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부인 리스크에 ‘상남자’ 지나치면 ‘팔푼이’ 된다 [핫이슈]

김병호 기자(jerome@mk.co.kr) 2024. 5. 17.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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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동포 공연 감상하는 윤석열 대통령 내외 (암스테르담=연합뉴스) 진성철 기자 = 네덜란드를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가 11일(현지시간) 암스테르담 한 호텔에서 열린 동포 만찬 간담회에서 미선 힐터만 씨의 전자 바이올린 연주를 감상하고 있다. 2023.12.12 [공동취재] zji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홍준표 대구광역시장이 14일 야당의 김건희 여사 특검법 추진과 관련해 “(윤석열 대통령이) 자기 여자를 제 자리 유지하겠다고 하이에나 떼들에게 내던져 주겠느냐”고 했다. 4·10 총선 패배 후 윤 대통령과 독대하며 친밀감을 느꼈기 때문은 아니겠지만 모처럼 김 여사 옹호 목소리를 냈다. 특히 2002년 4월 노무현 민주당 대선 후보가 장인의 좌익활동 의혹을 제기한 이인제 후보를 저격했던 모습을 기억하라고도 했다. 당시 인천 경선에 나온 노 후보는 “(장인이 좌익활동을 했다고) 아내를 버려야합니까? 이 아내를 계속 사랑하면 대통령 자격이 없는 것입니까?”라는 말로 전세를 뒤집었다. 홍 시장은 “그건 방탄이 아니라 최소한 상남자의 도리”라며 “(윤 대통령은) 사내답게 처신하라”고 주문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윤 대통령도 노 전 대통령처럼 부인을 감싸는 상남자 행보를 하면 승산이 있다는 듯하다.

하지만 홍 시장 발언에 대해 여당에서조차 반론이 나온다. 쓴소리를 자주 하는 유승민 전 의원은 “대통령 부인도 법 앞에 평등하다”며 조사 받기를 요구했다. 안철수 의원은 “공직자에게 그런 말을 하는 건 굉장히 부적절하다”며 홍 시장을 비판했다. 노장 정치인들이 한마디씩 거들 정도로 김 여사 문제는 정치권과 국민 관심사가 된지 오래다.

최고지도자 배우자에 대한 관심과 비난은 우리나라만이 아니다. 대통령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불명확한 권력을 이용해 영부인이 활개를 치면 십중팔구는 정 맞기 십상이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 부인인 힐러리 여사는 대내외 문제에서 어떨 때는 남편보다 더 많은 개입을 해서 비난을 샀다. 물론 그런 능력과 열정이 버락 오바마 정권에서 그녀를 국무장관으로 만들었다.

미셸 오바마는 영부인이었지만 일반 흑인 여성이 받는 조롱을 피해가지 못했다. 미셸이 야당과 일부 국민의 근거없는 비난에 시달릴 때 “우린 품위 있게 갑시다”라며 한 호소는 이후 세계 각지에서 반대파를 제압할 때 쓰는 레토릭이 됐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부인인 브리지트는 25세 연상으로 마크롱의 고교 시절 스승이었다. 이색적인 러브스토리가 화제가 됐지만 현실에서는 나이 많은 영부인을 질시하고 꼬투리잡는 일이 흔했다. 그녀가 원래 동성애자 남성이라고 주장한 사람이 고발되기도 했다.

브리지트 마크롱 여사와 함께한 김건희 여사 (파리=연합뉴스) 진성철 기자 = 2030 부산 엑스포 유치를 위한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 참석차 프랑스를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가 20일(현지시간) 프랑스 대통령 관저인 엘리제궁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부인 브리지트 마크롱 여사와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3.6.21 [공동취재] zji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우리나라도 영부인 관련 설화(舌禍)는 차고 넘친다. 대체로 차분하고 내조형에 가까운 영부인에 대한 평가가 좋은 편이다. 온화한 자태의 육영수 여사나 대외활동이 비교적 적었던 김옥숙 여사가 세간의 비난을 피해간 편이다. 많은 영부인들이 고가 옷차림이나 국정 개입 시도 땐 여지없이 비난이 따라왔다.

김 여사에 대한 비판은 윤 대통령이 정치에 뛰어들었을 때부터 학력과 경력 논란으로 시끄러웠다. 김 여사는 대선 전 기자회견에서 “아내 역할에만 충실하겠다”며 근신을 강조했지만 약속은 잘 지켜지지 않았다. 과거 주가시세 조종 의혹을 비롯해 해외 순방시 백화점 쇼핑, 정부 인사 개입 소문, 명품가방 수령 등으로 미움을 샀다. 야당은 일명 ‘김여사 특검법’을 22대 국회에서 1호 법안으로 처리하겠다고 벼른다. 정권 심판과 탄핵 빌미를 잡기 위해 끝도 없이 밀어붙일 기세다. 국민 과반도 특검에 찬성하고 있어 윤 대통령이 무작정 버티긴 힘들 것이다.

예전에는 ‘국모(國母)’라고까지 불렀던 대통령 부인이 세간의 이목이 두려워 수개월째 두문불출 하는 상황은 결코 정상이 아니다. 그 해법을 놓고 여야 뿐만 아니라 국민도 각자 입장에 따라 대치 상태다. 가뜩이나 커져있는 사회 분열을 확대할 또다른 소재가 되고 있다. 이 정도면 영부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정권이 벌써 레임덕에 빠질지 모를 일이다. 윤 대통령이 김여사 특검법에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해도 국회에서 재표결에 붙이면 여당 내 이탈표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

총선 패배로 김 여사 건은 더이상 보듬고만 갈 수 없는 문제가 됐다. 그렇다면 남은 임기 3년 내내 질질 끌려가기 보다는 결단을 통해 서둘러 수습에 나설 때다. 윤 대통령도 김 여사에 대한 검찰 조사를 예상했는지 서울중앙지검장 등 지휘부를 전격 교체했다. 김 여사 방탄을 위한 검찰 인사라는 지적까지 받는 가운데 ‘김 여사 챙기기’는 거기까지다. 상남자 역할도 지나치면 팔푼이가 된다. 어느 선에서는 멈춰야 한다. 더욱이 홍 시장 발언과 달리 권양숙 여사 건과는 차이가 있다. 노 전 대통령 장인의 좌익활동은 후대 사람이 어찌할 수 없는 연좌제 성격이지만 김 여사 건은 스스로 통제할 수 있었던 사안이란 점에서 본인 해명과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많은 국민이 오랫동안 대통령 부인 문제로 피로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야당 폭주를 보면 그냥 끝날 것 같지 않아 대통령 부부뿐만 아니라 지켜보는 국민도 고통스럽다. 영부인 특검이나 조사가 이번에 진행된다면 여야가 더이상 추가 반복하지 않겠다는 신사협정이라도 맺으면 어떨까 싶다.

김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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