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째 150만원, 한푼도 안 오른 ‘자녀 공제’
세계 최악의 저출생 국가인 우리나라에서 자녀에 대한 소득공제액은 1인당 150만원으로 2009년부터 16년째 그대로다. 이 기간에 물가가 36%나 올랐는데도 제자리걸음이다. 독일과 미국 등이 물가 상승 폭 이상으로 공제액을 늘려온 것과 대조적이다.
부양가족 소득공제는 소득이 없는 자녀와 배우자 등 부양가족 1인당 150만원을 소득에서 공제하는 제도다. 자녀 2명을 둔 외벌이 가구의 경우 과세표준(세금을 매기는 기준)을 계산할 때 연봉에서 450만원을 빼준다는 뜻이다. 자녀가 많을수록 생계비가 많이 든다고 보고 자녀 1인당 100만원씩 공제해주다가 2009년 귀속분부터 150만원으로 올렸는데 이후 16년째 바뀌지 않았다. 올해 4월 소비자물가는 2009년 4월에 비해 35.9% 올랐고, 지난해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4405만원으로 2009년(2441만원)에 비해 80.5%나 늘었다. 소득이나 물가 수준은 크게 높아졌지만, 자녀에 대한 세금 혜택은 변하지 않은 것이다. 반면, 독일은 자녀 1인당 소득공제액이 올해 3192유로(약 470만원)로 2009년(1932유로)에 비해 65.2%나 올랐다.
자녀에 대한 세금 혜택이 동결되는 동안 여성 1명당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녀 수인 합계 출산율은 2009년 1.15명에서 지난해 0.72명으로 추락했다. 심각한 저출생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무분별하게 수백조 원을 쏟아붓는 대신 자녀 수에 따라 많은 세제 혜택을 주는 가족 친화적인 세제 개편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성효용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한국재정정책학회장)는 “자녀 소득공제를 현행의 2배로 늘리면 정부가 국민들에게 ‘자녀를 낳으면 혜택을 준다’는 분명한 시그널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맞벌이 김모(46)씨 부부는 지난 2월 말 근로소득 연말정산에서 모두 합쳐 200만원을 토해냈다. 중1·초5 자녀 때문에 받을 수 있는 자녀 인적 공제는 300만원이었지만, 급여가 더 많은 남편에게 몰아주고 김씨는 자녀 공제를 받지 못했다. 김씨는 “남편과 합쳐 받은 신용카드 소득공제만 500만원이 넘는데 두 자녀 때문에 받은 혜택이 이보다 적다니 허탈하다”며 “저출생 문제를 해결한다고 매년 수십조원을 쓴다는데 그 돈은 도대체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한국은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11년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합계 출산율이 꼴찌인 국가지만, 가족 친화적인 세제 혜택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표적인 게 자녀 인적 공제다. 자녀 인적 공제는 자녀 수가 많을수록 소득세 공제 규모가 커지는 대표적인 다자녀 가구를 위한 세제 혜택인데, 주요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6년째 같은 금액인 한국의 자녀 1인당 소득공제액은 150만원으로, 저출산 위기가 심각한 이웃 나라 일본의 절반도 안 된다. 일본은 자녀 1인당 38만엔(약 330만원)을 공제해준다. 또 일본은 자녀가 19세 이상 성인이더라도 소득이 없는 23세 이하 학생은 25만엔을 공제해준다. 반면, 우리나라는 소득이 없는 자녀도 만 20세를 넘으면 자녀 공제를 해주지 않는다. 대학생 자녀 상당수가 자녀 공제를 받지 못하는 것이다.
독일은 매년 물가 수준 등을 감안해 자녀 공제액을 조정한다. 독일의 자녀 1인당 공제액은 올해 3192유로로 2009년에 비해 65% 넘게 올랐다. 같은 기간 독일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7%였는데, 자녀 공제액 확대 폭이 물가 상승 폭보다 컸던 것이다. 또 맞벌이 부부는 한 명만 자녀 공제를 받을 수 있는 우리나라와 달리, 독일 맞벌이 부부는 각각 자녀에 대해 공제를 받을 수 있다. 부부 공제액을 합치면 혜택이 자녀 1인당 6384유로(약 940만원)까지 늘어난다. 독일의 합계 출산율은 1.58명(2021년 기준)으로 한국의 두 배를 넘는다.
미국의 1인당 자녀 공제액은 4050달러(약 555만원, 2017년 기준)에 달했다. 미국도 독일과 마찬가지로 물가 수준에 맞춰 매년 공제액을 조정하는 나라다. 다만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대대적 감세 조치를 단행하면서 중복을 피하기 위해 2018년부터 올해까지 자녀 공제를 한시적으로 중단한 상태다.
오종현 조세재정연구원 조세정책연구실장은 국회 예산정책처가 발간한 ‘예산춘추’ 기고에서 “가족 친화적인 소득세제 개편이 필요하다”며 “(자녀 등 부양가족) 기본공제는 2009년부터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어 물가 상승 등을 고려할 때 인상의 여지가 충분히 있다”고 했다. 까다로운 조건에 얽매이지 않는 자녀 인적 공제를 높이는 게 저출산 대응에 효과적이라고 오 실장은 주장했다.
합계 출산율이 세계 최초로 1명 밑으로 떨어진 2018년(0.98명)을 전후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자녀 인적 공제 등 가족 친화적 세제 혜택을 대폭 늘리자는 주장이 나왔다. 소득 수준과 무관하게 현금성 지원을 무작정 늘리기보다는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이 낸 세금에서 일부를 돌려주는 방식의 소득공제가 효과적이고, 형평성 논란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세수가 줄어든다는 이유로 미온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실제로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150만원인 1인당 자녀 소득공제액을 170만원으로 늘리고 매년 물가에 연동해 공제액을 늘리는 시나리오의 경우 매년 2조4000억원의 세수가 줄어든다는 추산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올해 77조원에 달하는 비과세·감면 혜택을 저출생 대응 위주로 개편해 자녀가 있는 가구에 대한 세제 혜택을 대폭 늘려야 한다”고 했다. 또 소득세제를 손질해 소득세를 한 푼도 내지 않는 면세자 비율(2022년 기준 33.6%)을 줄여야 한다고 했다. 오 실장은 “국민 모두가 단돈 1000원이라도 세금을 내서 재원을 마련하고, 이 재원을 저출생 등 주요 사회 문제에 대응해 쓰는 방식으로 조세 제도를 개편해야 한다”고 했다.
☞자녀 인적 공제
소득세를 매기는 기준인 과세표준을 계산할 때 만 20세 이하 자녀 1인당 150만원을 공제해주는 제도다. 자녀가 많을수록 생계비가 더 든다고 보고 세금을 깎아주자는 취지지만, 2009년부터 16년째 기준이 변하지 않아 개편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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