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웅정 “우리 팀은 유소년 리그 매번 진다…중요한 건 기초”

김창금 기자 2024. 5. 17.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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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나는 읽고 쓰고 버린다’ 교보문고 사인회
‘기다릴 줄 아는 학부모론’ 언급…기본기 강조
손웅정씨가 16일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열린 저자 사인회에서 독자와 만나고 있다.

저자이며 사색가인 손흥민의 아버지 손웅정 SON축구아카데미 감독이 또다시 화두를 던졌다. 축구 현장이든 교실이든, 스승에 대한 존중심이 필요하지 않으냐는 문제 제기다. 올해 초 언론 인터뷰에서 “아이들은 부모 뒷모습 보고 성장한다”며 어른의 자세를 강조한 데 이어 다시 죽비를 날렸다.

손웅정 감독은 16일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열린 저서 ‘나는 읽고 쓰고 버린다’(난다)의 작가 사인회 뒤 특유의 비판의식으로 갈수록 추락하는 스승의 위상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손 감독은 “요즘엔 축구장이나 교실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을 많이 생각하게 된다. 학부모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하지만, 일부 극성스러운 학부모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들도 있다”고 말했다.

손 감독이 스승에 대한 존중심을 강조하는 이유는 본인 또한 현장에서 축구를 가르치는 지도자이고, 많은 유소년 축구 감독들이 경험하는 현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회비로 운영되는 유소년 클럽의 경우 지도자들은 학부모들의 ‘갑질’에 속을 끓이기도 한다.

손 감독은 “유소년 축구 무대에 나가보면 학부모들이 감독이나 코치 역할을 한다. 아이가 골을 넣으면 난리가 난다”며 “어린 시절에 한 경기에서 이기고, 골 하나 넣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좀 더 멀리 바라보고, 관전해도 차분하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손 감독이 가르치는 SON축구아카데미에서는 학부모들의 분위기가 다르다. 일단 SON축구아카데미에서는 승리나 골은 중요하지 않고, 학부모들도 이를 잘 알고 있다. 손 감독은 “유소년 축구리그에 출전하면 우리 팀은 매번 진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강조하는 것이 골이 아니다. 우리는 골 넣는 훈련도 안 한다. 대신 우리가 해오던 빌드업과 패스를 하면 10골을 먹어도 된다고 말한다. 이런 과정을 거친 우리 아이들은 5년 뒤, 10년 뒤에 완전히 다른 선수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축구의 근원적인 문제는 허약한 유소년 축구 기반이다. 스폰지처럼 아이들의 흡수력이 좋은 이 때에는 기초부터 다져야 하지만, 지도자들은 학부모들의 성화에 성적에 연연할 수밖에 없다. 이러다 보니 대기만성하는 선수가 나오기 어렵고, 일찍이 기교만 배운 선수들은 나중에 탈락한다.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수십년간 이런 풍토는 바뀌지 않고 있다. 손 감독은 자신이 배웠던 방식과는 정반대로, 아들 손흥민을 자신이 새롭게 만든 프로그램에 따라 키웠고, 이 배경에서 아시아 최초의 프리미어리그 득점왕 경력 등을 자랑하는 세계적인 한국 축구 스타가 나왔다.

손 감독은 손흥민을 가르칠 때 기본기에만 7~8년을 쏟았다. 슈팅 연습과 웨이트 등 근육 훈련은 육체적 성장 속도에 맞게끔 조절했다. 아이들에게 생각 없이 뛰라고 하거나, 공을 걷어내는 로봇이 되라고 하는 것은 금기다. 대신 유소년 지도자들은 투쟁심과 기술력, 자신감이 넘치는 선수가 되도로 아이들을 키워야 한다.

손 감독은 “아카데미에서는 학부모가 지켜보더라도 훈련을 할 때는 매우 엄격하게 한다. 반복된 상황에서 실수하면 화를 낼 때도 있다. 하지만 훈련이나 경기가 끝나면 선수들을 포옹해준다. 그런 허그(껴안음)가 있어야 아이들이 기죽지 않고 축구에서 가장 중요한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고 했다.

물론 지도자는 아이들보다 더 많이 뛰고, 더 많이 고민해야 한다. 지난해 중반부터는 영국보다 국내에 오래 머무르면서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고, 엘리트 선수 반의 규모도 기존의 10여명에서 1년 새 3배가 늘어난 40여명이 됐다. 그의 축구에 대한 열정은 나이가 들어도 사그라들지 않는다.

16일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안에 설치된 손웅정 책 코너.

손 감독은 “SON축구아카데미의 시설에는 흥민이가 낸 120억원이 들어가 있다. 내가 그것을 빌려 쓰고 있는 셈이다. 유소년 축구를 운영해서 돈이 남을 수 없지만, 나이 60이 넘어서도 축구 현장에서 뛰면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행복하다”며 웃었다. 사실 그가 지금까지 아카데미의 적자를 메우는 데 보탠 보조금은 24억원이 넘는다.

손 감독은 “유소년 지도자들에게 한국 축구의 미래가 있다는 말을 많이 하지만 클럽 지도자들의 생계는 학부모들의 회비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지도자들이 공짜로 회비를 받는 게 아니라 아이들을 위해서 비용으로 쓴다. 학부모들이 그런 점을 이해하고 과도하게 간섭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또 아이의 성장 경로를 초등학교나 중학교에서의 성적이 아니라, 시간이 걸리더라도 A대표팀이나 프로팀 진출에서 찾자고 제안했다.

그는 “유소년 지도자들도 잘 가르쳐야 하지만, 학부모들도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우승, 준우승이 아니라 기본부터 잘 가르칠 수 있는지를 클럽과 지도자 판단의 기준으로 삼아야 할 때”라고 말했다.

글·사진 김창금 선임기자 kim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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