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한국은 ‘노키아 리스크’에서 자유로운가
요즘 전 세계인의 주목을 끄는 가장 ‘핫(hot)’한 회사 가운데 한곳을 꼽으라면 아마도 노보노디스크가 빠지지 않을 것이다. 1923년 설립된 이 덴마크 기업은 일론 머스크, 킴 카디시안 등이 맞고서 살을 뺐다는 다이어트 주사 위고비와 당뇨병 치료제 오젬픽을 잇따라 선보여 커다란 매출 성과를 거뒀다. 출시 이후 품귀 현상을 빚을 정도로 크게 인기를 끌었던 이 히트 상품들 덕분에 노보노디스크는 올해도 두 자릿수의 매출 성장률을 기대하고 있다.
노보노디스크의 매출 증가는 단지 회사의 이익으로만 이어진 것이 아니라, 경제 성장에도 크게 이바지했다. 지난달 뉴욕타임스(NYT)는 “노보노디스크가 (제약사가 위치한) 칼룬보르그(Kalundborg) 공장에 1250명의 일자리를 추가할 계획”이라며, “이로 인해 이 지역 고속도로가 확장되고 투자자들은 주택을 구입해 새로운 건축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전했다. 인구 2만 명도 채 되지 않은 작은 소도시가 칼룬보르그가 노보노디스크 덕분에 활기를 띠게 된 것이다. 또한 지난해 덴마크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유럽에서 가장 높은 1.9%를 기록한 것도 노보노디스크에 힘입은 바가 크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일각에선 노보노디스크가 노키아의 전철을 밟을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한때 세계 1위 휴대폰 제조업체였던 노키아는 핀란드 전체 GDP의 4%, 전체 수출의 25%를 차지했을 정도로 핀란드 경제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노키아의 전성기였던 2007년 노키아의 시가총액은 헬싱키 증시의 70%를 차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피처폰의 제왕’ 자리에 도취돼 있던 노키아는 곧이어 도래할 스마트폰의 시대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고, 그 결과 쇠락의 길을 걷다가 2014년 마이크로소프트에 인수됐다.
노키아라의 몰락으로 단일 기업에 의존도가 컸던 핀란드 경제 역시 직격탄을 맞았다. 2012년부터 2014년까지 핀란드 경제는 3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고, 2015년 실업률은 10%를 넘어서기도 했다. ‘노키아 리스크(Nokia Risk)’라는 신조어까지 만들게 된 이 현상은 작은 나라가 소수의 특정 기업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고, 그 특정 기업에 혁신이 부족할 경우 국가 경제의 파국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렇다면 한국은 이 노키아 리스크로부터 과연 자유로울까. 지난달 한국은행이 발표한 우리나라 1분기 실질 GDP는 직전 분기 대비 1.3% 성장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대비하면 3.4% 성장한 것으로, 8분기 만에 3%대 성장률을 기록했다. 이 서프라이즈 실적이 가능했던 주요 원인으로 전문가들은 반도체가 견인한 수출 회복을 꼽는다. 대한민국 수출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반도체가 작년 10월부터 경기 침체에서 벗어나 본격적으로 반등하기 시작했고, 덕분에 작년 10월부터 반도체 수출이 6개월 연속 증가세를 그려 GDP 깜짝 성장이라는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한국의 경기 흐름은 이처럼 반도체 업황 사이클과 부침(浮沈)을 같이하는 경향이 있다. 메모리 반도체가 슈퍼 호황기를 맞아 삼성전자가 사상 최대 영업 이익인 59조원을 기록했던 2018년, 대한민국 수출 역시 2016년 대비 1000억달러 이상 늘어난 6049억달러를 기록했다. 반면 D램 가격이 급락해 삼성전자 영업 이익이 전년 대비 반토막이 난 2019년엔 수출 역시 전년 대비 10% 줄어들었다.
이토록 우리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반도체 분야에서 지난 몇 년간 글로벌 경쟁이 전에 없이 치열해졌다. 미국은 2022년 일명 ‘칩스법’이라 불리는 반도체 지원법을 제정해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세우는 기업에 5년간 총 527억달러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했고, 일본과 유럽연합(EU) 역시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앞다퉈 보조금 지급에 열을 올리고 있다. 국내 반도체 기업으로선 조만간 공급 과잉 홍수 속에서 극심한 경쟁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한국 경제가 의존해 왔던 반도체를 대체할 종목은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 무인(無人) 전기차, 양자 컴퓨터, 인공 지능 로봇 등 차세대 혁신 기술로 일컬어지는 분야에 대한 연구·투자 역시 충분한 수준인지 의문이다. 한때 피처 휴대폰 시장을 호령하다 이제는 추억의 브랜드가 된 노키아의 사례를 우리가 그저 남의 나라 일이라고 무심히 보아 넘길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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