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오버를 즐기는 승무원의 4가지 유형 [파일럿 Johan의 아라비안나이트]

2024. 5. 17.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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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럿 Johan의 아라비안나이트-24] 항공 승무원의 안 보이는 혜택 중에 ‘레이오버(layover)’란 것이 있다. 일정 시간 이상의 비행의 경우 법적으로 현지에서 하루나 이틀 무조건 쉬게끔 되어 있는 제도다. 승무원의 안전과 컨디션 유지를 위해서다.

이렇게 현지에서 일정 기간 머무르는 비행을 ‘레이오버(layover)’, 바로 돌아오는 건 ‘턴 어라운드(turn around)’라고 부른다. 호텔 등 여기에 들어가는 모든 체류비용은 당연히 회사에서 지원한다. 항공사마다 거리와 시간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현지 체류비를 직접 크루에게 주기도 한다.

일반인들은 이 레이오버를 부러워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상 공짜로 해외에서 체류하면서 관광도 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각 승무원의 성격에 따라, 그리고 체력에 따라 이를 즐기는 방법도 가지각색이다. 항공 승무원들이 외국에서 레이오버를 즐기는 유형을 가볍게 정리해봤다.

1. 미친 텐션
<instagram @cabincrewemirates>
보통 2~3년 차 이하 승무원들에게 가장 많이 있는 유형으로, 레이오버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짐도 푸는 둥 마는 둥 하며 바깥 날씨를 확인하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빨리 나갈 준비를 한다. 레이오버가 24시간 주어진다고 하면 이미 입국 수속을 밟고 호텔에 와서 짐을 푸는 데까지 적어도 2~3시간은 썼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있어 시간은 곧 금이다.

저녁 늦게 도착했다면 어쩔 수 없이 잠을 자야겠지만 오전 일찍 도착한다면 이들에게는 놓칠 수 없는 기회다. 이때 주어진 시간은 해질녘까지 약 10~12시간. 하지만 이미 도착하기 전 현지 여행계획을 세워놨기 때문에 몸만 급히 움직이면 된다.

유럽의 경우 많은 유적지나 박물관 등이 오후 5~6시 정도에 문을 닫기 때문에 ‘짧고 굵게’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나서 저녁에 호텔로 돌아와 4~5시간 정도 휴식을 취한 뒤 다시 일할 준비를 하면 성공적인 레이오버 계획 달성인 것이다. 그 체력이 너무 부럽다.

2. 만사가 귀찮아
<instagram @moroccans.cabin.crew>
기장, 사무장 등 승무원 경력이 오래되거나 이미 몇 번 같은 장소에 온 승무원에게 있는 유형으로 이쯤 되면 모든 게 귀찮고 심드렁해진다. 이미 예전에 와본 곳이고 안 가본 곳도 안 먹어본 것도 없다. 이 때문에 레이오버 때 밖에 나가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호텔 안에서 상주하면서 휴식을 취한다.

최근 포르투갈 리스본에만 10번째 왔다는 아랍 항공사의 한 승무원은 필자와 대화하면서 “이미 수없이 리스본을 구경했기 때문에 궁금한 것도 없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호텔 안에서 아무것도 할게 없냐면 그건 또 아니다. 승무원들이 레이오버 때 묵는 숙소는 회사별로 차이는 있지만, 보통 4성급 호텔이기 때문에 여러 시설이 잘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느긋하게 일어나서 호텔 조식을 먹고, 호텔에 딸려 있는 수영장에서 선베드에 누워 책을 보면서 그렇게 망중한을 보낸다. 운동을 좋아하는 승무원들은 호텔 피트니스클럽에서 땀을 빼거나 호텔 소유 테니스장이 있는 경우 아예 테니스 라켓을 가져와서 치기도 한다. 행복이 멀리 있지 않은 것이다.

3. 화목한 우리 가족
<instagram @pilotpatrick>
가족이 있는 승무원들에게 레이오버는 세계여행을 저렴한 가격으로 함께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승무원 본인의 항공티켓은 전혀 필요가 없고, 거기에 현지숙소까지 지원되니 이곳에서 같이 먹고 자면서 둘러보는 것이다.

이렇게 여행에 추가적으로 들어가는 경비가 같이 동승하는 가족의 항공티켓밖에 없는데 그마저도 승무원 할인을 받으면 아주 싼 가격으로 함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통 90% 할인이 들어간다. 단점이 있다면 현지 체류시간이 비교적 짧다는 건데 싼 가격이 모든 것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그렇기 때문에 효도하고 싶은 승무원들에게도 해외 레이오버는 좋은 기회다. 연로하신 부모님을 모시고 레이오버 때 다른 나라의 자연과 관광지를 둘러보면서 가이드 역할도 하고 오랜만에 효자, 효녀 노릇도 하는 것이다. 에미레이트 항공에 다니는 한 승무원은 “저번에 모리셔스 레이오버 때 엄마를 모셔 갔는데 너무 좋아하셔서 ‘승무원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고 말했다.

어떤 승무원은 레이오버 때 가족 전부를 데려오기도 한다. 한 기장의 경우 레이오버가 있을 때마다 자신의 부인을 비즈니스석에 태워서 현지에 도착한 뒤 레이오버 휴식 때 같이 부인과 함께 관광지를 둘러보면서 휴식을 취하는 ‘사랑꾼’으로 유명하다.

승객들의 반응도 좋은 편이다. 그 모습이 보기 좋을 뿐더러 기장 가족이 같은 비행기에 타고 있으니 아무래도 더 신경 써서 비행기 조종을 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되기 때문이다.

4. 조선의 사랑꾼들
<instagram @cabincrewemirates>
가끔 부부가 같이 레이오버 비행을 오는 경우도 보인다. 앞서 본 케이스와 차이가 있다면 한쪽이 손님으로 따라오는 것이 아니라 둘 다 항공 승무원이라는 점이다. 남편이 기장이고 아내가 캐빈 승무원인 케이스가 제일 흔한 것 같다. 결혼 전 사내연애하는 커플끼리 와서 꽁냥거리다가 동료들에게 들키는 케이스도 많다.

아무 생각없이 왔다가 다 같이 놀러다니고 구경하다가 서로 눈이 맞아서 사귀게 되는 경우도 있다. 호텔 도착하자마자 맥주 한잔을 시원하게 들이키는 ‘랜딩비어’를 하고 나서 긴장도 풀어지고 즐겁고 하니 나를 가장 잘 이해해주는 ‘내 옆의 너’가 오늘따라 예쁘고 멋있어 보이는게 아닐까.

얼마전 방콕 레이오버 비행에서 나에게 들킨 너희들, 호텔에 도착해 크루 버스에서 내릴 때 여자 손 잡아줄때부터 뭔가 감이 왔다. ‘굳이?’ 그날 저녁 근처 야시장에서 서로 아이스크림 떠 먹여주는걸 보고 물증까지 확보했지. 보는 사람은 너무 재밌더라. 뭐가 됐든지 간에 바쁜 일상중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와서 여행을 즐기는 것만큼 행복한 것은 없을 것이다. 예쁜 사랑하시기 바란다.

[원요환 UAE항공사 파일럿 (前매일경제 기자)]

john.won320@gmail.com

아랍 항공 전문가와 함께 중동으로 떠나시죠! 매일경제 기자출신으로 현재 중동 외항사 파일럿으로 일하고 있는 필자가 복잡하고 생소한 중동지역을 생생하고 쉽게 읽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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