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관심 속 스러지는 지역방송, 무엇을 할 것인가

윤유경, 장슬기 기자 2024. 5. 18.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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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기획] 2014년 지역방송지원법 이후 10년째 방발기금 지원
종사자들 "지원금으로 프로그램 하나 만들기도 어려워"
중앙부처 무관심 속 별도 기금·독립 기구 필요성 제기

[미디어오늘 윤유경, 장슬기 기자]

▲ 지역방송지원법이 만들어지고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지역방송계에서는 법의 실효성이 없다고 비판한다. 사진=gettyimagesbank

지역방송발전지원특별법(지역방송지원법)은 2012년 초안이 만들어져 2014년 통과됐다. 같은 해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에 지역방송발전위원회(3기)가 꾸려진 뒤 10년이 흘렀다. 지역방송지원법은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에 지역방송 지원에 대한 새로운 대안의 성격으로 만들어졌다. 올드미디어의 관심이 줄어드는 가운데 지상파 방송광고시장 축소와 종합편성채널 등장으로 지역방송의 경영난이 심화됐기 때문이다. 기존 방송법으로는 지역방송을 실질적으로 돕기 어렵다는 사회적 공감대도 형성됐다.

5기 지역방송발전위원회 위원(2021년 3월~2024년 3월)을 맡았던 한선 호남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신문의 위기를 방송이 그대로 걷고 있다”고 평가했다. 기획재정부-문화체육관광부-한국언론진흥재단의 수직적 구조에서 실질적으로 지역신문 발전을 추동할 능력과 의지가 없다고 평가받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처럼 기재부와 방송통신위원회라는 중앙부처가 지역방송에 대한 지원을 결정하는 방통위 산하 지역방송발전위원회 역시 유명무실의 상태라는 지적이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7일~13일 천대성 전 전국언론노조 TBC지부장(전 지역방송협의회 공동의장), 송창용 언론노조 JTV전주방송 지부장(현 지역방송협의회 공동의장), 3기 지역방송발전위원 출신인 이진로 영산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5기 지역방송발전위원 출신인 한선 호남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김동원 언론노조 정책협력실장, 익명을 요구한 지역방송 종사자에게 지발위 관련 문제점과 지역방송을 위한 실질적 대안을 들었다. (이 기사에서 지역방송발전위원회와 지역신문발전위원회가 나오지만 일부 '지발위'라고 약칭을 쓴 경우는 모두 지역방송발전위원회에 해당한다.)

▲ 지난 2014년 12월30일 출범한 3기 지역방송발전위원회 9명 위원들 모습. 지발위는 2008년에 1기, 2011년에 2기도 꾸려졌지만 지역방송지원법 개정 이후 3기부터 기존 5명에서 9명으로 위원수가 늘고 중요성이 확대됐다. 사진=방통위

지역방송 지원에 무관심한 중앙부처 방통위

방통위가 지역방송 지원책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방통위는 3년마다 지역방송발전지원계획을 수립한다. 올해 초 제4차 지역방송발전지원계획(2024~2026년)엔 중앙·지역방송 상생 협의체 구성 운영, 지역 뉴스 공동 아카이브 구축 검토, 재난방송 재정 지원, 광고규제 개선시 지역방송 우선 적용 등 새로운 정책과제가 포함됐다. 그러나 지난 3월 방통위가 발표한 '2024년 주요업무 추진계획'엔 이러한 지역방송 관련 주요 정책과제가 포함되지 않았다.

이번 4차 계획에는 3차 계획에 있던 지역방송 경영의 자율성·투명성 개선 등 경영진 책임 강화 내용이 빠지기도 했다. 김동원 언론노조 정책실장은 “방통위 주요업무 추진계획에는 지역민방 겸영을 허용하는 규제 완화, 순수외주제작물 편성 비율 완화, 프로그램 타이틀 스폰서십 일부 도입 등 민방 사주의 요구가 반영됐다”며 “김홍일 방통위뿐 아니라 기존 방통위도 지역방송을 '문화재 보호 구역'같이 고립된 정책 영역으로 상정해 확장되는 미디어 시장 환경에서 게토화(고립화)시키고 있다”고 평가했다.

현재 방통위는 합의제 기구란 사실이 무색하게 대통령이 임명한 김홍일 위원장과 이상인 부위원장 두 명으로 운영되고 있다. 방통위 상임위원 중 한 명이 당연직 지발위원장을 맡게 돼 있어 현재 지발위원장은 이상인 부위원장이다. 이 부위원장은 판사 출신으로 지역방송을 잘 이해하고 있는 인사라고 보기 어렵다.

지역민영방송 9개사와 지역MBC들로 구성된 사단법인 지역방송협의회 공동의장직을 맡았던 천대성 전 언론노조 TBC지부장은 “지발위원장이 언론노동자, 종사자들 의견수렴을 적극적으로 하면 좋겠는데 보여주기식인 것 같다. 지역에 다니면서 대표이사들을 주로 만난다”며 “오랫동안 지역방송 노동자들이 주장했던 건 방통위원 중 지역 몫의 방통위원을 한 명 임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사람이 지발위 위원장이 돼 지역방송을 위한 정책을 만들어야 하는데, 여야 자리싸움으로 지역방송이 관심 밖의 일이 돼 버렸다”고 말했다.

지난 2021년 위촉된 제5기 위원은 방통위원 2명과 대학교수 7명으로 구성됐다. 지역방송 전문성이 없는 인사들로 구성됐다는 비판 속에, 지난 3월 출범한 제6기엔 다양성 차원의 청년 몫이 배정됐지만 이 역시 학회 추천 인사로 임명됐다. 천 전 지부장은 “진짜 지역을 알고 언론에서 일하는 청년이 됐으면 좋겠다는 취지였고 내심 기대했는데 역시 학회 추천으로 임명돼 차별성이 없어보인다”고 지적했다.

지역신문발전위원회가 현실적으로 자문 성격에 그치는 것처럼 지발위도 마찬가지다. 제3기 지발위원을 맡았던 이진로 교수는 “지발위의 권한이 일종의 자문적 성격에 불과하고 정책 결정 성격이 약하다”며 “지역방송의 어려움을 환기하는 효과는 있지만 정책으로 만들어내기엔 법적 근거도 불충분하다. (방통위에선) 현실적으로 지역방송보다 다른 쪽의 방송 비중이 더 크거나 중요하게 인식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한선 교수도 “지발위원이 됐을 때 지역방송에 대한 애정으로 나름대로 하고 싶은 게 많았지만 기대에 전혀 부합하지 않았다”며 “방통위가 지역방송지원법에 근거해 각종 기금 사업을 운용하고, 3년 간 이미 짜여져 있는 지역방송발전계획에 따라 '맞다, 안 맞다' 심의 의결만 하기 때문에 사실상 형식적 의사결정이었다. 그걸 방통위도 알고 있고 위원들도 알고 있다. 실효성에 있어 크게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내 지역언론팀이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사업 관련 실무를 담당하는 것처럼, 방통위 내 지역미디어정책과가 지역방송발전위원회 실무를 담당하고 있지만 역시 위상은 미약하다. 한선 교수는 “내가 5기 위원을 하는 3년 동안 지역미디어정책과 과장이 네 번 바뀌었다”며 “방통위 위원에도 지역방송 전문가는 참여하지 않는다. 상위 기구에서 지역방송에 대한 이해가 없고 지역방송 이해당사자들이 없기 때문에 지역미디어정책과 위상이 낮지만 그 누구도 지적하지 않는다”고 했다.

송창용 언론노조 JTV전주방송지부장도 “방통위에 지역미디어 관련 부서가 단 하나다. 여기서 정책을 만드는 것도 한계가 있고, 지발위는 단순히 이를 심의만 하고 있다”며 “한 달에 한번 모여 회의하고 단순 심의하는 건 지역방송발전계획을 수립하고 운영하기에 한계가 많아 보인다”고 지적했다.

▲ 방송통신위원회. ⓒ연합뉴스

예산 독립성 없는 지역방송 지원

지역방송 지원예산은 별도의 기금 없이 방송통신발전기금(방발기금)에서 충당한다. 박완주 무소속 의원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방발기금을 부담하지 않는 문체부 소관 기관에 2383억 원이 지원됐지만 지역방송에는 212억 원으로 10%가 채 되지 않았다. 올해는 전년과 동일한 45억 원의 예산이 편성됐다.

실질적 직접 지원은 지역방송과 중소방송사 등에 제작비를 지원해주는 콘텐츠 제작 예산 정도다. 하지만 지역방송 종사자들은 프로그램 하나를 제대로 제작할 만한 지원도 되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천대성 전 지부장은 “지역방송이 라디오, TV를 다 포함하니 숫자가 많은데 예산은 45억 원 수준이다. N분의 1로 나누면 프로그램 하나도 제대로 제작하지 못하지만 이마저도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들의 관심 밖이라 언제 줄어들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익명을 요구한 지역방송 종사자도 “각 회사당 1억5000만 원도 안되는 돈인데, 뭔가를 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라며 “현재 재정적으로 취약한 지역민방에선 비용절감을 이유로 낮은 퀄리티의 인공지능(AI) 딥페이크 뉴스를 만들기 시작했다. 주말뉴스의 경우 한 달에 400만 원이 들어가는데 인공지능(AI)뉴스는 최소 60만 원으로 해결이 가능하다. 주말에 당직자가 뉴스를 하는 게 아니라 인공지능(AI) 뉴스를 진행하다보면 긴급뉴스 운용이 불가능하고 지역민들 피해로 직결될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한선 교수도 “지속가능성 확보를 위해선 기금 지원이 중요하다. 지역언론을 활성화시킨다는 논의가 돈 얘기만으로 끝나면 그것 또한 '담론의 빈곤'이지만 돈이 가장 시급한 문제”라며 “지역민방과 지역MBC 등 지역방송사들이 매년 약 100억 원의 방발기금을 내는데 지원예산은 40억 원 정도니 불만이 계속 나올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 이진로 교수도 “현재 예산은 갈증의 해소가 아니라 갈증의 연장상태”라며 “스스로 자생력을 키워줘야 하는데, 현재 규모는 그러기에 제한된 규모다. 예산이 대표적인 바로미터라고 볼 수 있다”고 했다.

서울 방송사·뉴미디어 지원에 밀린 지역방송

지역방송 지원책은 지역민방의 경우 네트워크를 맺은 SBS, 지역MBC는 서울MBC 본사와 제로섬 관계에 있다. 방발기금이든 광고 배분이든 서울에 있는 전국단위 방송사와 이해관계가 상충될 수밖에 없다. 이진로 교수는 “지역방송지원법이 힘을 가지려면 일종의 특별대우가 있어야 하는데 현실에서는 서울MBC나 SBS의 양보를 얻어내야 한다”며 “이들조차 줄어드는 방송시장에서 위상이 약화되기 때문에 방어적이고 심지어 지역방송에 공격적인 경우도 있다”고 했다.

▲ 9개 지역민영방송사

통상 지상파 방송에 대한 규제는 뉴미디어에 비해 강하다. 이 교수는 “지상파 내에서 불리한 위치에 있는 지역방송은 뉴미디어 플랫폼을 집중 지원해주는 분위기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어 이중적 어려움에 처해있다”며 “그걸 특별히 대우해주자고 만든 게 지역방송지원법과 지발위인데, '지발위 결정사항을 방통위 정책으로 수용한다'는 식의 걸맞는 법적 근거가 없다. 하나의 아이디어 제안에 불과해 현실적으로 정책으로 채택될 가능성이 적다”고 했다.

김동원 실장도 “지역방송 정책의 게토화는 IPTV 3사의 과점 시장인 유료방송, 글로벌 OTT 등에 우호적인 방통위·과학기술정보통신부·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경로 의존적 미디어 문화 정책을 배경으로 한다”며 “레거시 미디어에서 글로벌 OTT까지 포괄하는 미디어 진흥·규제 체제의 수립이 계속 미뤄지는 한 지역방송 정책의 게토화는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역방송 지원을 위한 독립 기구·기금 마련 필요해

지역방송만의 기금을 만들자는 주장은 오래전부터 나왔다. 송창용 지부장은 “지역방송발전기금을 계속해 요구해왔지만 지금도 방발기금에서만 일부 지원되고 있다”며 “지발위원장부터 제대로 된 지역방송 전문가가 돼야 하고 실질적인 지역방송지원법 개정을 통해 권한을 가지고 역할을 하도록 만들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선 교수도 “많은 연구자가 지역미디어를 위한 별도 기금이 있으면 지역언론을 총괄해 지원하고 장기적인 정책을 제시하면서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에서 지역언론이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준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고 했다. 이진로 교수는 “현재 지원으로 지역방송의 역량을 강화하기 미흡하다”며 “지원의 규모도 키우고 지역방송의 자생적 역량을 강화시킬 수 있게 구조적 개선이 이뤄질 정도로 지원을 구체화해야 한다”고 했다.

지역방송이 더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요구도 나온다. 이 교수는 “지역방송에 근무하는 이들이 조건이 열악하고 일상 업무가 과중해서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기 어렵지만 구심점을 스스로 형성하고 국회에서도 그 구심점을 밀어줘야 한다”며 “현실적으로 한계가 많아 조금 더 강력한 내외부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 스스로 좀더 지역의 필요성을 강화시키는 존재가 되면서 지원을 끌어내고, 지역사회도 지역방송과 더불어 문제를 해결하며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역방송이 필요한 이유도 강조했다. 이 교수는 “도로가 교통 인프라이고 국가발전에 크게 기여하듯 지역방송이 콘텐츠 인프라라고 볼 수 있다”며 “앞으로 사회복지를 강화하려면 지역사회 환경 개선이 필요하고 지역소멸의 문제, 저출생 등의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이런 문제들에 있어 지역방송에 더 큰 기여를 요구하고 기여에 걸맞는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교통 인프라의 가치를 인정하고 투자하듯 방송 콘텐츠 인프라 가치를 인정하고 지역방송과 지역사회의 연결과 기여로 지역방송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확산해 나가야 한다”며 “지자체에만 맡겨둘 게 아니라 국가가 정책으로 함께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근본적으론 방통위 산하 기구에서 독립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지역방송 사업을 수행하는 독립기구를 만들고 중앙정부에서 견제·협력의 중간자 역할을 하자는 제안이다. 독립 기구는 현장에서 의견을 듣고 수렴하는 주체 역할도 할 수 있다. 천대성 전 지부장은 “방통위원이나 지발위원을 만나서 제안해도 뭐하나 시원하게 수렴되는 정책이 없다”며 “결국 현장에 있는 종사자들 이야기를 듣고 반영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선 교수는 “지역미디어 기구가 별도로 존재해야 한다”며 “'토호세력과 결탁한 지역언론의 폐해'를 내세우며 안 된다고 반대하겠지만 중앙정부가 중간자적 조율 역할을 할 수 있다. 독립기구를 만들고 '알아서 해'라고 놔둘 게 아니라 방통위에서 일종의 견제 역할을 하면 된다”고 말했다.

※참고문헌
조항제 부산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로컬리즘과 지역방송발전지원 특별법>(2015)
김영수 KNN 경영사업본부 차장 <지역방송발전지원에 대한 상대적 중요도 및 우선순위에 관한 연구>(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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