는 날카로운 무기입니다. 그러나 루슈디에게 진정한 칼은 그런 물리적인 칼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라는 칼이었지요.

언어는 세상의 비밀을 들추고 전혀 다른 세계, 저 너머의 세상을 우리에게 보여줄 수 있다고 그는 봅니다. 언어로 세상을 베고 찌르면서 우리는 현실의 외피를 벗어던지고 세상과 인간의 본질로 들어가게 됩니다. 겹겹의 굴레를 찢고 나아가기, 그것을 인간은 자유라고 불렀고, 그 자유만이 인간을 행동하고 발화하게 만들었습니다. 루슈디는 그 과정에서 자신의 펜을 칼이라고 부른 것이지요. 그게 ‘악마의 시’ 논쟁이 우리에게 주는 하나의 강력한 교훈이 아닐까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루슈디는 바로 이 지점에서 언어의 힘, 문학과 예술의 힘을 간파해 냅니다. 그의 예술론을 압축하는 이 책 ‘KNIFE’ 최고의 문장을 옮겨적으며 글 맺습니다.

◎ “…중요한 건 예술이 전통에 도전한다는 것이다. 이를 빌미로 예술을 거부하거나 비방하는 것은 예술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중략) 시인 오비디우스는 아우구스투스에 의해 추방됐지만 오비디우스의 시(詩)는 로마 제국보다 오래 지속되었다.

◎ Salman Rushdie, KNIFE, Penguin Random House, 2024. ◎ 살만 루슈디, 『악마의 시 (상·하)』, 김진준 옮김, 문학세계사, 2001. ◎ 살만 루슈디, 『악마의 시 (1·2)』, 김진준 옮김, 문학동네, 2022. ◎ 살만 루슈디 공식 웹사이트 (salmanrushdie.com) ◎ 테러범 하디 마타르 뉴욕포스트 단독 인터뷰 기사 (nypost.com/2022/08/17/alleged-salman-rushdie-attacker-didnt-think-author-would-survive/)

※ 다음주에는 엑토르 오에스테르엘드의 《체 게바라》를 다룹니다.

하단 기자페이지에서 ‘+구독’을 누르면 [나쁜 책, 시즌2]를 쉽고 빠르게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기자Talk나 댓글로 금서를 추천해주세요. 독자분들과 함께 공부하듯이 쓰겠습니다.

“금서라는 나침반이 가리키는 불화의 방향은 소수의 권력자가 탈취한 이념이었다. 금서의 작가들은 복종하지 않음으로써 세계와 독자에게 자유를 선물하고자 했다.” (『나쁜 책』, 글항아리, 2024)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