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프레소] 지금 보수에게 필요한 건 ‘문샷 프로젝트’

조귀동 경제칼럼니스트 2024. 5. 17.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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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새마을운동’ 사라진 보수… 구조 바꾼 美 레이건 사례를 보라
고만고만한 정치공학 아니라 초대형 프로젝트로 혁신해야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 신흥국을 방문했을 때 놀랐던 것 중 하나는 새마을운동의 가치다. 녹색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자신의 마을을 바꿔 보겠다는 열의에 찬 모습을 보면서, 근면‧자조‧협동의 정신으로 향촌 사회를 주체적으로 바꿔 나갔던 새마을운동이 신흥국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울림을 주는지 알게 됐다.

새마을운동은 단순한 농촌 근대화 운동이 아니었다. 박선경 고려대 교수, 양현주 서강대 교수, 홍지연 미국 미시간대 교수는 최근 연구에서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승리하는 데 새마을운동이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는 결과를 내놨다. 과거의 투표 행태와 무관하게 새마을운동이 활발히 이뤄져 지원금을 많이 받은 지역일수록 박 후보 득표가 늘었다는 것이다. 특별시·광역시를 제외하면, 1974~1978년 받은 지원금이 1% 많을수록 박 후보 득표율이 1.5%포인트씩 높았다. 국가의 강력한 지원과 낡은 관습이 남아 있던 마을을 바꾸겠다는 주민들의 의지가 결합된 대규모 사회 개조 프로젝트의 기억이 유권자의 마음속에 수십 년간 남아 있었던 것이다.

새마을운동 이후 세대에서 보수 정당에 대한 지지가 뚜렷하게 줄어들고 있다. 4월 총선에서 지상파 3사의 출구조사에 따르면 60대 남성의 범민주당계 정당(더불어민주연합‧조국혁신당‧새로운미래) 지지율은 43.8%로 국민의미래 지지율 46.9%와 큰 차이가 없었다. 1978년에 20세, 지금 66세인 58년생 이후 연령대는 나이가 들더라도 보수화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보수는 1990년대 이후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칠 초대형 프로젝트를 기획하지 않았다. 복지사회 건설은 1970년대 중후반부터 강조됐고, 중산층 육성은 1980년대의 주된 국정 과제였다. 반면 이명박 전 대통령의 공정사회나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등은 몇 년 지나면 누구도 언급하지 않는 선거용에 가까웠다. 보수는 새로운 가치·정책·이데올로기를 내재화시키지 않았다. 세입자가 많은 빌라촌에서도 재개발을 주된 선거 공약으로 내걸 정도로 부동산에 매달리는 정당이 되다시피 했다. 자체적인 프로그램이 없다 보니 경제 관료에 의존해 단기적이고 현상 유지적인 정책만 내놓게 됐다. “명확한 국가 전략 없이 모호한 정책 수행을 하다 보면 이내 지지를 잃게 된다”고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경고한 행동이 반복됐다.

미국 공화당이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당선을 계기로 오랫동안 주도권을 쥐었던 건 민주당의 ‘뉴딜 연합’을 대체하겠다는 기획이 성공했기 때문이다. 1970년대 중반까지 공화당은 심각한 열세였다. 공화당은 개방형 경선제(프라이머리)를 도입해 폐쇄적인 지도부나 강성 당원 대신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대선 후보들이 경쟁하게 했다. 가족·노동·이웃의 가치를 강조하는 사회적 보수주의를 감세를 필두로 내세운 경제적 보수주의와 결합하면서 민주당의 텃밭이었던 동북부 노동자들을 공략하는 데 성공했다.

지금 보수 정치에 필요한 것은 ‘문샷 프로젝트’(달로 사람을 보내는 것과 같은 대규모 계획) 같은 원대한 목표를 가진 정치 기획과, 그것을 만들어내는 상상력과 추진력이다. 꼭 필요하면서도 쉽사리 방법을 찾지 못하는 사회 문제에 대한 과감한 해법을 내놓아야 한다. 가령 서울 편입이나 GTX 노선 조기 착공 같이 현상 유지에 기반한 고만고만한 정책이 아니라, 아예 국토 공간 구조를 확 바꾸겠다는 현상 타파적 정책이 필요하다. 경기도 신도시에 사는 30~40대 중산층의 목소리가 가장 많이 반영되도록 조직 구조를 바꿀 수도 있다. 보수가 제대로 혁신을 하기 위해선 고만고만한 정치 공학이 아니라 사회 전체를 바꾸고, 정치 지형을 뒤흔들겠다는 목표와 노력이 필요하다.

조귀동 경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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