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붐에 웃는 ‘닥터 코퍼’… 전력 소비 늘자 ‘21세기 석유’로
챗GPT 전력 사용량, 구글 검색의 10배… 훈련 때 13만 가구 하루 사용량 소비
전력망 핵심 소재 구리 가격 올라… “연내 사상 최고치 갈아치울 것”
대체재 알루미늄도 덩달아 ‘들썩’
국내외 에너지-원자력 등 주가 호황… 22일 엔비디아 실적 발표에 시선 쏠려
인공지능(AI)발(發) 글로벌 전력 수요가 급증하면서 구리가 ‘21세기 석유’로 급부상하고 있다. 구리는 높은 전기 전도성을 앞세워 전선 등 전력 관련 기기의 핵심 소재다. 전력 수요 확대에 대비해 전 세계에서 자원 확보 전쟁이 펼쳐지면서 구리 가격이 치솟고 있다. 16일(현지 시간) 뉴욕상품거래소에서 구리 선물 거래가격이 t당 1만1000달러를 뛰어넘으면서 역대 최고가를 달성했다. 구리의 대체재인 알루미늄 가격도 지난달에만 10% 넘게 오르는 등 글로벌 자산시장이 들썩이고 있다.
인공지능(AI) 시대가 도래하면서 산업뿐만 아니라 글로벌 자산시장에서도 커다란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AI 시스템을 실행시키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전력이 필요한 만큼 전력 생산의 기반이 되는 자산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특히 ‘닥터 코퍼(Dr. Copper)’로 불리며 실물 경기의 바로미터로 통하는 구리는 AI발 전력 전쟁 시대의 핵심 자원으로 꼽히며 ‘21세기 석유’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와 함께 2010년 이후 제자리걸음을 걷던 전선, 전력기기 등은 ‘AI 테마주’로 엮이면서 모처럼 상승 랠리를 펼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이후 잠잠했던 신재생에너지나,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침체기를 겪던 원자력 발전도 전력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 ‘전기 먹는 하마’ AI 검색 전력량, 구글 대비 10배
AI의 수요가 급증하면서 전력 고갈에 대한 우려마저 커지고 있다. AI는 대량의 데이터를 학습해 추론하기 때문에 막대한 부하가 발생하고, 이 과정에서 대규모 전력을 사용하게 된다. 메타의 최고경영자(CEO)인 마크 저커버그는 최근 인터뷰에서 “그래픽처리장치(GPU) 가뭄은 끝났다”며 “앞으로 AI의 성장은 전력이 좌지우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챗GPT 개발사인 오픈AI가 챗GPT-3 모델을 훈련할 때 소비한 전력은 1.3GWh(기가와트시)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1GWh는 4인 기준 10만 가구가 하루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전력량이다. 훈련보다 추론에 더 많은 전력이 드는데, AI가 문서를 생성하는 데 필요한 전력량은 문서를 분류할 때 대비 23배에 달한다. 이미지를 생성하는 데는 145만 배 이상의 전력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AI의 전력 소비는 대부분 데이터센터에서 이뤄진다. 데이터센터를 통해 학습과 추론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AI 데이터센터의 핵심인 GPU의 전력 소비량부터 만만치 않다. 엔비디아 주력 GPU인 H100의 1개당 연간 전력 소비량은 3.7MWh(메가와트시)로 알려졌다. 엔비디아가 올해 말까지 350만 개의 H100을 판다고 가정하면 H100 사용에 따른 전력 소비량만 연간 130TWh(테라와트시)에 달한다.
데이터센터의 온도를 유지하고 냉각시키는 데도 대규모 전력이 필요하다. 한 데이터센터 관계자는 “데이터센터 전체 전력량 중 40%는 냉각에 쓰인다”며 “데이터센터 업체들이 추운 지방을 선호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AI로 인한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량이 급증할 것으로 예상했다. IEA는 2026년 데이터센터 전력 사용량이 최대 1050TWh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데이터센터의 2022년 전력 사용량이 460TWh였다는 것을 고려하면 불과 4년 만에 590TWh가 늘어나는 셈이다. 이는 한국의 2022년 연간 전력 사용량(568TWh)보다 많다. 웰스파고는 2030년 미국에 있는 AI 데이터센터에서만 323TWh의 전력을 사용할 것으로 내다보기도 했다.
일상적인 검색에서도 AI의 전력 사용이 많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구글 검색에 평균 0.3Wh(와트시)가 필요하지만, 챗GPT는 한 번 질문을 주고받을 때 2.9Wh의 전력이 필요한 것으로 조사됐다. 10배 가까운 전력이 소모되는 셈이다. 최근 개발된 챗GPT-4를 비롯해 성능이 향상된 생성형 AI를 활용할 경우 전력 소비량은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 금보다 높이 뛴 구리… 역대 최고가 돌파 예상도
AI로 촉발된 전력 확보 전쟁이 구리 가격 상승에 기름을 부은 것으로 풀이된다. 에너지 시장 분석 업체인 블룸버그뉴에너지파이낸스에 따르면 글로벌 전력망 투자액은 2020년 2350억 달러에서 2030년 3720억 달러, 2050년 6360억 달러로 급증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력망 구축은 결국 배전·송전망 등 구리 전선을 까는 것이기 때문에 구리 수요도 급증할 수밖에 없다. 데이터센터 건설에도 막대한 구리가 필요하다. 전원 케이블을 비롯해 열교환기, 배전 스트립, 전기 커넥터 등에도 구리가 사용되기 때문이다. 미국 구리개발협회(CDA)에 따르면 데이터센터를 건설하는 데 1MW(메가와트)당 27t의 구리가 필요하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오픈AI는 2028년까지 1000억 달러를 데이터센터 구축에 투자한다는 계획을 내놨고, 아마존도 향후 15년간 150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해마다 늘어나는 데이터센터 규모를 고려하면 구리 사용량은 상상을 초월할 것으로 예상된다.
JP모건은 최근 AI발 구리 수요 폭증으로 인해 2030년까지 구리 수요가 추가로 230만 t 이상 발생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지난해 구리 연간 생산량(2240만 t)의 10%를 넘는 수치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올해 내에 구리 가격이 사상 최고치(1만845달러)를 넘어 1만1000달러 이상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
황병진 NH투자증권 연구원은 “AI로 인한 구리 소비량이 많이 늘어나면서 지난해 10월 기준 40만 t이 넘을 것으로 예상됐던 공급 과잉 물량이 최근 16만 t으로 줄었다”며 “장기적인 수요 낙관론이 호재로 작용하면서 t당 가격이 1만1000달러 이상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구리 가격이 급등하면서 구리의 대체재로 취급받는 알루미늄 가격도 덩달아 오르고 있다. 알루미늄 선물가격은 지난달에만 10% 넘게 오르면서 t당 2500달러 이상에 거래되고 있다.
● 다시 뛰는 전력 인프라·에너지 관련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14일 종가 기준 대한전선의 주가는 1만7240원이다. 4월 초까지 1만 원대에 머물렀지만, 한 달여 만에 급등했다. 올 들어 주가는 무려 71.0% 올랐다. 올해 들어 같은 전선 업체인 대원전선(318.3%), 가온전선(200.0%) 등도 주가가 3배 넘게 뛰었고, 전력기기 업체인 HD현대일렉트릭(212.0%), 제룡전기(234.2%), LS ELECTRIC(132.9%) 등도 2배 이상 올랐다.
글로벌 전력 인프라 업체들의 주가도 상승세를 보였다. 15일(현지 시간) 종가 기준으로 글로벌 1위 전선 업체인 프리즈미안의 주가는 올 들어서만 37.6% 올랐고, 미국 에너지 설비 기업인 이튼도 40.3% 상승했다.
한동안 주춤했던 원자력이나 신재생에너지에 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특히 AI 붐을 이끄는 빅테크 업체들이 인수합병(M&A)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시장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오픈AI 창업자인 샘 올트먼은 태양광을 비롯해 핵융합, 소형모듈원전(SMR) 등 다양한 에너지 업체에 투자하고 있다. 아마존 창업자인 제프 베이조스도 캐나다의 핵융합 발전 업체의 지분을 사들였다.
원자력과 신재생에너지가 주목받으면서 관련 종목의 주식들도 급등했다. 미국 최대 원전운영 업체인 콘스털레이션에너지는 올해 초까지만 해도 주가가 116.89달러 수준이었지만, 15일(현지 시간) 종가 기준 223.31달러까지 오르며 91.0% 상승했다. 글로벌 SMR 1위 업체인 뉴스케일파워(113.1%)와 글로벌 신재생에너지 1위 기업인 넥스트에라에너지(26.9%)의 주가도 연초 이후 크게 올랐다.
한편 AI발 원자재 가격 급등이나 전력 인프라 및 에너지 관련 주식의 상승 폭이 과도하다는 경고도 나온다. 안형진 빌리언폴드자산운용 대표는 “현재 국내외 전력 관련 종목들의 주가는 AI에 대한 기대감이 충분히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며 “이들 종목이 계속 상승할지는 22일 나올 AI 대장주 엔비디아의 실적 발표에 달려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에너지 공급원 확보 놓고 대규모 투자 경쟁
전력난 우려에 맘 급해지는 빅테크들
MS는 재생에너지 수급에 13조 원 쏟고
오픈AI-아마존, 핵융합 스타트업에 투자
넷제로 달성까지 ‘1석2조’ 효과 기대
MS는 1일(현지 시간) 글로벌 대체자산운용사 브룩필드의 재생에너지 전기 프로젝트에 100억 달러(약 13조4600억 원)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MS는 향후 브룩필드로부터 10.5GW(기가와트) 규모의 재생에너지를 공급받는 계약을 맺었다. 단일 기업의 전력구매계약(PPA)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MS는 지난해 6월 미국 버지니아주에 있는 데이터센터를 가동하기 위해 미국 최대 원전 운영 업체인 콘스털레이션에너지로부터 원전 에너지를 사들이는 PPA를 체결하기도 했다.
아마존은 올해 3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 있는 데이터센터를 6억5000만 달러에 인수했는데 이후 인근 원전에서 향후 10년간 100% 전력을 공급받기로 계약을 맺었다. 구글도 데이터센터의 전력을 공급받기 위해 지열발전 스타트업 페르보와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빅테크 및 창업자들이 재생에너지나 원전 스타트업에 직접 투자하면서 청정에너지 공급원 확보에 나서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오픈AI 창업자인 샘 올트먼은 최근 태양광 스타트업인 엑소와트에 2000만 달러를 투자했다. 올트먼은 엑소와트 외에 핵융합 스타트업인 헬리온, 소형모듈원전(SMR) 개발사인 오클로에도 투자했다. 헬리온은 지난해 MS와 2028년부터 매년 50MW(메가와트)의 전기를 공급한다는 계약을 맺기도 했다.
MS 창업자인 빌 게이츠는 SMR 개발사인 테라파워를 비롯해 핵융합 스타트업 커먼웰스퓨전시스템 등에 대규모 자금을 투자했다. 아마존 창업자인 제프 베이조스도 최근 캐나다의 핵융합 스타트업 제너럴퓨전에 투자했다.
테슬라는 2016년 태양광 기업 솔라시티를 인수했고, 인도에 전력저장장치 ‘파워월’ 생산 공장 설립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빅테크들이 재생에너지나 원전 투자에 나서는 것은 전력 확보와 동시에 넷제로 달성을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현재 아마존을 제외한 대부분의 빅테크들은 ‘RE100’에 가입한 상태다. RE100은 ‘재생에너지(Renewable Electricity) 100%’의 약자로, 2050년까지 기업 활동에 필요한 전력 100%를 풍력·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로 충당해야 한다는 글로벌 캠페인이다.
이동훈 기자 dh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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