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체' 문제 풀다 NASA 탐사선 궤도 계산하는 한국 연구원

이채린 기자 2024. 5. 17.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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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시케 위치를 계산하는 고다영 NASA JPL 한국인 연구원. Lo Huynh 제공

최근 기하학과 역학을 활용해 우주에서 3개 물체의 움직임을 계산하는 알고리즘을 만들어 학계의 주목을 받은 미국항공우주국(NASA) 한국인 연구원이 있다. 탐사선 궤도를 계산하는 고다영 NASA 제트추진연구소(JPL) 연구원이다. 

그의 연구결과는 지난 4월 미국 수학·과학 전문 매체 '콴타매거진'에 소개됐다. 서로 생소한 두 분야를 연결지어 이해의 지평선을 넓혔다는 평을 받았다. 7일 진행한 화상 인터뷰에서 그는 "NASA에서 평생 우주일을 할 수 있다는 자부심으로 연구를 해내가고 있다"고 밝혔다. 

● 수학과 역학으로 '이해의 지평' 넓혀

이번 연구의 시작은 고 연구원이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 항공우주공학 박사과정 시절에 '삼체 문제'를 만나면서부터다. 최근 넷플릭스가 방영한 '삼체'에 등장해 잘 알려진 삼체 문제는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3개 물체의 움직임을 계산하는 문제다. 모든 경우에 들어맞는 '일반적인 답'은 없어 천문학과 수학의 난제지만 특수한 경우를 가정하면 답을 찾을 수 있다. 이 답은 우주에서 여러 천체와 물체의 움직임을 계산하는 데 쓰인다. 

고 연구원은 자신의 연구를 적용해 삼체 문제의 해답 수천개를 찾아 2016년 논문을 학술지에 투고했지만 '게재 거절'을 당했다. 그는 "학술지로부터 '접근 방식은 독특하지만 이해하기 어렵다'는 피드백을 받았을 때 속상할 수 밖에 없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삼체 문제 설명. 위키미디어 제공

삼체 문제는 고 연구원을 다른 의미로 실망시키지 않았다. NASA에서 일할 기회를 줬기 때문이다. 대학원 수업에 강연을 하러 들어온 한 NASA 직원이 삼체 문제를 언급했다. 고 연구원은 "강연을 듣자마자 밤을 새워 그동안 해온 연구가 삼체 문제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를 빽빽이 적은 장문의 메일을 NASA 직원에 보냈다"면서 "그도 내 아이디어를 중요하게 평가해 NASA에서 인턴을 할 기회를 줬다"고 했다. 결국 2016~2018년 대학에서 연구를 하면서 NASA에서 동시에 인턴일을 했다. 그러다 2019년 계약직으로 NASA에 입사했고 2021년 정규직원이 됐다. 

물론 고 연구원은 삼체 문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시간날 때마다 삼체 문제의 자신의 이론을 어떻게 발전시킬지 고민하며 다른 논문을 뒤적이고 혼자 연구했다. 한참 막혀 있다가 5년 뒤인 2021년 당시 어거스틴 모레노 스웨덴 웁살라대 수학과 박사후연구원의 '사교기하학' 접근이 접점이 있다고 생각하고 메일을 보냈다. 추상적 공간을 연구하는 사교기하학과 고 연구원의 연구결과를 합치면 쉽게 말해 역학으로 계산한 궤도가 공간 차원에서도 들어맞는다는 것을 계산해 증명할 수 있었다. 

고 연구원과 모레노 연구원은 3개 물체 중 하나가 너무 작아서 다른 두 물체에 영향을 많이 주지 않는 삼체 문제의 '제한된' 버전을 연구했다. 이 연구는 올해 10월 목성의 위성 '유로파'를 탐사하기 위해 떠나는 NASA의 '유로파 클리퍼' 미션에 적용할 수 있다. 이들은 삼체 문제의 새로운 알고리즘을 개발해 2021~2023년 매년 논문을 발표했다.

"이번 결과는 연구가 더 필요해 당장 NASA 미션에 쓰이지는 않아요. 하지만 서로 다른 분야를 합쳐 좋은 평가를 받고 있어요. 역학에서 어떤 문제의 해답을 찾아도 해답이 나오는 내막을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수학은 엄밀하게 그 내막을 이해 가능하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 우주 중독자들이 모인 NASA 

지난해 13일(현지시간) 오전 10시 19분 미국 플로리다주 케네디우주센터 스페이스X의 ‘팰컨헤비’ 로켓이 탐사선 '프시케'를 싣고 발사했다. 프시케는 '보물소행성'이라 불리는 소행성 '16프시케'를 채우고 있는 철, 코발트, 백금, 니켈 등 각종 광물을 조사한다. 이 소행성의 경제적 가치는 1000경달러. 세계 경제 규모의 약 9500배에 달한다. 고 연구원은 프시케 발사 미션에서 탐사선의 궤도와 위치를 계산하는 핵심 역할을 맡았다.

NASA는 고 연구원의 오랜 꿈이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천체 관측회, 과학캠프에 다니면서 목성과 토성을 자주 관측했다"면서 "그때부터 목성에 닿기를 간절히 원했다"고 말했다. 우주공학을 언젠가 연구하겠다는 생각으로 한국에서 아주대를 다닐 때 전공으로 기계공학을 택했다. 

꿈꿨던 기간이 오랜 만큼 실망감도 있지 않았냐는 질문에 고 연구원은 "여전히 심장이 뛰는 일이라 고된 것들을 잊고 산다"고 답했다. 그에 따르면 NASA가 외국인에게 관대한 곳은 아니다. NASA 일이 안보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에 외국인이 참석할 수 없는 회의, 외국인이 들어갈 수 없는 건물이나 서버가 있을 정도다. 이런 어려움이 있음에도 고 연구원은 "그밖의 부분에서 차별은 없기 때문에 마음껏 우주 연구를 하고 있다고 했다. 

NASA 탐사선 주노가 촬영한 목성의 남극. 고 연구원은 NASA에 입사했을 때 목성 탐사를 첫 미션으로 맡았다. NASA/JPL-Caltech/SwRI/MSSS

NASA 근무의 최대 장점으로 고 연구원은 "평생 우주 연구의 최전선에서 일할 수 있다는 자부심"이라고 말했다. 고 연구원은 "NASA엔 우주에 푹 빠진 사람들이 많다. 길가다 우연히 만나 각자 하는 일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면 보통 몇 시간이나 떠든다. 30년 이상 근무하는 사람들이 많아 '평생 직장'이란 생각이 강하다. 머리 긴 사람, 찢어진 티셔츠를 입고 다니는 사람이 있을 만큼 복장도 자유롭다"고 했다.

한국판 NASA를 꿈꾸며 27일 개청하는 '우주항공청'은 5년간 계약한 뒤 최대 10년까지 연장하는 채용 조건을 내세우고 있어 고용 불안정성을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다른 NASA의 장점으로 '실패를 한 사람만의 일이 아닌 전체의 과제로 보고 해결하려는 분위기'를 꼽았다. "지난해 프시케 미션이 누군가의 잘못으로 발사 몇 달을 남기고 미뤄지게 됐다"면서 "그럼에도 동료들이 그를 지적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건지 회의를 계속하고 문제를 결국 빠르게 해결해나가는 모습을 보고 'NASA에서는 한 순간의 실패로 좌천되지 않고 동료들끼리 서로 이끌어준다'는 생각이 들어 일에 믿음이 더 생겼다"고 말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NASA JPL. NASA JPL

고 연구원은 우주항공청이 직원들이 '자부심'을 갖게 해주도록 도우면 좋겠다고 의견을 밝혔다. "제가 있는 NASA JPL은 사슴과 너구리가 돌아다니는 산 가까이에 있어요. 연구실은 잘나가는 IT 기업에 비하면 최신 시설을 갖추고 있지도 않지요. 다만 우주 연구를 하고 있다는 자부심 넘치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이 그만큼 최선을 다해 우주에 몰두하고 있어요. 당장 닿을 수 없는 우주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누군가 우주 연구를 계속 하도록 믿고 맡겨주는 걸 가장 중요하게 생각할 거예요. 우주항공청 위치보다 우주항공청이 주는 자부심이 중요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이채린 기자 rini11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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