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덜너덜해진 시즌" 마친 신영석, 차기 시즌은 '새 주장'으로 봄 배구 재도전
"프로 생활을 10년 이상 하면서 가장 치열했던 것 같다. 마음이 너덜너덜해진 시즌이었다."
프로배구 남자부 한국전력의 베테랑 미들 블로커 신영석(28·199cm)이 2023-2024시즌 V-리그 시상식에서 남긴 말이다.
신영석은 지난 시즌 36경기(131세트)에 출전해 322득점, 공격 종합 64.93%, 세트당 블로킹 0.618개 등을 기록했다. 이같은 활약에 힘입어 베스트7 미들 블로커 부문에 선정, 2016-2017시즌부터 8년 연속으로 베스트7 한 자리를 지켰다.
득점 부문에서도 V-리그의 새 역사를 썼다. 남자부 최초로 개인 통산 블로킹 득점 1200개의 고지를 밟았고, 역대 6번째이자 미들 블로커 최초로 서브 득점 300개를 달성했다.
16일 경기도 의왕시의 한국전력 체육관에서 CBS노컷뉴스와 만난 신영석은 "블로킹을 더 잡고 싶은 욕심도 크지만 서브 기록은 좀 남달랐다. 미들 블로커 최초로 300개를 돌파했는데 200개를 넘긴 선수도 없더라"면서 "고등학교 때부터 스파이크를 치게 해주신 감독님들께 감사해야 할 것 같다"고 미소를 지었다. 이어 "미들 블로커도 서브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는 데 자부심을 느낀다. 은퇴할 때까지 스파이크 서브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크다"고 이를 악물었다.
블로킹 기록보다 서브 기록이 특별하게 느껴진 신영석은 "내 임무는 블로킹이기 때문에 늘 욕심이 크다"면서도 "나는 1200개 이상을 바라보고 있어서 그 기록이 작게 느껴졌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 블로킹 하나 잡는 것도 쉽지 않은 나이가 됐다. 미들 블로커들은 블로킹 하나를 잡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고 있다. 감사하게 생각하며 운동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매 경기 남자부 블로킹 득점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지만, 신영석이 넘어야 할 더 높은 벽이 있다. 그는 "위에 혼자 있으면 외롭고 허탈감도 있는데, 여자부에 양효진(현대건설) 선수가 나보다 훨씬 많더라. 양효진을 뛰어넘는 것을 목표로 힘을 내고 있다"고 껄껄 웃었다. 남녀부 최초로 블로킹 득점 1500개를 돌파한 양효진의 기록을 넘어서겠다는 다부진 각오를 보였다.
이처럼 신영석에겐 나름 의미있는 시즌이었을 법하지만, 그는 가장 힘든 시간으로 떠올렸다. 팀이 5위에 그쳐 아쉽게 포스트 시즌 무대를 밟지 못했기 때문.
신영석은 "가장 원하고 목표로 삼은 봄 배구 진출에 실패하면서 너무 허탈하고 후회도 많이 남은 시즌이었다"면서 "봄 배구 진출 실패를 확정하고 치른 마지막 3경기에서는 '이걸 왜 해야 되지'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많이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이런 허탈감은 처음 느껴보는 것 같았다. 가장 힘든 시즌이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2021-2022시즌부터 2년 연속 뛰었던 봄 배구 없이 시즌을 마쳐 허탈감이 컸던 모양이다. 신영석은 "이번에는 5세트까지 간 경기가 별로 없다"면서 "이길 때는 확실하게 이겼지만, 질 때는 맥없이 무너졌다. 기복이 너무 심했다"고 아쉬워했다.
어느새 젊은 후배들도 신영석의 자리를 넘보기 시작했다. 그는 2017-2018시즌부터 6년 연속 블로킹 1위에 올랐으나, 지난 시즌 이상현(우리카드)와 김준우(삼성화재)에 밀려 3위에 머물렀다.
블로킹 1위를 내준 것에 대해서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신영석은 "은퇴할 때까지 계속 1위를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면서 "나이가 있다 보니까 기량을 꾸준히 유지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1위보다 그냥 신영석 답게 했다는 말을 듣기 위해 뛰고 있다"고 덧붙였다.
신영석은 오히려 젊은 선수들의 성장을 반겼다. 그는 "다른 베테랑 선수가 내 위에 있는 것보다 우리 나라를 이끌어갈 젊은 미들 블로커들이 1, 2위를 해서 더 기뻤다.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지 않나 싶다"고 활짝 웃었다.
특히 지난 2022-2023시즌 시상식에서는 신인상을 수상한 김준우에게 꽃다발을 주며 훈훈한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다. 2009-2010시즌 미들 블로커 최초로 신인상을 수상한 그는 이후 13년 만에 자신의 뒤를 이은 김준우의 등장이 반가웠다.
그런 신영석은 후배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갖고 있었다. 대표팀에서 뛰던 시절 2024 파리 올림픽 본선 진출에 실패했기 때문. 선배들이 남긴 위대한 업적을 우리가 망쳤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그 짐을 그대로 후배들에게 물려줘서 더 힘든 상황이 된 것 같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어 "남자 배구가 위기라는 말이 나오고 있지만, 지금 젊은 선수들이 잘해서 우리가 이루지 못한 꿈을 이뤄줬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누구보다 한국 배구 발전에 진심인 신영석은 최근 대표팀의 부진이 안타까웠다. 지난해 아시아배구연맹(AVC) 챌린지컵 3위, 아시아선수권대회 5위 등 아쉬운 성적을 거뒀고,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역대 최악의 성적인 7위에 머물면서 1962년 자카르타 대회 이후 61년 만에 노메달 수모를 당했다.
이에 신영석은 이번 올스타전에서 "대표팀이 팬들에게 실망을 드렸다. (남자 배구가) 밑바닥까지 떨어졌다고 본다"라며 쓴소리를 남긴 바 있다. 그는 "지금도 위기지만 더 밑바닥으로 내려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더 아래를 찍으면 많이 힘들어질 것 같다"면서 "선수들이 팬들에게 정말 잘해야 한다.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드려야 한다는 것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배구 발전을 위한 간절함 때문이었을까. 신영석은 올스타전에서 팬들을 위해 준비해 온 '슬릭백' 세리머니를 현란하게 선보이며 남자부 세레머니 상을 거머쥐었다. 여기에 경기 최우수 선수(MVP)로도 선정되며 '별 중의 별'로 우뚝 섰다.
신영석은 "여자 선수들은 정말 많이 준비하지 않는가. 그래서 이번에는 후배들이 새벽 2시까지 연습할 정도로 열심히 준비했다"면서 "물론 상은 내가 다 받았지만, 남자 배구가 살아나서 다시 영광의 순간을 되찾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고 말했다.
이어 "올스타전 전날 밤까지 고민이 많았다. 이 나이를 먹고 주책인 건 아닌지 싶었지만, 팬들께 배구 외적인 모습을 보여드리면 좋게 봐주시지 않을까 싶었다"면서 "다음에도 올스타로 뽑히면 부담이 될 것 같긴 하다. 그래도 또 잘 준비해서 잘하고 싶은 마음뿐이다"라고 진심을 전했다.
아울러 "대표팀이 잘해야 V-리그도 잘될 수 있다"고 강조한 신영석은 최근 대표팀의 세대교체에 기대감을 내비쳤다. 브라질 국적의 이시나예 라미레스 감독이 새롭게 지휘봉을 잡은 대표팀은 2024 AVC 챌린지컵을 앞두고 강화 훈련에 나섰는데, 엔트리에 30대 선수가 없을 정도로 연령층이 대폭 낮아졌다.
신영석은 "외국인 감독을 선임하고 좋은 방향으로 바뀌려고 하는 것 같다"면서 "이번에는 대회 성적을 떠나서 많이 지고 배우는 단계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여자 배구는 도쿄 올림픽 4강 신화를 이룬 뒤 인기가 수직 상승했다. 남자 배구도 그런 부분을 뼈저리게 느껴야 한다"고 덧붙였다.
소속팀 한국전력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외국인 선수 2명을 모두 교체했고, 맏형 박철우가 은퇴를 선언하며 신영석이 주장 완장을 이어받았다.
차기 시즌에는 신영석이 맏형이자 주장으로서 팀을 이끌어야 한다. 부담감이 커졌을 법도 하지만 그는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동기부여가 된다"면서 "지난 시즌의 후회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솔선수범한다면 큰 변화가 생길 거라 생각한다"고 각오를 다졌다.
신영석은 "(박)철우 형이 그렇게 팀을 이끌면서 팀에 많은 변화를 주고 가셨다"면서 "철우 형에게 너무 감사하고, 좋은 영향을 받으며 배턴을 이어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책임감이 큰 만큼 차기 시즌이 기대된다"고 이를 악물었다.
코트를 떠나는 박철우에 대해서는 "아쉬움도 있지만 늘 은퇴 이야기를 했다. 팀에 어떤 희생을 했고, 어떤 메시지를 남기고 가야 하는지 생각했다"면서 "철우 형이 원하는 방향성과 문화를 내가 그대로 이어받았다고 생각한다. 큰 변화는 없을 거고, 솔선수범하며 팀을 이끌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이어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하지 않나. 책임감은 무시할 수 없다. 주장으로서 팀을 이끌 새 시즌이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신영석은 "지난 시즌에는 겸손하지 못해서 우승하겠다는 말을 했다"면서 "겸손하게 생각하고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번에는 봄 배구만 할 수 있다면 후회는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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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왕=CBS노컷뉴스 김조휘 기자 startjoy@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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