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진의 IT 프리즘] 일본 라인사태 다르게 보기
최근 화제가 된 일본 라인 사태와 관련해 2005년 일본 도쿄 에비스에서 열렸던 네이버(당시 NHN재팬) 기자간담회에 참석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지금의 라인 사태의 단초는 그때부터 시작됐다.
당시 네이버가 일본 공략을 위해 선택한 것은 철저히 현지화한 마작, 파친코 등의 온라인 게임이었다. 하지만 인터넷 속도가 한국보다 떨어지고 가정용 게임기(콘솔) 중심이었던 일본에서 온라인 게임은 성공하기 어려웠다.
이때 등장한 구원투수가 '라인의 아버지'로 불리던 신중호 라인 최고제품책임자(CPO)를 비롯한 첫눈 출신 개발자들이다. 첫눈은 장병규 크래프톤 의장이 네이버를 누를 만한 검색 서비스를 만들려고 창업한 회사다. 실제 첫눈은 네이버를 누르고 구글과 겨룰 만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여러 곳에서 인수 제안을 받았다. 네이버는 2006년 350억 원을 들여 첫눈을 인수한 뒤 1년 만에 첫눈의 검색 서비스를 중단했다. 네이버 독주를 위한 경쟁 서비스 죽이기였다.
졸지에 미아가 된 첫눈 개발자들에게 주어진 임무는 일본판 네이버 검색 서비스 개발이었다. 2007년 첫눈 개발자들은 그렇게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판 네이버를 만들었으나 소프트뱅크의 강력한 포털 서비스인 야후재팬을 따라잡기 힘들었다.
기로에 선 네이버에 돌파구가 된 것이 2011년 신씨가 만든 모바일 메신저 '라인'이다. 그는 당시 일본 도호쿠 대지진 때 사람들의 비상 연락망이 없다는 것에 착안해 라인을 개발했다.
네이버는 라인이 인기를 끌자 포털이 아닌 라인에 여러 네이버 서비스를 붙이는 방향으로 일본 전략을 다시 짰다. 이를 위해 네이버가 일본에서 갖지 못한 이동통신과 포털에 강점을 가진 소프트뱅크와 손잡고 절반씩 지분을 가진 A홀딩스를 설립해 라인을 운영하는 라인야후를 그 아래 두었다.
이후 네이버 출신들이 서비스를 총괄했으나 안팎에서는 라인결제, 라인망가, 라인뱅크 등 라인에 접목된 네이버 서비스들이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정작 일본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모바일 결제서비스인 소프트뱅크의 '페이페이' 등은 라인에 도입되지 않았다.
결국 라인과 네이버의 연계효과에 대한 의문이 안팎에서 나오면서 A홀딩스의 경영권은 점차 소프트뱅크로 넘어갔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미 라인은 지분 구조와 상관없이 이사회를 장악한 소프트뱅크가 경영과 서비스를 총괄하는 상태다. 사실상 지분 변경이 의미 없다는 뜻이다. 현지 소식통에 따르면 인공지능(AI) 반도체 개발에 온통 정신을 쏟는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도 작은 회사에 불과한 라인의 지분 변경에 관심이 없다.
여기에 우리처럼 통합 정부 사이트나 앱이 없는 일본 정부는 대국민 소통을 라인에 의존했다. 일본 총무성 조사에 따르면 정부 기관의 78%, 지자체의 65%가 라인을 사용한다. 이런 상황에 지난해 11월 라인이 해킹으로 정보가 유출됐으니 일본 총무성으로서는 민감할 수밖에 없다. 관건은 총무성 행정지도에서 언급한 'secure governance'의 해석이다. 글자 그대로 보안 정책으로 볼지, 지분 변경까지 확대할지 여부에 따라 느낌이 다를 수 있다.
이를 감안하면 우리 정부가 라인의 보안대책 수립을 위해 네이버를 지원하겠다는 발표는 하면 안 될 말이다. 어느 나라든 외국기업이 제공하는 서비스에서 외국 정부가 보안에 관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스파이 짓으로 의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사태의 맥락을 냉정하게 짚어보고 국민들이 오해하지 않도록 바르게 알리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네이버가 일본에서 라인의 위상에 비례해 가치를 제대로 키우지 못한 것을 이번 사태의 핵심으로 본다. 네이버는 막대한 돈이 들어가는 '하이퍼클로바X' 등 AI 개발을 위해 지난해부터 자산을 꾸준히 매각하고 있다. 이 시점에 가장 현명한 판단은 네이버가 라인야후의 지분을 정리해 실익을 챙기고 그 돈을 AI 등에 투자해 회사 가치를 올리는 것일 수 있다.
최연진 IT전문기자 wolfpa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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