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를 구한 야구 문외한...경기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것은? [올어바웃스포츠]

류영욱 기자(ryu.youngwook@mk.co.kr) 2024. 5. 17.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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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홈구장에서 맥주를 판매하고 있는 판매원 <출처=AP>
세계 최고의 프로야구리그인 메이저리그(MLB) 경기장을 방문하면 가장 많이 들을 수 있는 말중 하나가 ‘여기 맥주 하나!(Beer here!)’입니다. MLB 팬들에게 맥주는 단순히 목을 축이는 것을 넘어 경기 그 자체와 함께 소비되는 문화중 하나입니다. MLB 사무국은 지난해 경기 템포를 끌어올리기 위한 시간 단축 규정을 도입하며 경기장내 맥주 판매 종료 기간을 7회에서 8회로 늘리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맥주와 야구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란 것이지요. 한국프로야구(KBO)를 즐기는 국내 야구팬들 역시 녹색 다이아몬드와 ‘치맥’의 조합에 열광합니다. 그런데 야구의 태동기인 19세기 후반 미국에서 경기장내 맥주 판매가 금지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이를 기회 삼아 야구판을 키우는데 앞장서기도 했죠. 야구와 맥주, 나아가 스포츠 경기 곳곳에 자리잡은 음식문화의 기원과 역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야구장에 맥주를 못마시게 한다고? 참을수 없었던 장사꾼의 ’한 수‘ 는
크리스 폰 아예데(왼쪽위 동그라미)와 아메리카어소시에이션 리그 4연패에 성공한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 선수단 <출처=distilledhistory>
1800년대 후반 이민자 출신 미국인 크리스 폰 데 아예는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서 각종 매대를 운영하는 성공적인 사업가였습니다. 독일계였던 그는 맥주집과 식료품점도 소유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손님들의 기이한 행동 패턴을 발견합니다. 바에서 맥주를 즐기던 손님들은 오후 2시 30분쯤에 우르르 빠져나가더니 3시간 남짓이 지나면 다시 앞다퉈 바를 찾는 것이었습니다.

손님들이 간 곳은 맥주집 근처에 자리한 야구장이었습니다. 당시 최초의 프로야구리그 ‘내셔널리그’는 경기장내 맥주 판매를 막고 있었습니다. 영국계 개신교도가 구단주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던 영향이죠. 이는 힘든 몸을 술과 야구로 달래려는 독일 중서부 출신 노동계층과 아일랜드 이민자들에게는 결코 달갑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상황을 알게 된 크리스는 예민한 사업가의 촉으로 곧장 행동에 나섭니다. 야구의 ‘야’자도 모르는 문외한이었지만 재산을 탈탈 털어 야구구단을 인수해버립니다. 팀의 이름을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현 카디널스)로 바꾸고 경기장도 신축합니다. 그리고 최후의 한 수로 다른 3개의 야구팀과 함께 내셔널리그와 구분되는 새로운 리그인 ‘아메리칸 어소시에이션’을 창설합니다. 새 리그의 규칙은 간단했습니다. ‘입장료는 내셔널 리그의 절반, 경기장내 맥주와 위스키 판매 허용.’ 야구판을 지배하고 있던 내셔널리그는 이같은 움직임에 ‘맥주와 위스키 리그’라고 조롱하며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팬들의 반응은 달랐습니다. 새 리그는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운영 첫해에 내셔널리그보다 4배 많은 수익을 창출할 수 있었습니다. 아메리칸 어소시에이션은 10년간 유지되다 내셔널리그에 합병됩니다. 그러나 1892년 내셔널리그가 맥주 판매를 재개하면서 야구와 맥주라는 문화를 만들어 내는 첨병 역할을 합니다.

베이브루스·테드윌리엄스보다 오래 전통의 이 음식은?
미국 보스턴 펜웨이파크에서 판매중인 ‘팬웨이 프랭크’ 메뉴판 <출처=_Newegland.com>
마실거리가 있다면 먹거리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메이저리그의 대표적인 먹거리중 하나가 샌드위치 빵에 독일식 소시지를 끼워만든 핫도그입니다. 보스턴 레드삭스의 홈구장 펜웨이파크 주변에서 파는 ‘펜웨이 프랭크’는 레드삭스팬들이 경기장을 찾으면 놓쳐선 안되는 필수품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기원전 8세기부터 나타났다고 하는 소시지가 미국 야구장에 정착하는데는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19세기 후반까지도 야구장엔 전문적인 매점이 없었고 지역 주민들이 경기장에서 판매하는 음식만이 팬들이 접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습니다. 팬들은 자연스럽게 샌드위치와 아이스크림 등에 손이 갔습니다.

핫도그의 유래에 대한 가설은 다양합니다. 세인트루이스 정육점 주인인 안톤 포이트방거가 소시지를 받치기 위해 소시지를 빵 사이 끼운게 시초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당시 뜨거운 소시지를 들기 위해 흰 장갑을 손님들에게 나눠줬는데 반환율이 바닥을 기었기 때문이죠. 1880년대 영국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온 해리 스티븐스는 이 새로운 간식을 야구장에서 판매하면 팬들의 수요를 즉각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얼마 후 전국의 야구장에 핫도그, 탄산음료, 땅콩을 공급하기 시작했습니다.

왕이 먹던 영국의 제철음식, 윔블런 그라운드로 흘러오다
윔블던 대회 관람객이 즐기고 있는 ‘딸기와크림’ <출처=Gettyimages>
전통과 문화가 담긴 음식은 야구장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에선 밀리지 않는 영국에서도 스포츠팬들의 삶에 스며든 음식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테니스 대회인 윔블던에선 ‘딸기와 크림’이 전통적인 음식입니다. 녹색 잔디에서 펼쳐지는 선수들의 퍼포먼스를 보는 팬들의 손에 크림이 곁들여진 싱싱한 딸기가 들려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씁니다. 주최측에 따르면 2019년 대회에서만 19만개가 넘는 딸기&크림 세트가 팔렸다고 합니다. 최근까지 이 세트는 2.5파운드(약4200원)라는 싼 가격으로 버티고 있었고 딸기 개수도 10개로 유지돼 ‘슈링크플레이션’은 없었다고 합니다.

딸기와 크림이 윔블던에서 판매된 기원에 대해서도 여러 설이 난무합니다. 다수설은 관중이 200명에 불과했던 1877년 첫 대회부터 이 세트가 판매됐다는 것입니다. 윔블던이 열리는 6~7월은 영국에서 딸기가 절정에 이르는 시기였고, 빅토리아 시대에 딸기가 영국에서 유행하던 애프터눈 티세트의 일부로 유행을 타면서 윔블던으로 흘러들어왔다는 이야기입니다. 윔블던 홍보 총책임자인 조니 퍼킨스는 2015년 CNN과 인터뷰에서 “딸기는 고풍스러운 영국적인 분위기의 일부”라며 “많은 사람이 윔블던을 영국 정원에서 즐기는 테니스와 같다고 생각할 수 있는 이유중 하나”라고 했습니다.

일부 역사가들은 영국 왕실이 이 세트를 즐김으로써 문화가 정착됐다고 보고 있습니다. 16세기초 왕 헨리 8세가 자신의 수상인 토마스 울시의 집에 방문했을때 딸기와 크림을 디저트로 내놓았다는 설화입니다. 당시 유제품은 하층민들의 음식으로 여겨졌지만 왕의 테이블에 오른 뒤 과일과 크림 조합이 인기를 끌며 윔블던을 통해 아직까지 내려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원이야 어떻든 딸기와 크림은 윔블던의 전통중 하나로 철저하게 관리받고 있습니다. 최상의 신선도를 보장하기 위해 새벽 4시에 딸기를 수확하고 오전 9시에 공장에서 수거해 검사와 세부작업을 거친 뒤 윔블던으로 배송됩니다. 대회마다 2만8000kg의 딸기와 7000리터 이상의 크림이 이렇게 소비되는 것이지요.

보불전쟁 때문에 만들어진 고기차, 다음 상대는 영국날씨
영국 축구팬들의 관람 필수음식중 하나인 보브릴 <출처=nottinghamworld>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등 영연방 축구장에서 팬들이 즐기는 것중 하나로 ’보브릴‘이란 고기차(茶)가 있습니다. 팬들은 주전부리와 따뜻한 고기차를 마시며 비바람이 몰아치는 짓궂은 영국 날씨에 대항해 경기를 즐깁니다.

보브릴은 비교적 명확한 전승 기원(?)이 있습니다. 보브릴은 1870년 유럽대륙의 명운을 결정한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에서 시작됐습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손자인 나폴레옹 3세는 당시 전장에서 지친 군인들에게 보급하기 위해 100만 캔의 소고기를 주문했습니다. 이 대박 공급계약은 스코틀랜드 정육점 주인인 존 존스턴에게 주어졌습니다. 영국 식민지와 남미에서 대량의 소고기를 구할 수는 있었지만 운송과 보관이 문제였습니다. 존스턴은 이에 소고기를 통조림에 담고 뜨거운 물이나 유유에 희석해 먹을 수 있는 보브릴을 개발한 것이었습니다. 이 고기차는 급속하게 영연방 전역에 퍼졌고 1888년까지 3000개 이상의 영국 공공주택, 식료품점, 약국 등에서 판매됐습니다.

“제발 그만 버리세요” 해바라기씨에 몸살 앓는 스페인 축구장
경기장 바닥에 쌓여있는 해바라기씨 <출처=theolivepress.es>
어떤 스포츠클럽은 팬들의 주전부리때문에 경기장 관리에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축구팬들 즐겨 먹는 해바라기씨가 그것입니다. 유럽 일부와 미주대륙 경기장에서 팬들의 심심한 입을 달래는 해바라기씨는 먹는 방법이 고약합니다. 이빨로 껍질을 까 내용물을 먹고 껍질은 그대로 바닥에 버리는 것이지요. 경기가 고조되면 팬들이 버린 해바라가씨가 관중석 바닥에 수북이 쌓이는게 예사일입니다.

스페인 축구클럽 발렌시아CF는 홈구장 메스타야 경기장에서 해바라기씨 섭취를 중단할 것을 팬들에게 요청했습니다. 팬들의 과한 열정만큼 대량의 해바라기씨 껍질 쓰레기가 문제를 만들었기 때문이죠. 클럽은 이 쓰레기들을 청소하기 위해 특별한 기계를 사용하는데 주변 주민들이 기계의 소음에 시달리 클럽에 분노를 쏟아냈습니다. 또 껍질을 먹기 위해 쥐떼가 몰려 청결에도 문제가 생겼습니다. 클럽은 우선 경기장에서 해바라기씨 판매를 중단했고, 집에서 가져오는 팬들에게는 껍질을 처리할 가방을 가져오도록 요청했습니다.

진화하는 경기장 음식문화...우리도 따라잡아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만날 수 있는 분식세트 <출처=LG트윈스>.
엔터테인먼트란 측면에서 스포츠와 음식의 궁합은 말할 것도 없이 제격입니다. 스트레스를 풀러 경기장을 찾는 팬들은 흥미진진한 경기와 함께 다채로운 먹거리를 찾는 재미도 추구합니다. 프로스포츠의 천국인 미국은 이런 니즈를 정확하게 포착해 경기장 음식의 고급화·다양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MLB 시애틀 매리너스의 홈구장 세이프코필드에서는 요리업계에서 명망잇는 이든 스토웰 셰프를 고용해 요리를 판매하고 있습니다. 이정후 선수가 속한 샌프란스시코 자이언츠 경기장에 유명 요리사 마이클 미나가 만든 요리를 맛볼 수 있습니다. 지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지역 특산물을 경기장에 적극 끌어들이기도 합니다. 시카고 컵스와 화이트삭스는 지역 명물인 이탈리안 비프 샌드위치를, 필라델피아 필리스는 필리 치즈 스테이크를 유명 업체와 계약해 제공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한화 이글스 경기장에서 성심당 빵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이지요.

미국 스타디움 식품 분야 컨설팅에 40년 넘게 몸담은 크리스 비글로는 “여전히 핫도그, 맥주, 나초는 야구 경기와 연관된 음식이지만, 팬들에게 더 매력적이고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기 위해 훨씬 더 많은 음식을 제공하는 것을 항상 고민합니다”고 말했습니다.

한국 역시 경기장을 방문해 스포츠를 즐기는 팬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K리그는 역대 최고 관중수를 향해 나아가고 있고, 프로야구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들을 경기장에서 떠나지 못하게 하는 당근책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몇몇 경기장 주변에서 보이는 바가지가 씌워진 저질 음식 대신 경기장을 먹거리 때문에 방문할 수 있도록 메뉴판이 보다 풍성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참고문헌과 외신> ◎https://vinepair.com/articles/how-baseball-saved-beer/ ◎https://www.stlmag.com/Forgotten-Father-Chris-Von-der-Ahe/ ◎https://www.stlmag.com/history/st-louis-sage/did-beer-really-save-baseball-in-st-louis/ ◎https://www.mlb.com/news/history-of-iconic-mlb-ballpark-food-explained ◎https://uk.style.yahoo.com/wimbledon-why-eat-strawberries-and-cream-133301687.html ◎https://en.wikipedia.org/wiki/Bovril ◎https://www.qsrmagazine.com/food/menu-innovations/how-sports-stadiums-are-upping-their-foodservice-game/

≪[올어바웃스포츠]는 경기 분석을 제외한 스포츠의 모든 것을 다룹니다. 스포츠가 건강증진을 위한 도구에서 누구나 즐기는 유흥으로 탈바꿈하게 된 역사와 경기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문화, 수백억원의 몸값과 수천억원의 광고비가 만들어내는 산업에 자리잡은 흥미로운 내러티브를 알게 된다면, 당신이 보는 그 경기의 해상도가 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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