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올림픽이 보여줄 한국 스포츠의 현주소
국제 경쟁력 현저히 약화···그나마 수영 황금세대와 높이뛰기 우상혁 등에 기대
(시사저널=김양희 한겨레신문 기자)
'남자축구도 없고, 여자배구도 없고' 2024 파리올림픽이 처한 현실이다. 그동안 남자축구와 여자배구는 올림픽의 최대 관심사였다. 조별리그를 비롯해 토너먼트까지 국민의 눈길을 끌어모았다. 하지만 남자축구는 40년 만에, 여자배구는 16년 만에 올림픽 무대에 서지 못한다. 비단 남자축구·여자배구만이 아니다. 구기 종목 전체가 암흑기에 접어든 모양새다.
7월26일 개막하는 파리올림픽에서는 축구·농구·배구·하키·핸드볼·럭비·수구까지 모두 7개 단체 구기 종목이 펼쳐진다. 2020 도쿄올림픽(2021년 개최) 때 정식 종목이던 야구와 소프트볼은 이번 대회에 빠졌다가 다음 대회(2028 LA올림픽) 때 다시 채택된다. 이들 구기 종목 중 한국이 올림픽 본선 티켓을 따낸 종목은 여자핸드볼이 유일하다.
비록 올림픽 본선 무대에는 올랐지만 대한핸드볼협회는 여자핸드볼이 메달은커녕 1승이라도 가능할지 걱정하고 있다. 그만큼 구기 종목의 국제 경제력이 과거에 비해 많이 떨어졌다. 도쿄올림픽 때는 여자핸드볼을 비롯해 남자축구, 여자배구, 여자농구, 남자럭비, 야구가 본선에 진출해 다른 나라와 자웅을 겨루며 올림픽 무드를 주도한 바 있다.
저출산 시대의 그림자가 올림픽에까지
한국 구기 종목의 위기는 아마추어 단체 스포츠의 몰락과 궤를 같이한다. 저출산 기조와 맞물리면서 아마추어 구기 종목은 인원수를 맞추는 것조차 어려워지고 있다. 최근 열린 연맹회장기 전국남녀중·고농구대회 여고부 8강전이 단적인 예다. 숭의여고는 4쿼터 종료 2분30초까지 청주여고에 12점 차이로 앞서고 있었으나, 1학년 선수가 갑자기 부상을 당하면서 남은 시간 동안 4명으로 싸워야 했다. 대회에 등록한 숭의여고 선수가 5명밖에 안 됐기 때문이다. 부상 정도로 봤을 때 4강에 올라도 정상적인 경기가 어려울 것으로 판단해 숭의여고는 사실상 경기를 포기했고, 결국 75대79로 졌다.
아마추어 단체 종목에서는 등록 선수 수를 채우지 못해 대회에 참가하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선수 수를 채우기 위해 관련 스포츠 종목을 전혀 알지도 하지도 못하는데 '이름'만 올려놓는 경우도 있을 정도라고 한다.
아마추어 선수층이 얕다 보니 프로 스포츠 수준도 점점 떨어지고 있다. 현장의 감독들은 신인 선수들의 기본기를 지적한다. 배구 감독은 "공 튀기는 방법도 모른다"고 토로하고, 야구 감독은 "캐치볼 방법부터 알려줘야 한다"며 답답해한다. 프로배구의 경우 경기력 저하를 막고 국제 경쟁력 강화를 위해 기존 북미와 남미, 유럽 출신 외국인 선수 외에 아시아권 선수를 따로 뽑는 아시아 쿼터제를 도입했다. 아마추어 배구계에서 반발하고 있으나 프로 수준 유지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외국인 배구 감독들은 국내 리그가 수준에 비해 선수들의 연봉이 지나치게 높다고 지적한다. 실제 배구의 경우 국외 리그와 비교해 연봉이 세계적인 수준이다. 여자배구는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에서 최근 27연패를 당하는 등 수모를 겪고 있으나 선수 몸값은 계속 치솟아 '우물 안 개구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이후 올림픽 무대를 한 번도 밟지 못하고 있는 남자배구는 항저우아시안게임에서조차 7위에 머물렀다. 아시안게임 금메달에만 병역 혜택이 주어지기 때문에 중국 등이 버티는 농구와 배구는 사실상 우승이 어려워 미리 포기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 군 복무 기간이 18개월로 줄어들었고, 얕은 선수층 탓에 은퇴 시기도 늦어지는 터라 선수들은 더 이상 병역 혜택에 큰 미련을 두지 않는다.
개인 스포츠의 경우는 개개인의 능력치에만 기대는 경향이 크다. 어릴 때부터 엘리트 스포츠에 입문한 선수들에 대한 의존도가 상당히 높은데 역시나 저출산 등의 영향으로 선택지가 많지 않다. 복싱과 레슬링 등 투기 종목의 경우 기피 현상이 더욱 도드라진다. 이 두 종목은 5월초까지 단 한 명도 올림픽 출전권을 따내지 못했다. 항저우아시안게임 때도 복싱은 동메달 1개, 레슬링은 동메달 2개를 따냈을 뿐이다.
한국의 메달밭이었던 태권도와 유도도 비슷한 상황이다. 비싼 장비 없이 맨몸으로 세계 도전이 가능한 투기 종목의 경우 동유럽 국가들이 약진하고 있다. 소득 수준(GDP)이 높아지면서 강세 종목 지형도가 바뀌는 것은 당연할 수 있다. 2010년 이후 한국이 펜싱 등에서 도드라진 성적을 내는 이유다.
구기 종목 참가 선수가 확 줄어들면서 파리올림픽에 출전할 한국 선수단 규모는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50명) 이후 가장 적을 전망이다. 150~160명 정도 참가가 유력하다. 파리올림픽 메달 목표도 많지 않다. 대한체육회는 금메달 5개, 종합 순위 15위권 정도로 예상한다.
금메달 5개, 종합 순위 15위 목표로 제시
대표적 효자 종목인 양궁 정도를 제외하면 확실하게 금메달을 점칠 만한 종목은 없다. 황선우·김우민 등 황금세대가 나서는 수영, 오상욱과 구본길이 버티는 펜싱 사브르, 배드민턴의 안세영, 육상 높이뛰기의 우상혁 등이 금빛 메달에 도전하는데 경쟁자들이 쟁쟁해 만만찮다. 배드민턴 세계 1위 안세영은 현재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리고 있다.
한국은 지난 도쿄올림픽 때 금메달 6개, 은메달 4개, 동메달 10개로 종합 16위에 올랐다. 순위만 놓고 보면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19위) 이후 45년 만에 거둔 최악의 성적이었다. 이번 파리올림픽 때는 종합 20위권 밖으로 밀려날 수도 있다는 암울한 전망도 나온다. 선수들의 헌신과 투지에 기댈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저출산 기조와 함께 아마추어 스포츠 종목의 쇠퇴는 곧바로 국제대회 성적 악화로 이어지고 있다. 이에 일부에서는 일본 학교처럼 '1인1기'(학생 1인당 1개 이상의 스포츠·예술 활동 참여 시스템) 체제로 가자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운동에 재능이 있는 선수만을 골라내 핀셋 육성하는 게 아니라 모든 아이가 좋아하는 운동을 하나씩은 하게끔 유도한 후 잘하는 선수를 국가대표로 뽑자는 의도다. 더불어 다문화가정 출신이나 이중 국적 선수들에게도 국가대표가 될 기회를 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아직 개막하지 않았으나 파리올림픽은 도쿄올림픽에 이어 한국 스포츠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낼 전망이다. 구기 종목이 올림픽 개막 전부터 우물 안 개구리 수준의 실체를 보였다면 개막 후에는 경쟁력이 떨어진 아마추어 스포츠의 현실을 보여주게 될 것이다. 물론 스포츠 실력이 국력을 보여주는 시대는 이제 지났다. 그래도 스포츠만큼 단시간에 전 국민을 흥분시키고 단결시키는 매개체는 없다. 다 함께 "대~한민국"을 외칠 수 있는 때는 많지 않다. 더 늦기 전에 장기적인 계획을 마련해 스포츠 경쟁력 강화를 위한 방안을 마련하는 게 필요하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일 수 있으나 당장 외양간이라도 고쳐놔야 다음에 다시 소를 키울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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