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최악의 시즌" 이정후 심경 토로, 좌절 뒤로 하고 '재활 아닌 수술' 결단..."합리적 선택" SF
[스포츠조선 노재형 기자]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이정후의 선택은 수술이었다.
샌프란시스코 구단은 18일(이하 한국시각) "이정후가 향후 2주 안에 왼쪽 어깨 탈구에 의한 와순(labrum) 손상을 재건하는 수술을 받을 예정이다. 올해 남은 시즌 돌아오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지난 13일 신시내티 레즈와의 홈경기에서 어깨를 다친 지 닷새 만에 '최악의 결과'가 나온 것이다. 당시 이정후는 1회초 상대 제이머 칸델라리오의 플라이를 잡기 위해 우중간 쪽으로 전력질주한 뒤 점프해 글러브를 뻗은 상태에서 펜스 상단에 왼쪽 어깨를 부딪혔다. 타구를 잡지 못한 채 그물망을 훑으면서 떨어진 이정후는 트레이너의 부축을 받고 물러났다.
경기 후 밥 멜빈 감독은 "느낌은 좋지 않지만, 수술을 받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고 밝혀 일말의 희망을 갖게 했으나, 이튿날 MRI 검진 결과 '구조적 손상(structural damage)' 진단이 나와 수술 가능성이 대두됐다. 결국 17일 LA 컬란-조브 정형외과 어깨 전문의 닐 엘라트라체 박사의 2차 진단을 받고 수술 결론을 내리게 됐다.
그러나 이는 이정후의 결단이었다. 션택지는 두 가지였다. 재활 치료를 받고 복귀해 시즌을 마친 뒤 수술을 받거나, 아예 이 참에 수술을 받고 완벽하게 회복해 내년 시즌을 맞는 것. 이정후는 후자를 택했다.
지역 매체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은 '이정후에 두 가지 옵션이 있었다. 25세인 나이와 2018년 KBO에서 어깨를 다친 경력을 감안해 가급적 빨리 수술을 받는 것이 그의 선택이었다'고 전했다.
파란 자이디 샌프란시스코 사장도 "이 문제를 즉시 해결하고 가능한 한 2025년을 염두에 두고 나가게 하는 게 합리적"이라며 수술에 대해 찬성의 뜻을 나타냈다.
수술 결정을 내린 이정후는 부상 후 처음으로 현지 매체들에 자신의 심경을 밝혔다. 그는 "펜스에 부딪힐 때 어깨가 빠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면서 "내 루키 시즌이 이렇게 끝날 줄 정말 몰랐다. 내 야구 인생을 통틀어 가장 실망스러운 시즌이 되고 말았다"며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건강하게 돌아와 다시 뛰겠다는 의지도 피력했다. 그는 "지난 한달 반 동안 메이저리그에서 뛰었다는 게 내 야구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올해 보냈던 시간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라며 "내년 시즌을 마음에 두고 내가 겪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더 잘 뛸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야구는 내가 사랑하는 것이며 야구가 없다면 다른 걸 할 수도 없다. 강한 정신력으로 돌아오겠다"고 밝혔다.
이로써 이정후는 37경기에서 타율 0.262(145타수 38안타), 2홈런, 8타점, 15득점, 10볼넷, 13삼진, 2도루, 3도루자, 출루율 0.310, 장타율 0.331, OPS 0.641, OPS+ 90의 기록을 남긴 채 메이저리그 데뷔 시즌을 쓸쓸이 마감했다.
이정후는 데뷔전에서 메이저리그 첫 안타와 첫 타점을 올렸고, 두 번째 경기에서는 멀티히트를 기록했다. 그리고 3월 31일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의 경기에서 데뷔 첫 홈런을 쏘아올리며 3경기 연속 안타, 타점으로 현지 매체들의 찬사를 받았다.
4월 4~7일, 3경기 연속 무안타로 침묵했지만, 슬럼프는 오래가지 않았다. 4월 8~21일까지 11경기 연속 안타 행진을 벌였고, 부상을 입기 전까지는 6경기 연속 안타 행진 중이었다. 공격에서는 기대치에 다소 못 미치는 수치를 보였으나, 수비에서는 다이빙캐치와 총알 송구 등 안정적인 플레이를 펼치며 최정상급 중견수로 각인됐다.
이제 막 메이저리그의 '맛'을 알아가기 시작하는 시점, 과한 욕심이 참사를 불렀다는 아쉬움이 나올 수밖에 없다. 꼭 그렇게 무리하게 돌진했어야 하느냐는 것이다.
부상 당일 멜빈 감독은 "이정후는 전력으로 뛰어갔다. 이곳 오라클파크는 바람이 타구를 때로는 멀리 보내고, 때로는 덜 날아가게 하는데 그걸 알지 못한 것 같다. 이정후는 펜스에 부딪혀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다. 느낌이 참으로 안 좋다"며 언짢은 마음을 내비쳤다.
외야수가 타구를 향해 전력 질주하는 건 기본이지만, 이정후가 타구의 방향과 속도, 낙하지점을 정확히 판단했다면 펜스에 부딪힐 만한 상황은 아니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펜스에 맞고 나오는 공을 수비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다. 칸델라리오의 타구는 발사각 24도, 타구속도 104.3마일, 비거리 407피트짜리였다. 스탯캐스트는 이 타구의 안타 확률을 83%로 제시했고, 30개 구장 가운데 19곳에서 홈런이 됐을 것으로 봤다.
이정후는 당시 외야수의 본능이 아니라도 수비에 대한 주위의 시선이 높은데다 선발투수 카일 해리슨이 제구력 난조로 2사 만루의 위기에 몰린 상황에서 타구를 잡고 싶었을 것이다. 앞서 이정후는 지난 9일 쿠어스필드에서 열린 콜로라도 로키스전에서 자신의 파울타구에 왼발을 맞고 타박상을 입어 3일 휴식을 취하고 복귀한 터였다. 의욕이 컸을 가능성이 높다.
샌프란시스코는 이정후 대신 팀내 톱클래스 유망주 외야수인 루이스 마토스를 중견수로 기용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데뷔해 75경기를 뛰었고, 올시즌에는 이정후 부상 다음날부터 중견수를 맡아 맹활약을 이어가고 있다. 14~16일 LA 다저스와의 홈 3연전서 12타수 4안타 1홈런 5타점의 맹타를 휘둘렀고, 수비에서도 이정후 못지 않은 허슬플레이로 어려운 타구도 잡아냈다.
특히 지난 16일 4회 테오스카 에르난데스의 우중간 타구를 쫓아가 펜스 위로 글러브를 뻗어 잡아내는 호수비를 펼쳤는데, 이정후가 다쳤을 때와 같은 코스와 방향, 비거리의 타구라 시선이 쏠렸다. 마토스도 캐치 후 펜스에 부딪히면서 쓰러졌지만, 부상은 입지 않았다.
멜빈 감독 입장에서는 그나마 마토스가 이정후의 공백을 훌륭히 메워주고 있으니 시름을 덜었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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