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왼손 타고 흘러 그림이 된… 5월, 그날의 기억

이호재 기자 2024. 5. 18. 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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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 앞 광장이 붉게 물들어 있다.

수많은 시민이 희생된 비극 이후를 훨훨 날아가는 노란색 나비 떼가 가득한 묘지 그림으로 그렸다.

그는 왼손으로 자신의 삶을 담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특히 저자가 왼손으로 그린 그림들엔 어설프지만 솔직한 기억이 담겨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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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국제노인영화제 ‘대상’ 수상
5·18 생존자가 펴낸 그림 에세이
◇양림동 소녀/임영희 지음/160쪽·1만6800원·오월의봄
시청 앞 광장이 붉게 물들어 있다. 광장 곳곳엔 새빨간 구두와 하얀 운동화가 버려져 있다. 광장 분수대에서 흘러나오는 물줄기의 색도 시뻘건 색이다. 열 갈래로 퍼져 나오는 각 물줄기 끝엔 사람의 눈이 그려져 있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총에 맞아 쓰러진 광주 시민들의 눈을 형상화한 것이다.

이 책은 5·18민주화운동 생존자의 그림 에세이다. 1956년 전남 진도에서 태어난 저자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광주로 전학 왔다. 도시에서 학교생활은 만만치 않았다. 친구들은 시골에서 왔다며 대놓고 무시했다. 교사들은 엄격했다. 그를 위로해 준 건 광주 양림동의 한 도넛 가게였다. 저자는 “엄청 맛있어서 혓바닥이 튀어나올 정도”라며 천진난만하게 유년 시절을 회고한다.

그는 1978년 조직된 광주·전남 최초의 여성 민주화운동 단체 송백회의 창립 멤버가 된다. 하지만 곧 5·18이 터진다. 공격받은 시민들의 모습은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신간에서 그는 5·18을 은유적으로 그려낸다. 당시 여성 시민군이 대항하던 모습을 빨간 리본으로 얼굴을 가린 여성들이 손을 잡은 그림으로 형상화했다. 수많은 시민이 희생된 비극 이후를 훨훨 날아가는 노란색 나비 떼가 가득한 묘지 그림으로 그렸다. 저자는 5·18 이후 자신의 마음을 이렇게 표현한다.

“그때부터 생긴 불면증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어. 잠깐 자면 꿈을 꾸는데, 어떤 눈이 항상 나를 따라다니는 것 같았어.”

평생 그는 5·18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뛰어다녔다. 하지만 트라우마와 스트레스로 인해 급성 뇌졸중이 찾아왔고 오른손이 마비됐다. 그는 왼손으로 자신의 삶을 담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림을 모아 2022년 만든 단편 애니메이션 ‘양림동 소녀’는 지난해 서울국제노인영화제 단편경쟁부문 대상을 받았고 신간까지 내게 됐다.

5·18은 그동안 여러 예술로 표현되곤 했다. 하지만 생존자가 직접 쓴 에세이와 그림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특히 저자가 왼손으로 그린 그림들엔 어설프지만 솔직한 기억이 담겨 눈길을 끈다. 예술이 삶을 구원할 수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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