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북한] ‘1호 사진’ 통치학…추락하는 위상

KBS 2024. 5. 18.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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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북한 주민들은 최고 지도자가 나오는 사진을 '1호 사진'이라고 부릅니다.

특정 행사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수백, 수천 명이 함께 찍는 기념사진도 그중 하나인데요.

때로는 너무 많은 인원을 촬영하다 보니 누가 누구인지 알아보기나 할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요.

그럼에도 북한 당국은 1호 사진을 찍는 것이야말로 주민들의 평생소원이라고 소개합니다.

실제 1호 사진은 '가보', '출세 보증수표'로 불리며 북한 사회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다는 게 탈북민들의 증언이었는데요.

최근엔 상황이 달라졌다고 합니다.

지난해 10월, 동해로 귀순한 탈북민들에 따르면 1호 사진의 위상이 예전만 못하다는데요.

어떻게 된 일일까요?

<클로즈업 북한>에서 분석해 봤습니다.

[리포트]

지난 2003년, 대구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 참석차 방한한 북한 응원단.

이동 중이던 이들이 갑자기 차를 멈추고, 어디론가 뛰어갑니다.

이들이 멈춰선 곳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진이 담긴 현수막이 있었는데요.

응원단원들은 상기된 표정으로 현수막을 떼어냈습니다.

[북한 응원단원/2003년 : "장군님 상이 찌그러져 있으니까 우리가 가만히 있을 수가 있습니까?"]

[북한 응원단원/2003년 : "어떻게 장군님 초상을 이렇게 모실 수 있어요?"]

[북한 응원단원/2003년 : "우리 가지고 갑시다."]

한국이 김정일 위원장의 사진을 소홀히 취급했다는 겁니다.

[북한 응원단원/2003년 : "어제도 비가 오고 오늘도 비가 오는데 대책이 안 서는 것 같습니다."]

이른바'현수막 사건'으로 불리는 이 일은 북한 주민들이 최고 지도자의 사진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실감케 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지금도 북한에선 광장과 거리는 물론 집집마다 최고 지도자의 초상을 걸고 깍듯하게 예우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요.

["경애하는 김정은 원수님 만세!!"]

만약 주민들이 최고 지도자와 함께 사진을 찍는다면 어떨까요?

북한 영화는 이를 일생일대의 소원으로 표현합니다.

[북한 영화 '소원' : "그들과 함께 기념 촬영을 하셨습니다."]

[북한 영화 '소원' : "(철송아, 방금 텔레비전에서 뭐라고 했니?) 아버지 장군님께서 희천발전소 건설장을 찾아주시고 기념사진을 찍어주셨대요."]

[북한 영화 '소원' : "(너도 분명 그렇게 들었지?) 응. (철송아 아버지가 끝내 소원을 풀었겠구나 그처럼 바라던 한 생의 소원을.)"]

1호 사진이 최고 지도자의 위대성을 강조하는 강력한 도구인 동시에 사회적 성공을 바라는 북한 주민들의 욕망까지 충족시킨다는 분석입니다.

[이지순/통일연구원 연구위원 : "(최고 지도자가) 기업소 등에 현지 지도 가서 그곳의 일꾼들과 사진을 찍었다고 한다면 일꾼들의 업무적 역량이라든가 아니면 그 사람들의 일의 행위에 대해서 굉장히 인정받는 분위기가 있을 수 있죠. 수령의 절대 권위 내지는 인민에 대한 보살핌이 사진을 통해 투사되는 것이고 그것을 받는 주민 입장에서는 인정받는 효과가 있는 것이죠."]

실제 북한에서 최고 지도자와 찍은 사진은 노동당 입당이나 진급에 상당한 도움을 준 것으로 전해집니다.

[류희진/2016년 탈북 : "일단 첫번째로 그 집안의 가보가 되는 거죠. 그 사진은. 벽에 엄청난 큰 크기로 프린트해서 걸어 놓게 되고 그 사진 한 장으로 인해서 그 사람의 경력이 업그레이드돼서 대학교를 간다든가 북한에서 입당한다든가 할 때 큰 역할을 하게 되는 거죠."]

북한 당국도 1호 사진을 우상화와 충성심 유도에 자주 활용했는데요.

김정은 위원장은 선대 지도자들 보다 훨씬 더 적극적이었습니다.

집권 직후 1년 여 기간만 놓고 봐도 빈도 면에서 선대와 큰 차이를 보이는데요.

김일성이 1주일에 평균 1.32장, 김정일이 평균 3.92장의 1호 사진을 노동신문에 실었다면 김정은 위원장은 1주일에 평균 7.58장의 사진을 게재했습니다.

또 김정은 시대에 가장 많이 게재된 1호 사진 종류가 단체 기념사진이라는 것도 다른 점입니다.

김 위원장은 미사일 시험발사장, 각종 준공식 현장, 열병식과 청년동맹대회 등 다양한 행사에 참석해 대규모 인원과 기념사진을 남겼는데, 눈여겨볼 대목은 이런 기념사진 조차 김 위원장의 치적을 부각하는 데 사용했다는 점입니다.

[소개 편집물 '기념사진이 전하는 사랑의 이야기' : "이 영광의 기념사진들에는 경애하는 아버지 원수님의 불멸의 업적이 뜨겁게 깃들어 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의 활발했던 기념사진 촬영은 집권 5년 차부터 급격히 줄어들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국경을 봉쇄한 2020년엔 최저치로 떨어졌는데요.

하지만 2021년부터는 다시 집권 초반 수준까지 증가했습니다.

2021년 1월 열린 8차 당대회 이후엔 역대 최대 규모의 기념사진을 촬영하기도 했는데요.

[조선중앙TV/2021년 1월 : "경애하는 총비서 동지를 모시고 당 제8차 대회가 진행된 영광의 대회장을 배경으로 뜻깊은 기념사진을 찍게 된 대표자들은 크나큰 감격과 환희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기념사진에 등장하는 인원은 자그마치 5천 명으로 추정됩니다.

1년 뒤 열린 조선 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 열병식 뒤엔 무려 일주일 가까이 사진 촬영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공개된 단체 기념사진만 57장.

그중에서도 북한 언론이 강조한 것은 열병식 당시 광장 바닥 카드섹션에 동원된 학생, 청년들과의 기념사진이었는데요.

[조선중앙TV/5월 2일 :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께서 대학생, 근로청년들과 기념사진을 찍으셨습니다."]

한 장에 1천 500명에서 2천 명씩 20장, 수 만 명의 청년들과 사진을 찍은 건데 만성적인 경제난과 대북제재, 코로나19로 국경까지 봉쇄한 상황에서 사진 정치의 필요성이 더욱 커진 것으로 분석됩니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 북한에서는 1호 사진의 가치가 떨어졌다는 증언이 나왔습니다.

북한 당국이 기념사진 촬영을 남발하면서 그 위상이 크게 줄었다는 겁니다.

[김현옥/2023년 10월 탈북/가명/음성변조 : "너무나 많은 게 1호 사진이에요. 이제는 그게 영광이라 해도 그저 그래요. 사진만 많아선 뭘해요. 많고 많은 게 사진인데. 한 개 농장원들도 올라갔다가 찍으면 (생기는 게) 사진인데 그게 뭐 큰 의미가 있어요."]

[권민철/2023년 10월 탈북/가명/음성변조 : "저희 친구 중에도 김정은하고 1호 사진 찍은 사람이 많거든요. 그렇다고 (출세에 큰) 효과는 없어요."]

전문가들은 1호 사진 자체의 위상이 추락했다기 보다는, 코로나19 기간 국경봉쇄로 극심한 경제난을 경험한 주민들의 심적 동요가 컸을 거라고 분석합니다.

[이지순/통일연구원 연구위원 : "예전에는 국가가 나의 모든 삶을 책임져 주었고 국가에 의존해서 내 모든 삶을 영위함으로써 혼연일체가 될 수 있었다면 지금은 국가가 나에게 요구하는 건 많지만 나의 삶은 내 스스로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실리적으로 보았을 때는 불편한 거죠."]

실제 동해 탈북민들도 기념사진밖에 줄 수 없는 북한 당국의 경제 사정에 큰 불만을 표시했습니다.

[김지선/2023년 10월 탈북/가명/음성변조 : "한 집의 경우 열병식에 6번 참가한 아들이 있었는데요. 벽에 온통 사진만 가득 걸려있으니까. 시계 같은 선물이라도 하나 주면 좋겠는데 (국가가) 그마저도 할 수 없는 상황이구나."]

[김현옥/2023년 10월 탈북/가명/음성변조 : "그저 사진이에요. 계속해서 대책은 없어요. (실제로) 해결되는 것도 없는데 해결된다고 말만 하고. 도대체 뭐가 해결된 거야. 사람들이 생활이 해결돼야 해결되는 거지."]

심지어 최고 지도자가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정치적 수단으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권민철/2023년 10월 탈북/가명/음성변조 : "네 배가 부른데 우리 힘든 사정을 네가 눈물이나 흘린다고 아는 거냐. 사람들이 제발 저런 장면은 나오지 않았으면 해요. 그런 형상을 하면 '아 못 봐주겠다' 할 정도거든요. 정치란 게 저런 거다 그저 그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하지만 김정은 위원장의 사진 정치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입니다.

북한 당국의 김 위원장 독자 우상화 정황이 감지되는 가운데 강력한 권력자의 이미지를 각인시킬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북한 선전 가요에 등장한 김 위원장 초상도 비슷한 의도로 분석 됩니다.

[이지순/통일연구원 연구위원 : "김정은의 이미지가 노래 속에서는 하나같이 굉장히 밝은 이미지예요. 지도자로서. 그런데 마지막에 백두산 천지가 있고 거기에 초상 사진이 나오죠. 일상에서는 친근하게 어버이로서 스킨십할 수 있는 존재지만 정치적으로는 감히 근접할 수 없는 굉장히 엄숙한 지배력을 가지고 통치 절대 권위를 가지고 있는 그런 김정은의 이미지를 마지막에 보여줌으로써 자신이 가지고 있는 수령으로서의 절대 권위를 마지막에 장악을 한 걸 보여주는 거죠."]

때론 최고 지도자의 강력한 위상과 치적을 내세우는 용도로, 때론 포상 수단으로 활용되어온 1호 사진.

돌아선 북한 주민들의 마음을 다잡고 단결과 충성을 유도할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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