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점령한 쓰레기, 텀블러·에코백이 해법일까
#.재활용 소재의 비율이 높아질수록 플라스틱이 불투명해졌다. 회색빛 재활용이었다.
“재활용된 플라스틱이 이 체계에 더 많이 유입될수록 투명도를 유지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질 겁니다. 언젠가는 검은 병에 든 콜라를 마시게 될 날이 올 거예요.” -106쪽
#.자선상점에 기부된 중고 물품 가운데 고작 10퍼센트에서 30퍼센트만이 실제로 상점에서 판매되며 나머지는 보이지 않는 조직으로 사라진다. -161쪽
에디터들은 그동안 꽤 많은 환경 관련 도서들을 읽었고, 사실 이제는 일처럼 느껴져서 손이 잘 안 가는데요. 올리버 프랭클린 월리스 작가님의 <웨이스트 랜드>는 어느정도 안다고 생각했던 오만을 벗어던지게 해 준 책이었습니다. 인도의 쓰레기 매립장, 가나의 의류 쓰레기 투기장, 그리고 영국의 플라스틱 재활용 공장과 하수처리장까지 굵직한 쓰레기의 현장을 직접 탐방하고 취재하면서 쓴 만큼 생생함과 깊이가 남다릅니다.
읽기 전에는 너무 다른 세상 이야기 아닐까 싶었는데 읽다 보니 한국과 비슷했습니다. 쓰레기의 압도적인 규모, 매립장의 풍경과 선별장의 시스템까지. 플라스틱 재활용과 친환경 목표를 외치지만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기업들의 모습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고 몇 가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는데, 예를 들어 종이나 플라스틱 재활용 기술의 한계를 지적하는 대목들이었습니다. 폐지는 재활용할수록 섬유 길이가 짧아지기 때문에 3~9번 정도만 재활용할 수 있다거나, 플라스틱 화학적 재활용을 기업들이 해법처럼 제시해왔지만 사실은 기술적으로 아직 부족하다는 등의 이야기는 그동안 품어온 희망을 무너뜨렸습니다. 그래서 월리스 작가님께 서면으로나마 인터뷰를 청했습니다. 이왕이면 책을 먼저 읽은 다음 이어 읽기를 추천드립니다.
▶지구용 : 화학적 재활용에 큰 기대를 걸고 있었는데, 제대로 안 되고 있다니 충격적입니다.
월리스 작가 : 화학적 재활용을 위한 파일럿 사업들은 실패했습니다. 그렇다고 플라스틱들을 모두 연료로 만든다거나(열분해유) 모두 소각할 수만은 없겠죠. 당장은 잘 안 되더라도, 더 나은 재활용 기술을 개발하는 노력을 멈춰선 안 됩니다.
▶책을 읽다 보면 지속가능성과 소비 감축을 유도할 수 있는 더 나은 시스템, 법, 규제, 그리고 문화가 필요하단 생각이 듭니다. 현실적인 방법이 있을까요?
: 그럼요! 더 오래 쓸 수 있는 품질 좋은 제품들을 만들고 소비자들이 덜 소비하도록 만드는 경제 구조가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패스트패션 브랜드에는 생산 과정에서 배출한 폐기물만큼 세금을 매기는 거죠. 사실 대부분의 폐기물은 산업폐기물입니다. 제품들이 소비자들에게 팔리기 전에 생겨나는 폐기물들이죠.
탄소세도 있습니다. 그리고 대여, 수리, 재사용 같은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 기업들을 지원해줄 필요가 있겠죠. 중고 물품, 빈티지 제품을 좋아하는 Z세대들이 이런 흐름을 주도하고 있고요. 소비자들 역시 해결책을 원한다는 의미일 겁니다.
▶많은 한국 독자들이 작가님 책을 읽고 절망할 것도 같습니다.
: 절망하는 대신 화를 내세요! 이런 문제들을 외면하려는 사람들을 경계하세요. 텀블러와 에코백은 해결책이 아닙니다. 다행히 이미 우린 기업들을 압박하고 엄청난 변화를 끌어낸 성공 경험이 있죠. 오존 문제가 그랬고, 노동착취 문제도 마찬가지고요. 목소리를 내세요. 그리고 마트가 아니라 일터에서, 투표장에서 당신의 진정한 힘을 보여줄 수 있단 사실을 잊지 말고요.
▶한국은 음식물쓰레기로 수소에너지를 만들어서 수소차에 충전까지 하는 그린수소 충전소(다시 읽기)도 있습니다. 이런 방식, 좋은 거겠죠?
: 음식물 쓰레기를 연료로 전환하는 방식은 아주 좋은 솔루션이라고 생각해요. 진짜 그린 수소고, 심지어 저장까지 할 수 있다니···한국의 음식물 쓰레기 이야기들은 진심으로 놀랍습니다. 다른 나라들도 본받아야 할 거고요.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는 건 기후위기를 막을 수 있을 뿐더러 전세계의 굶주리는 사람들을 살릴 아주 당연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책에서 많은 기업과 단체를 비판하셨는데, 항의는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 그 반대였습니다. 책을 쓰면서 기업들을 취재하는 과정은 정말 어려웠는데, 책이 출간된 후 독자들의 반응을 본 기업들이 이제는 뭘 개선하고 있는지 저한테 막 알려주더라고요. 좋은 현상입니다. 이 책의 메시지가 빛바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웨이스트 랜드>는 심난하고 어려운 책은 아닙니다. 물론 심난한 구석이 좀 있긴 하지만, 예를 들어서 멀쩡한데도 버려진 음식물을 찾아서 식사를 해결하는 프리건(Freegan)의 이야기는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무려 2008년 영국 옥스팜이 주최한 ‘탄소발자국이 가장 낮은 영국인을 찾는 대회’ 우승자가 등장합니다.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대형마트가 남는 음식물과 식재료로 뭘 할 수 있는지, 더 나은 방법은 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피사이클링(Peecycling, 소변 활용)’에 대한 대목도 매우 인상적입니다.
급증하는 “피사이클링(Peecycling, 소변 활용)” 운동은 우리가 소변을 보고 그냥 물을 내리는 게 아니라, 잘 모아두었다가 식물에 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소변에는 질소와 인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쓰레기를 줄이자는 주장을 넘어선 이야기다. ···니제르에서 실시된 최근 예비 연구에 따르면, 기장쌀에 소변을 비료로 준 여성들은 생산량이 30퍼센트 증가하는 것을 경험했다고 밝혔다. 스웨덴의 한 도시인 타눔에서는 새로 짓는 모든 빌딩에 소변 재활용 화장실을 갖출 것을 요구하고 있다. 파리에서 600개의 새 “에코 아파트에서도 피사이클링 화장실을 짓고 있으며, 그 내용물은 도시 주변의 식물에 비료를 주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291쪽
읽을수록 점점 결론이 궁금해지는 책입니다. 그동안 재활용, 자원순환에 대해 지구용에서 했던 이야기들이 나이브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쓰레기와 자원순환을 고민하는 분들에게 추천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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