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메트의 ‘복원 전문가’ 입니다…미술관 뒤에서 일하는 사람들[김현수의 뉴욕人]

뉴욕=김현수 특파원 2024. 5. 18.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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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미술관 메트 전시실 뒤로 가보니
복도 곳곳에 ‘아트에 양보하세요’
메트 작품 복원가들 “1000년 유지가 꿈”
지난달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서 유럽 회화 보존 및 복원을 맡고 있는 샬롯 헤일 복원가가 외신 기자들과 만나 복원 작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메트 제공
지난달 24일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메트). 직원들을 따라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는 푯말 안쪽으로 들어갔다. 빛나는 작품 전시 뒤, 미술관의 뒷모습이 나타났다. 곳곳엔 포장재가 쌓여 있었고, 큐레이터, 경비원, 행정 직원, 화물 담당 등이 바쁘게 오갔다. 복도에는 노란색 바탕에 ‘운송 중인 아트에게 양보하세요(Yield to Art In Transit)’라고 쓰인 경고문이 곳곳에 붙어 있었다.

마치 패트릭 브링리의 에세이 ‘나는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속 인물들을 현장에서 만나는 기분이었다. 두근두근 설레며 카메라 렌즈를 들이댔더니 곧바로 ‘사진은 안됩니다’라는 말이 돌아왔다. 온통 사진 찍고 싶은 풍경투성이인데 스마트폰을 들지 못하는 것도 곤욕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날 찾은 곳은 메트 소장품을 보존하고 복원하는 전문가들의 작업실이었다. 메트의 뉴욕 외신 기자단 초청으로 전시실 뒤편에서 작품과 함께하는 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고흐 작품에 왜 돌가루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6층에 내리자 복층으로 된 공간이 나타났다. 천장은 반쯤 유리로 덮여 햇빛이 들어왔고, 나무 바닥 위 나무 이젤에는 세계적 명화들이 무방비 상태로 놓여 있었다. 액자 없이 무심히 놓인 명화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이젤 사이로 복원 전문가 샬롯 헤일 씨가 나타났다.

나도 모르게 헤일 씨에게 말을 걸었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행운의 직업 같아요.”

“맞아요. 저는 볕이 적은 영국에서 자랐기 때문에 이렇게 빛이 들어오는 이상적인 아트 스튜디오에 감사하게 생각해요.”

헤일 씨는 1987년부터 메트의 미술 복원 부서에서19세기 유럽 회화를 맡아왔다. 그녀의 손 끝에서 반 고흐, 에두아르 마네, 에드가 드가와 같은 작품이 더욱 빛을 발해온 것이다. 지난해 메트 화제의 전시 ‘반 고흐 사이프러스’와 ‘드가/마네’ 전 등에도 관여했다고 한다.

“미국에 처음 상륙했던 (오르세 미술관 소장) 마네의 올랭피아도 이 곳을 거쳤어요. 대형전시가 많아 바쁘게 보냈죠.”

헤일 씨에 따르면 복원팀은 복원이나 보존 처리가 필요한 그림이나 외부에서 빌려 온 그림들을 분석하고 ‘보수적으로’ 복원하는 작업을 맡고 있다. 화가의 기법을 잘 이해하기 위해 첨단 과학 장비를 사용한다. X레이, X선 형광 분석기 등을 통해 화가가 처음 의도했던 스케치까지 연구한다. 복원 전문가, 미술사가, 과학자가 협력해 화가가 그림을 그리던 때로 돌아가 작품을 가장 잘 이해하고 그대로 그림을 오래 보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헤일 씨는 네덜란드 화가 호베르트 플링크의 1645년 작 ‘벨벳 모자를 쓴 수염 난 남자(Bearded Man with a Velvet Cap)’를 예로 들었다. 얼굴의 세세한 굴곡을 섬세하게 담아낸 17세기 남성의 얼굴에 X선을 쐬니 여성 초상화 스케치가 나타났다.

호베르트 플링크의 ‘벨벳모자를 쓴 수염 난 남자’ 그림을 X선으로 분석하니 여성 스케치가 나타난 모습. 메트 제공

헤일 씨는 “여인의 초상화를 그렸다가 어떤 이유에서 남성 그림으로 바꿨는지 알 수 없다”면서도 “한 예술가의 작품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해왔다는 사실을 알아내는 것은 물론 흥미로운 일”이라고 말했다. 헤일 씨는 X선 형광 기법을 통해 지난해 고흐의 ‘사이프러스’를 연구하던 중, 프랑스 프로방스의 언덕 바람이 생생히 느껴지는 그림 속에 실제 조약돌 가루가 묻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림의 생동감을 위해 고흐가 일부러 돌가루를 얹은 것일까? 헤일 씨는 지난해 뉴욕타임스(NYT ) 인터뷰에서 “그건 아닐 것이다. 바람이 많이 부는 프로방스 언덕에서 그림을 그리다 이젤이 넘어진 것으로 추측 한다”고 말했다.

헤일 씨가 현재 집중하는 작업은 핀란드를 대표하는 여성작가 헬렌 쉐르백(1862~1946)이다. “너무 모던하지 않나요”라며 그녀가 가르킨 이젤에는 1920년 작품 ‘레이스 숄’이 놓여 있었다. 작품 속 주인공은 친구 시그리드 니베르그로 검정색 숄을 쓰고 먼 곳을 응시하고 있다. 얼굴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이 추상화처럼 묘사된 것이 특징이다. 메트 소장품인 이 작품은 미국 미술관이 인수한 첫 쉐르백의 그림이다.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메트) 회화보존 아트 스튜디오 이젤 위에 놓여 있던 헬렌 쉐르백의 ‘레이스 숄’ 작품. 메트 제공

헤일 씨는 “쉐르백이 프랑스와 영국에서 돌아오고 작품이 심플해지고 추상적으로 변모하던 시기의 작품”이라며 “모더니스트 면모가 돋보이는 작품의 느낌에 푹 빠질 수밖에 없었다. 이 작품의 보존 작업에 참여할 수 있어 정말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

이어 “1987년부터 메트에서 일했지만 근대 여성 화가가 그린 여성 초상화들을 보기가 쉽지 않다. 쉐르백의 테크닉을 연구하고, 전시를 준비하는 것이 매우 기대된다”고 웃었다.
쉐르백 전시는 2025년 12월에야 대중에 공개될 예정이다.

●복도 끝엔 갑옷과 총칼이

회화 보존 스튜디오에서 화물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시 1층으로 내려갔다. 대형 작품도 ‘모셔야’ 하기에 십 수명이 들어갈 정도로 큰 엘리베이터였다. 좁은 복도로 들어서자 양옆으로 중세시대 유럽 사극에서 본 것 같은 기다린 창이 나열돼 있었다. 이 곳은 메트의 무기 및 갑옷 컬렉션( Arms and Armor collection) 부서의 보존 팀이 근무하는 곳이었다.

스테판 블루토 시니어 컬렉션 매니저가 기자단을 맞았다. 그는 “우리는 선사시대부터 최근까지의 모든 종류의 무기류를 다루기 때문에 지금 이곳에는 돌, 쇠, 머리카락, 금, 은, 유리 세라믹 등 세상의 거의 모든 재료를 찾아볼 수 있다”며 “아마도 플라스틱만 없을 것”이라고 웃었다. 메트는 1만4000점의 무기 및 갑옷류를 소장하고 있고 실제 전시되는 품목 수는 약 1000개 안팎이다.

전문가인 이들은 중세시대 유럽 갑옷만 봐도 독일인지 프랑스 스타일인지 단번에 안다고 했다. 블루토 매니저는 현재 작업 중인 기사와 말의 갑옷을 가리켰다 “이건 프랑스에서 일하던 이탈리아 사람이 만든 작품인데 스타일은 독일입니다. 프랑스 파리 올림픽 전시에 빌려주기 위해 작업하고 있어요.”

총기를 작업할 때에는 고급 시계를 다루듯 일일이 나사를 풀어 분해하고 청소한 뒤 다시 조립한다고 한다. 블루토 씨는 “마음에 안정을 주는 가장 좋아하는 작업”이라고 했다. .

일본 사무라이 갑옷도 작업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었다. 블루토 매니저는 사무라이 갑옷에서 비밀 주머니를 발견했다며 복부 부분 철제 부분을 들어 올렸다. 그는 “처음에는 일본 문화의 의식적 자살과 같은 것일까 생각했지만 이것은 돈이나 쪽지 담배를 넣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스테판 블루토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메트) 무기 및 갑옷 부서 컬렉션 매니저. 메트 제공

갑옷의 기사들은 체중 조절을 잘 해야 했을까? 타이트해보이는 갑옷을 보니 살찌면 어떻게 입을 수 있을지 궁금했다. 유럽 갑옷 보존 담당인 션 벨레어 복원가는 “몸에 맞게 조정을 할 수있다. 헨리 8세의 갑옷은 젊었을 당시 매우 컸지만 나이가 들고 병약해지며 체구가 작아지나 당시 기술자들이 변화된 체형에 맞게 조정한 것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우리의 꿈은 소중한 작품을 잘 관리해서 1000년은 갈 수 있도록 보살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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