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달러에 산 고장난 라디오…8년 뒤 소리를 들었다 [ESC]
1968년산 ‘콘서트마스터’…수리 장인이 4만원에 살려내
오랜 세월 짠내 수집을 통해 여러 빈티지 오디오 시스템과 10여대의 옛 라디오를 갖췄다. 요즘은 많은 이들이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라디오를 듣는다. 유튜브로 스튜디오 안을 공개하는 ‘보이는 라디오’가 대세를 형성하면서 라디오는 보는 매체로 진화했다. 나는 여전히 전통적인 방식으로 라디오를 즐긴다. 공들여 수집한 구형 라디오로 얼굴 없이, 어딘가로부터 들려오는 듯한 잔잔한 목소리와 음악을 듣는 게 더 따듯한 느낌을 준다.
80년대 저항 문화의 상징 ‘붐박스’
10여대의 라디오 가운데 가장 간편한 건 1980년대 제너럴일렉트릭(GE)이 만든 2대의 디지털 알람 시계 라디오다. 턴테이블, 카세트 데크, 시디플레이어 등을 복잡하게 연결한 빈티지 리시버에 울림 좋은 스피커를 물린 오디오 시스템은 특별한 날에만 가동한다. 엘피·카세트테이프 등 음원 소스 확보와 각종 기기를 유지·보수하는 데 적잖은 시간과 정성, 비용을 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두툼한 책 한두권을 겹쳐 놓은 크기의 알람 시계 라디오는 110V 휴대용 변압기와 함께 어디로든 쉽게 이동할 수 있다. 라디오 없는 지인 집에서 술 한잔 할 때 분위기 조성용으로 들고 나서기도 한다.
1970~80년대 유행한 붐박스도 2대 소장하고 있다. 나쇼날 파나소닉이 생산한 라디오카세트 알에프-5310비(B)와 샤프의 포터블 하이파이 컴포넌트 시스템 지에프(GF)-800이다. 1954년 미국에서 포켓 라디오 리전시 티알(TR)-1이 생산되면서 휴대용 라디오 시대가 열렸다. 1962년 담뱃갑보다 작은 카세트테이프가 개발된 뒤엔 다양한 카세트테이프 재생장치가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그런데 1970년대 후반 두 기능을 합쳐 건전지로 작동하는 붐박스가 등장하면서 저항 문화의 상징이 됐다. 미국의 히스패닉계나 흑인 청년들은 큼직한 붐박스를 어깨에 메고 길거리를 활보했다. 소음으로 인한 민원과 갈등도 빈번했고, 공공장소에서 붐박스 소음을 규제하는 법안도 만들어졌다.
나에게 붐박스는 옛 시절을 추억하는 상징 같은 물건이다. 1980년대 초반 중·고등학교를 다닌 나는 성우전자가 판매한 붐박스 ‘독수리표 세이코 카세트’로 라디오를 듣고, 음악을 즐겼다. 서울 광진구 아차산역 인근 노점에서 2021년 3만원에 산 파나소닉의 5310비 붐박스는 오른쪽에 카세트 플레이어, 왼쪽에 라디오 주파수 패널과 큼직한 스피커를 배치한 만듦새가 독수리표 붐박스와 너무 닮은꼴이다.
1983년 생산한 샤프 지에프(GF)-800은 외관, 기능 모두 붐박스 전성기를 보여준다. 가로 68㎝, 세로 22.5㎝로 큼직한 몸체 좌우엔 16㎝ 우퍼(저음역대 담당)와 5㎝ 트위터(고음역대 담당)를 내장한 스피커가 부착돼 있다. 탈부착이 가능한 스피커 시스템에 지나치다 싶을 만큼 화려한 10개의 이퀄라이저 조절기, 턴테이블을 연결할 수 있는 포노 단자, 알람 시계 기능까지 갖춘 이 제품은 미국과 유럽 젊은이가 어깨에 들쳐메고 거리를 활보하던 그 시절 붐박스의 전형이다. 2011년 말부터 1년 동안 미국에 머물던 나는 살림살이를 마련하며 알게 된 이삿짐센터 사장님께 “옛날 라디오가 들어오면 연락을 달라”고 했다. 6개월이 지났을 즈음 “이사 가는 히스패닉 가정에서 중고 라디오가 나왔다. 요즘엔 이런 물건은 찾는 이도 없으니 그냥 가져가라“고 했다. 한동안 라디오를 듣고 카세트테이프를 재생하는 데 요긴하게 썼다. 지금은 전원주택으로 이사한 아버지가 패티김, 이미자 등의 노래가 담긴 카세트테이프를 듣는 데 활용한다. ‘효도 라디오’가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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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집가들이 주목하는 라디오가 내게
옛 라디오 가운데 가장 아끼는 건 1968년 생산된 라디오섁의 ‘에프엠 콘서트마스터’다. 미국에서 중고물품을 기부받아 판매하는 피티에이(PTA)숍에서 2.5달러에 샀다. 고장품 딱지가 붙어있었고, 점원은 “전원이 들어오지 않는다. 수리비가 만만찮게 들어갈 수 있으니 신중하게 생각하라“며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전원과 볼륨, 주파수 튜닝, 고음·저음 조절 등 단 4개의 노브와 장식 효과는 전혀 없는 간결한 주파수창 등을 갖춘 알루미늄 수직 패널과 앞면의 3분의 2 이상을 조밀한 검은색 천으로 덮은 모습이 내겐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 생전 처음 본 에프엠 전용 라디오를 2.5달러에 사는 걸 고민할 이유도 없었다.
수리점을 찾기 위해 구글링을 하면서 내 심미안에 스스로 탄성을 질렀다. 미국의 빈티지 라디오 평론가 앤드루 하이든이 “컬렉터가 주목할 수집품”으로 이 라디오를 소개한 글을 발견한 것이다. ‘지금까지 제작된 어떤 에프엠 전용 라디오보다 더 크고, 아름답게’라는 모토로 출시된 콘서트마스터는 당시 유행하던 미니멀리즘을 반영한 디자인으로 장식을 없애고, 일반적인 스프링 서스펜션이 아닌 에어 서스펜션(소리의 잔향을 밀폐된 공간에 가두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스피커를 내장해 미적인 아름다움은 물론 편안하고 충실한 음질을 구현했다는 평가였다.
문제는 그 뒤로 8년 동안 제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미국의 수리 장인은 200달러 정도의 수리비를 예상했다. 구입 가격의 100배 가까운 돈을 지불할 순 없었다. 귀국해 2~3년 동안 동네 전파사 여러 곳을 찾아다녔다. 모두 “전원 안 들어오는 것쯤이야 수리의 기본”이라고 자신했지만 마지막 답변은 비슷했다. “너무 오래된 물건이라 부품을 구할 수 없다”고 했다.
낙담하며 몇년을 보낸 뒤 2020년, 세운상가 장인들이 모여 추억과 사연이 있는 오래된 전자제품을 고쳐주는 ‘수리수리협동조합’을 만들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됐다. “세운상가에선 핵폭탄 말고는 뭐든 다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를 전설처럼 듣고 자란 나는 그곳에서도 못 고치면 미련을 버리자고 다짐하며 수리수리협동조합을 찾아갔다. 보름쯤 지나 수리를 마쳤다는 연락이 왔다. 수리비는 4만원에 불과했다. 이젠 책에서나 볼 수 있는 고장 난 오디오, 낡은 부품이 켜켜이 쌓인 좁은 협동조합에서 플러그를 꽂자 국악방송이 선명하게 잡혔다. 오랜 기다림 탓인지, 그곳 분위기 때문인지 지금까지 들어본 적 없는 따듯하고 부드러운 음색이 느껴졌다. 요즘도 콘서트마스터에서 흘러나오는 라디오를 들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기교 없는 단순한 겉모습과 달리 어떤 고가의 오디오보다 아름다운 소리를 발산하는 콘서트마스터는 내 인생 최고의 라디오가 틀림없다.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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