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군들 믿지 못한 청와대와 ‘오뚝이’ 방첩사[박성진의 국방 B컷](7)

2024. 5. 17.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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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안보지원사령부(현 국군방첩사령부) 정문에 부대 마크가 붙어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문재인 정부는 군을 믿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이전의 정부처럼 정권의 말을 잘 듣고 충성하는 장군들이 필요했다. 청와대는 장군들의 동향을 알아야 했다. 그래서 당시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주장했던 국군기무사령부 해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문 정부가 ‘해편(해체 수준의 개편)’이라는 어려운 용어까지 사용해가면서 창설한 군사안보지원사령부(안지사)는 정권이 바뀌자 사라졌다. 대신 국군기무사령부는 국군방첩사령부라는 새로운 이름을 달고 화려하게 부활했다. 조직을 더 탄탄하게 키우며 오뚝이처럼 군내 권력기관으로 살아남은 것이다. 정권이 바뀌어도 방첩사(기무사)를 대통령의 군 통치에 유용한 중요 기관으로 인식한 결과다.

방첩사 변천사

기무사, 안지사, 방첩사 모두 이름만 바뀌었을 뿐 가장 중요한 업무는 장교들의 동향을 관찰해 대통령실에 보고하는 것이다. 명목은 ‘대통령 통수에 대한 보좌 기능’으로 군의 쿠데타와 부패 방지를 내세운다.

12·12 쿠데타의 주역이었던 국군보안사령부는 1991년 국군기무사령부로 명칭이 바뀌었다. 윤석양 이병의 민간인 사찰 폭로가 계기였다. ‘기무’라는 명칭은 조선 말기 고종이 국정을 총괄하기 위해 설치한 ‘통리기무아문(通理機務衙門)’과 갑오개혁(1894) 당시 정치·군사에 관한 일체의 사무를 맡아보던 ‘군국기무처(軍國機務處)’에서 가져온 용어다. 국가안보와 군의 발전을 위해 중요하고 기밀한 업무를 행하는 부대라는 의미다.

문재인 정부는 ‘전시 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이라는 기무사 촛불 계엄 문건을 빌미로 기무사를 2018년 9월 군사안보지원사령부로 해편했다. 군사안보를 통해 군 내 작전부대의 성공을 ‘지원’하는 것이 핵심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기무사 축소 수준과 부대 성격을 놓고 부딪쳤다. 송 장관은 기무사 해체를 주장했다. 그게 안 된다면 조직을 대폭 축소하려 했다. 송 장관은 기무사령관 계급을 중장에서 소장으로, 참모장을 소장에서 준장으로 낮추려 했다. 조 민정수석은 기무사는 군 사정기관이니만큼 민정수석실 소관이라면서 고위 군 간부들의 동향 파악을 더 강화하려 했다. 기무사 개혁을 할 청와대 주무부서는 국가안보실이지만, 실제로는 조 수석이 이끄는 민정수석실이 주도했다.

그 결과 탄생한 안지사는 이전까지 관행으로 해왔던 대령급 이상 진급 대상자의 인사자료, 소위 ‘세평’ 수집을 훈령으로 보장받았다. 또 그동안 없었던 국방부 담당 기무부대의 설치 근거도 안보지원사령부령에 포함됐다. 군 안팎에서는 되레 안지사가 기무사 시절보다 영향력을 더 키웠다는 평가가 나왔다. 군내에서 안지사로 간판만 바꿔 단 ‘도로 기무사’란 말이 돌 정도였다. 안지사령관이 국방부 장관을 배제하고 (군 수뇌부 비리사항이라는 이유로) 청와대에 직보할 개연성도 남겨두었다.

문 정부는 감사·검열, 직무감찰, 비위사항 조사·처리 등의 지속적인 감시 절차를 통해 군 조직을 속속들이 들여다보기 위해 검사 출신 인사를 안지사 감찰실장으로 임명했다. 안지사 역시 기무사처럼 정보기관이면서 수사권까지 가졌다. 안지사는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2022년 11월 국군방첩사령부로 다시 이름이 바뀌었다.

정권의 첨병

대통령에게 직보까지 할 수 있는 방첩사령관(기무사령관·안지사령관)은 태생적으로 ‘정치적 중립’이 불가능한 자리다. 정권이 군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수단으로 방첩사령부를 활용하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군 내에서는 야전군인 출신이라 하더라도 방첩사령관이 되면 ‘힘이 센 정치군인’으로 평가한다. 방첩사령관이 4성 장군으로 진급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이유다. 초창기 기무사령관이 대부분 임기제로 진급한 것에도 이런 배경이 있다.

문 정부 시절 기무사 공군 부대장 출신인 전제용 안지사령관(공사 36기)은 이례적으로 임기제 진급을 두 차례나 하면서 조종사 출신 동기생보다 1년 3개월이나 빨리 중장으로 진급했다. 특혜 진급이었다. 박근혜 정부 당시 장경욱 기무사령관(육사 36기)이 군 수뇌부 관련 보고로 청와대 고위층의 심기를 건드려 취임 6개월 만에 이임식도 갖지 못하고 쫓겨났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정권의 입맛에 맞춘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은 결과가 극과 극이었다. 장 기무사령관은 전역 후 문재인 대선 캠프에 합류했고, 정권이 바뀌자 주이라크 대사로 임명됐다.

문 정부의 마지막 안지사령관은 이상철 중장(학군 28기)이었다. 그는 육군 제5사단장으로 당시 정부의 국정 과제 중 하나였던 화살머리고지 유해 발굴을 잘 마무리한 공적을 인정받아 임명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다 육군의 주류인 육사 출신이 아닌 점이 고려됐다. 그러나 그는 정권이 바뀌자 22대 총선 국민의힘 후보로 공천받았다. 문 정부 핵심 인사들 입장에서는 ‘배신’을 당한 셈이다.

어찌 보면 그의 변신은 예고됐던 것인지 모른다. 당시 서욱 국방부 장관(육사 41기)은 남영신 안지사령관(학군 23기)의 후임 장군을 두 차례 청와대에 건의했다. 그러나 청와대는 ‘국방부 장관 동향도 감시해야 하는 게 안지사령관의 임무인데, 장관이 추천하는 인사를 임명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이유를 들어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서 한양대학교 학군(ROTC) 출신인 이상철 5사단장을 안지사령관으로 임명했다.

현재 방첩사령관은 윤석열 대통령의 충암고 9년 후배인 여인형 육군 중장(육사 48기)이다. 김용현 대통령 경호처장(육사 38기)의 육사와 고교 10년 후배이기도 하다. 정권의 최측근 사령관이라는 의미다. 군인들은 ‘방첩사의 힘은 동향 파악과 대통령실에서 나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방첩사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수뇌부가 숙청당하는 수난을 겪으면서도 조직을 지키는 나름대로 대응책을 발전시켜왔다. 대표적인 것이 정권 교체기에 작성하는 보고서다. 이를테면 여당이 계속 집권할 때와 야당이 정권을 잡았을 때를 각각 대비해 보고서를 두 가지로 만든다. 보수정권용 보고서와 진보정권용 보고서를 다 만들어놓고 준비하는 조직이 방첩사다. 군 인사를 해온 정권이 군부를 기회주의 집단으로 만든 전형적인 사례 중 하나다.

문 정부의 정치적 잣대에 따른 인사는 기무사 계엄문건 처리 과정에서도 불거진다. 문건에서 계엄령에 동원되는 것으로 기술됐던 주요 부대의 지휘관 출신 상당수가 진급 대상자에서 배제됐다. 계엄 문건의 존재 자체도 알지 못했을 장군들까지 인사상 불이익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문 정부가 충성을 기대했던 군 고위인사 상당수는 전역 후 등을 돌렸다. 김용우 전 육군참모총장(육사 39기)과 이왕근 전 공군참모총장(공사 31기), 최병혁 전 한미연합사령관(육사 41기) 등 예비역 대장들은 윤석열 대선캠프에 합류했다. 지난해 12월 이 전 총장은 주콜롬비아 대사로, 최 전 사령관은 주사우디아라비아 대사로 임명됐다.

박성진 ‘안보22’ 대표·전 경향신문 안보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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