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에서 한국인 노리는 범죄조직들 [정락인의 사건 속으로]

정락인 객원기자 2024. 5. 17.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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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파타야 관광객, 실종 후 드럼통 시신으로 발견돼 충격
보이스피싱 원조 총책이 필리핀 현지 교도소에서 탈옥하기도

(시사저널=정락인 객원기자)

아시아 동남부에 위치한 필리핀·태국·베트남 등에서 한국인이 범죄의 표적이 되고 있다. 이들 지역은 한국인들이 신혼여행·가족여행·우정여행 등으로 즐겨 찾는 관광지다. 또한 이 지역의 많은 여성이 한국인 남성과 결혼해 국내에 이주해 살고 있다. 동남아 국가들과 한국이 '가족 네트워크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왕래가 활발해지자 한국인을 노리는 범죄조직들이 활개치고 있다. 국내 폭력조직이 원정을 가거나 현지에서 자생적인 범죄조직들까지 속속 생겨나는 모양새다. 한국 범죄자들이 이들 국가로 도피한 후 범죄조직을 결성하는 사례도 있다. 한국인을 상대로 한 범죄조직도 점점 세분화되는 추세다. 보이스피싱 조직, 온라인 도박조직, 납치·살인조직, 현지인들과 결탁한 청부살인조직까지 다양하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해외로 도피한 이는 512명이다. 도피처는 중국이 149명으로 가장 많고 필리핀(98명), 베트남(63명), 태국(59명) 등이 뒤를 따랐다.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범죄자들의 주요 은신처뿐만 아니라 새로운 범죄의 무대가 되고 있는 것이다.

태국 경찰이 5월11일 촌부리주 파타야에서 시신이 담긴 검은 플라스틱 드럼통을 조사하고 있다. ⓒAP 연합

파타야 살인 용의자 3명, 전과자로 드러나

최근 태국 여행을 떠났다가 참혹하게 살해된 노아무개씨(34)도 한국인 범죄조직의 피해자다. 경남 김해가 고향인 노씨는 취업을 준비하던 '취준생'이었다. 그는 평소 태국에 흠뻑 빠져있었고, 여행을 통해 현지 음식과 문화 등을 체험했다. 그는 또 태국인 여성을 여자친구로 두고 있었다.

4월30일 노씨는 관광 목적으로 태국에 입국했다. 그는 방콕의 한 호텔에 숙소를 정하고 5월2일 오후 7시46분쯤 여자친구와 함께 오토바이택시를 타고 방콕 유흥가인 RCA 지역 '루트66' 클럽에 갔다. 근처에 클럽이 밀집해 있어 현지 젊은이와 한국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이다. 이튿날 새벽 2시18분쯤 노씨에게 두 명의 한국인 남성이 접근한다. 이들은 약 10분 후 노씨의 팔을 잡고 나가 어디론가 사라진다.

그로부터 5일 후인 5월7일 국내에 있던 노씨 어머니에게 의문의 전화가 걸려온다. 노씨 휴대전화번호였지만 다른 사람이었다. 그는 "당신 아들이 강에 마약을 버려 손해를 입혔으니 몸값으로 300만 바트(약 1억1200만원)를 5월8일 오전 8시까지 입금해라. 그렇지 않으면 노씨를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노씨 부모는 아들이 납치됐다고 판단하고 태국 주재 한국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했다. 대사관이 현지 경찰에 신고하면서 수사가 시작된다.

태국 경찰은 노씨의 동선을 추적해 그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클럽의 폐쇄회로(CC)TV를 확보했다. 여기에는 3일 오전 2시쯤 두 명의 남성이 흰색 셔츠를 입은 노씨를 렌터카에 태우고 파타야 방향으로 떠나는 모습이 찍혀있었다. 노씨의 태국인 여자친구는 경찰에서 "이 남성들은 클럽에서 처음 만났고, 그들이 누구인지 모른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남성들의 동선을 추적해 이들이 파타야로 가던 중 픽업트럭으로 갈아타는 것을 확인했다. 파타야 마프라찬 호수 인근에서 숙소를 빌리는 모습도 포착됐다. 이 호수는 인근 주민들의 식수로 사용되고 있어 낚시가 금지된 곳이다. 평소에는 찾는 사람이 거의 없어 인적이 드물다.

이날 오후 3시20분쯤에는 인근 상점에서 검은색 플라스틱통과 가위, 나일론끈을 구매하는 모습이 CCTV에 잡혔다. 경찰은 이때는 노씨가 살해된 후라고 추정했다. 이튿날 오전 9시쯤 짐칸을 검은 천으로 덮은 픽업트럭이 숙소를 빠져나갔다. 이들은 마프라찬 호수 인근에 1시간 정도 머물다가 숙소로 돌아왔다. 여기까지 확인한 태국 경찰은 남성들이 머무른 숙소를 덮쳤으나 이미 사라진 후였고, CCTV 전선이 모두 잘려있었다.

경찰은 이들이 노씨를 살해한 후 시신을 유기했다고 보고 잠수부를 투입해 마프라찬 호수를 수색했다. 얼마 후 잠수부들은 수심 3m 지점에서 검은 플라스틱 드럼통을 발견해 육지로 인양했다. 뚜껑을 열어 보니 통 안은 콘크리트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 안에서 나체 상태로 구부러진 채 숨져있는 노씨의 시신이 나왔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시신의 손가락 10개가 모두 잘려있었다는 것이다. 노씨가 살아있을 때 잘린 것이면 고문을 받은 흔적이고, 사망 후에 잘린 것이면 신원 은폐를 위한 것으로 판단됐다. 부검 결과 시신은 사망한 지 3~4일 지난 것으로 추정됐다.

태국 현지 언론에 보도된 파타야 드럼통 살인 사건 용의자들이 드럼통을 구입하는 CCTV 장면 ⓒkomchadluek.net 화면 캡처

악명 높은 조폭 살인조직, 필리핀에서 활개

태국 경찰은 한국 경찰과 공조해 한국인 남성 3명을 용의자로 특정했다. 이때는 이미 일당이 모두 태국을 빠져나간 후였다. 이 중 이아무개씨(26)는 국내로 입국했다가 5월12일 거주지인 전북 정읍에서 경찰에 검거됐다. 캄보디아로 출국한 또 다른 이아무개씨(27)는 14일 프놈펜의 한 숙박업소에서 체포됐다. 일당 중 최고 연장자인 김아무개씨(39)는 태국 인근 국가인 미얀마로 도주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밀입국해 출국 기록이 없다. 태국 매체는 이들 일당 3명의 사진과 이름 등 신상을 모두 공개했다. 경찰청은 캄보디아에서 검거된 이씨의 송환을 위해 현지 경찰과 협의 중이다.

그렇다면 이들 일당은 누구이며 왜 노씨를 살해한 것일까. 5월16일 태국 언론보도에 따르면 일당 3명 중 한 명이 돈을 노리고 노씨에게 수면제를 먹여 납치했다는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2일 방콕의 한 클럽에서 피해자 노씨를 만나 그에게 접근해 약물을 먹이고 납치했다. 의식을 잃은 노씨를 묶어 파타야로 이동하던 중 그가 의식을 되찾아 몸싸움이 벌어졌고, 이 과정에서 목을 졸라 숨지게 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태국 매체는 노씨 지인의 증언을 인용해 '노씨가 갱단 활동지인 아속 지역에서 이발과 마사지 사업에 참여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들 일당의 경우 국내에서 다수의 범죄 전력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태국 경찰은 이들 3명 모두 한국에서 전과가 있다고 밝혔다. 미얀마로 도주한 김씨는 2020년부터 태국을 8차례 드나들었다. 그는 한국에 머물던 2016∼17년 경남 창원시에서 차량을 털고 150만원 상당의 현금을 훔친 혐의로 벌금 200만원을 선고받았다. 이들 일당이 과거 불법 도박장 등에서 활동한 전력도 드러났다. 김씨의 경우 폭력 전과도 있다. 여러 정황상 노씨를 살해한 일당이 국내 폭력조직과 연계됐을 가능성이 크다.

2015년 파타야에서 한국인 프로그래머 임동준씨(25)를 살해한 김형진도 성남 국제마피아 조직원이었다. 태국에서 불법 도박 사이트를 운영하던 그는 통합 도박 사이트 관리 시스템을 개발하려고 국내에 있던 임씨를 태국으로 유인해 잔혹한 폭행을 일삼다가 살해했다. 이번에 파타야에서 살해된 노씨의 경우 한때 마약과 관련이 있지 않았냐는 의문이 제기됐으나 노씨의 여자친구와 친구, 누나 등 가족은 전혀 관련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노씨를 살해한 이들 일당의 실체와 정확한 범행동기 등은 공범이 모두 검거된 후에나 파악될 것으로 보인다.

동남아시아 국가 중에서 한국인 대상 범죄조직들이 가장 활개치는 곳은 필리핀이다. 2017년 외교부 자료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6년까지 해외에서 살해된 우리나라 국민은 총 164명이었다. 이 중 필리핀에서 살해된 한국인은 48명으로 2위인 미국(21명)보다 2배 이상 많았다. 현지인들이 주축이 된 범죄조직이나 한국인 범죄조직의 범행 대상은 주로 사업가나 관광객들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필리핀의 한국인 대상 범죄조직은 크게 4개 유형으로 나눠 볼 수 있다.

첫째는 돈을 노리는 현지 범죄조직이다. 2004년부터 한국인들의 필리핀행이 러시를 이루었다. 돈 많은 사업가들이 관광이나 투자를 위해 들렀다. 현지인들에게 한국인은 '돈이 많은 사람'으로 비춰졌다. 이때부터 돈 많은 한국인들을 노린 범죄가 부쩍 늘어났다. 필리핀 범죄조직은 사업가나 관광객을 납치해 돈을 빼앗고 풀어주기도 하지만 살해해 흔적을 지우기도 한다.

둘째는 국내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도피한 범죄자들이 돈벌이를 위해 납치·살인에 나서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악명을 떨쳤던 최세용 일당이다. 최세용은 김성곤, 김종석(자살)과 함께 2007년 7월9일 안양에 있는 환전소 여직원을 살해하고 약 2억원의 금품을 빼앗은 후 곧바로 해외로 도피했다. 이들은 말레이시아와 필리핀을 전전하며 도피생활을 이어갔다. 도피 자금이 떨어지자 필리핀에 여행 온 한국인을 납치해 금품을 빼앗았다. 심지어 한국에서 알게 된 사람을 필리핀으로 유인해 납치한 후 통장과 카드에서 돈을 인출하고 살해했다. 이들은 강도·살인 외에도 2008년부터 2011년까지 필리핀에서 한국인 여행객 여러 명을 납치·감금하고 권총·흉기 등으로 위협해 1억원 상당의 금품을 빼앗았다. 현지 교도소에서 자살한 김종석을 제외한 최세용과 김성곤은 국내로 송환돼 재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셋째는 한국인이 현지인을 고용해 청부살해하는 경우다. 이때는 미리 현지인 청부업자를 고용한 후 살해 대상자를 필리핀으로 유인해 실행한다. 넷째는 필리핀에 거점을 두고 한국에 거주하는 우리 국민을 대상으로 한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 조직이다. 중국에서 시작된 보이스피싱 사기는 동남아 주요 국가로 급속하게 퍼졌다. 이 중 대표적인 것이 일명 '김미영 팀장'으로 불리던 1세대 보이스피싱 조직 총책이다. 놀랍게도 그는 전직 경찰관 출신인 박아무개씨였다. 그의 조직은 불특정 다수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낸 후 자동응답전화(ARS)를 통해 대출 상담을 하는 척하며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했다. 박씨는 경찰의 끈질긴 추적 끝에 2021년 10월 필리핀에서 검거됐지만 송환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는 현지 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하다 최근 탈옥하면서 경찰에 비상이 걸렸다.

'김미영 팀장'으로 악명을 떨친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 조직 총책 박아무개씨의 2021년 검거 당시 모습(왼쪽 사진)과 박씨가 탈옥한 필리핀 소재 카마린스 수르 교도소 ⓒ경찰청 제공

여행 전에 온라인에 개인정보 남기면 위험

현재 동남아시아 주요 국가에는 대사관과 영사관이 설치돼 있다. 한국인 대상 범죄는 이곳에서 담당하고 있으며, 경찰 영사나 주재관 등이 파견돼 있다. 그러나 우리 경찰은 수사권과 체포권이 없다. 현지 국가들의 과학수사 수준도 현저히 낮아 범죄 발생 시 빠르게 대처하기 어렵다. 기본적인 통화내역 조회나 위치추적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 현지 경찰관들이 범죄조직과 깊은 유대관계를 맺고 있기도 하다.

때문에 범죄 피해를 당하지 않으려면 각자 조심해야 한다. 해외여행을 할 때는 혼자 여행하는 것보다 가급적 일행과 함께 하는 것이 좋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SNS나 인터넷 카페 등에 개인정보를 남겨서는 안 된다. 이 정보를 이용해 범행에 이용하는 사례가 부쩍 늘어났다. 또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현지인이나 한국인 등 신분이 확인되지 않은 사람들은 가급적 접촉하지 말아야 한다.

현지에서 친절을 베풀면서 다가오는 사람들도 조심해야 한다. 택시를 탔을 때나 유흥업소 등에서 모르는 사람이 건네주는 음료수를 마시면 안 된다. 돈 자랑을 해서도 안 된다. 많은 현금이나 고가의 물건을 들고 다니거나 흥청망청 돈을 쓰면 그만큼 위험해진다. 현금이 가득 들어있는 지갑을 보여줘서도 안 된다. 현지인의 감정을 자극하는 말이나 행동도 반드시 삼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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