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을 일부러 망가뜨렸다? 영국 감독이 그린 프랑스 영웅 '나폴레옹' [스프]

2024. 5. 17.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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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즐레] 주말에 뭐 볼래?


(SBS 연예뉴스 김지혜 기자)

영화 '나폴레옹' / 애플 TV+ / 15세 이상 관람가 / 러닝타임 158분

"나의 사전에는 불가능은 없다."

이 명언만 들어도 누군지 단번에 떠오르는 인물, 바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다. 지중해에 위치한 프랑스 변방 코르시카섬 출신의 군인 나폴레옹은 프랑스를 넘어 유럽 대륙을 호령했던 '전쟁의 신'이다.

나폴레옹은 혁명의 혼란으로 어지러운 18세기 말 프랑스에서 뛰어난 군사전략과 정치력으로 35살에 황제의 자리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화려한 여성 편력, 조세핀과의 결혼과 이혼 등 연애사 역시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전쟁 영웅의 지략과 파란만장한 연애담, 그리고 드라마틱한 몰락까지 창작의 소재로 이보다 흥미로운 인물이 있을까. 실제로 그는 여러 문학과 음악에 모티브가 됐다. 누구나 다 안다고 생각한 인물의 빈틈을 파고드는 것은 영화감독의 욕망을 자극하기에도 충분했다.

마틴 스콜세이지,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함께 할리우드에서 활약하는 대표적인 '80대 거장'으로 불리는 리들리 스콧이 나폴레옹 일대기를 다룬 영화 '나폴레옹'으로 돌아왔다. 타이틀롤은 '조커'(2019)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연기파 배우 호아퀸 피닉스가 맡았다.


2000년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 호흡을 맞추며 아카데미 작품상을 비롯해 5관왕 신화를 쓴 두 사람의 23년 만의 재회는 할리우드 안팎에서 화제를 모았다.

'나폴레옹'은 흥행 성적과 평가 면에서 좋은 결과를 남기지는 못했다. 1억 3,000만 달러의 제작비가 투입된 이 영화의 손익분기점은 3억 달러 이상이었다. 그러나 북미 박스오피스에서는 6,149만 달러, 월드 박스오피스에서는 2억 1,000만 달러를 버는 데 그쳤다.

거장은 평작도 수작이라지만 '나폴레옹'을 향한 호불호는 편차가 크다. 호평은 리들리 스콧 감독의 고국인 영국을 중심으로 형성되었고, 나머지 유럽 국가에서의 반응은 차가웠다.

특히 나폴레옹의 나라인 프랑스에서는 '역사 왜곡 논란'까지 불거지며 영화에 대한 혹평이 쏟아졌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역사 왜곡 논란에 대해 "당신이 거기에 있었느냐. 없었는데 어떻게 아느냐"고 불쾌한 심경을 드러냈다.

역사 왜곡은 나폴레옹에 대한 묘사와 몇몇 장면에 대한 지적에서 비롯됐다. 영화 초반 나폴레옹이 마리 앙투아네트의 처형 장면을 지켜보는 것, 이집트 원정에서 피라미드에 포를 쏘는 행위, 아내 조세핀에게 폭력을 가하는 행동 등이 영화적 상상력을 넘어 역사 왜곡 수준이라는 반응이다. 프랑스 언론들은 리들리 스콧 감독이 영국인이라는 점을 거론하며 반프, 친영 시각에서 영화를 만들었다고 불쾌해했다.


프랑스 전쟁 영웅의 영화를 영국 감독이 연출하고, 미국 배우가 주연을 맡았으며 모든 대사를 불어가 아닌 영어로 소화하는 것에 대한 불편함도 내포됐다고 볼 수 있다.

실존 인물과 실제 사건을 영화화한다고 해도 다큐멘터리가 아닌 이상 영화적 상상력을 관객은 수용할 수 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작품은 동시대엔 혹평을 받았으나 재평가가 이뤄지는 경우가 적잖았다. '블레이드 러너'(1982), '킹덤 오브 헤븐'(2005) 등이 대표적이다. 다만 '나폴레옹'이 그 대열에 올라설지는 의문이다.

모든 감독은 영화를 만들며 메인 캐릭터에 애정을 쏟는다. 그 애정이 인물을 호의적으로 그리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빛이든 그림자든 심도 깊게 다루는 총체적 연출을 하고자 노력한다. 스콧 감독 역시 예외가 아니며, 그의 대표작들은 그 점에서 있어 대부분 성공적이었다.


감독은 남과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스콧은 나폴레옹에 대한 천편일률적인 묘사는 피하려고 했다. 툴롱 전투, 아우스터리츠 전투, 워털루 전투 등을 통해 '전쟁 영웅'의 명암을 그리는 것만큼이나 '인간 나폴레옹' 내면의 불안을 담는 데 집중했다.

특히 나폴레옹의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친 조세핀과의 사랑과 이별에 많은 힘을 실었다. 호아퀸 피닉스는 인간의 불안과 고독, 결핍과 외로움을 표현하는 데 탁월한 역량을 가진 배우다.

호아퀸 피닉스의 나폴레옹은 자신감 넘치고 늠름한 장군의 면모보다는 인간관계에 미숙하고, 사랑에 있어 무능력한 면모를 부각했다. 다만 배우의 개성이 워낙 뚜렷하다 보니 나폴레옹보다는 호아킨 피닉스가 먼저 보인다는 아쉬움은 있다.


새로운 시각과 다른 관점의 이야기가 관객의 흥미를 자극한다면 성공이지만, 틀린 이야기로만 비친다면 연출자의 의도는 실패한 것이 된다.

데이비드 스카파의 각본은 너무 많은 이야기를 아우르려다 하나의 이야기도 깊이 있게 파고들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1927년 만들어진 동명의 무성 영화가 330분이었고, 1956년 만든 '전쟁과 평화'가 208분, 2002년 프랑스와 영국이 합작해 만든 드라마는 4부작 미니시리즈였다. 나폴레옹의 방대한 인생사를 다루기에 158분은 숨찰 수밖에 없는 분량이다.

스펙터클 묘사에 남다른 능력을 지닌 리들리 스콧 감독의 역량을 생각한다면 1970년 작 '워털루'처럼 하나의 전투에 집중한 묘사를 했으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나폴레옹'의 전투 장면은 나폴레옹의 지략이 돋보이는 연출은 아니다. 먼 거리에서 찍은 장면과 부감이 많다 보니 스펙터클과 쾌감은 완성도과 관계없이 빠르게 휘발되는 감이 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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