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국민의힘, '총선 오답노트' 제대로 활용해야

이승재 기자 2024. 5. 1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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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이승재 기자 = 국회도서관에서 미래통합당이 만든 '제21대 총선백서'를 빌려봤다. 발간사에는 '이번 총선은 민심과 이반된 당의 착각이 현실에서 깨어져 나가 버린 사건'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번에 새로 작성 중인 '제22대 총선백서' 발간사에 그대로 넣어도 이상하지 않을 문구다.

이렇게도 적혀 있었다. '좋은 백서를 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인데, 미래통합당은 20대 총선백서에서 지적된 잘못을 그대로 답습했다.' 마찬가지로 그대로 적으면 될 듯하다.

백서의 내용도 비교적 충실했다. 통렬한 자아성찰이 적나라하게 담겨 있었다. 바꿔 말하면 오답노트만 잘 만들었던 거다. 학창 시절 오답노트를 만들던 기억이 떠오른다. 이쁘게 꾸미려 하지 말고 실제로 펴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식으로 가르침을 받았다.

결과적으로 이번에 총선을 지휘한 여당 지도부는 오답노트 활용에 실패했다. 21대 백서에서는 총선 패배의 첫 번째 원인으로 '중도층 지지 회복 부족'을 꼽았다. 1번부터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던 셈이다. 물론 노력을 했지만 결과가 따라오지 않았을 수 있다. 하지만 최선을 다했는지는 의문이다.

보수 진영에서 중도 확장성이 있는 대표적인 인물은 유승민 전 의원이다. 유 전 의원은 개인적으로 지원 유세에 나섰을 뿐 당으로부터 부름은 받지 못했다. 선거운동 기간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과 유 전 의원이 만나는 장면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선거 막판 한동훈 원톱 한계론까지 거론됐을 때도 유승민 카드는 쓰여지지 않았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이해찬 전 대표와 김부겸 전 국무총리를 내세워 통합 선대위를 꾸렸고, 문재인 전 대통령까지 후방 지원에 나섰다. 공천 파동의 중심에 있었던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이재명 대표의 포옹은 이번 총선의 상징적인 장면이 됐다.

당 내부에서는 총선 이후의 당권 경쟁 구도를 생각해 손을 잡지 못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까지 나왔다. 실제로 한 전 위원장과 유 전 의원은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유력한 차기 당권주자로 거론되며 1·2위를 다투는 중이다.

또 담겨야 하는 내용이 있다. 한 국민의힘 당직자와 식사 도중에 '진짜로 진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그 당직자는 내 답변을 길게 듣지 않고, 숫자로 명확하게 나온 부분이 있다고 말하면서 '현역 교체율'을 예로 들었다.

이번 공천에서 현역 의원 물갈이는 35.1%에 그쳤다. 직전 총선(43.5%)과 비교해서는 8.4%포인트(p) 적은 수준이다. 114명의 의원 가운데 74명이 공천장을 받았고, 3선 이상 중진의 경우 32명 중 25명이 생환했다.

당초 교체율이 70%까지 될 것이라는 관측도 있었지만, 뚜껑을 열고 보니 친윤 초·재선, 중진 의원 대부분이 살아남은 '무감동 공천'만 남았다. 반대로 민주당은 현역 교체율이 42.5%였고, 21대(27.9%)와 비교해 14.6%p 올랐다.

일부는 쌍특검법(김건희 여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대장동 50억 클럽) 재표결 '이탈표'를 우려해 컷오프(공천 배제) 시점이 뒤로 밀렸다고 말한다. 이 과정에서 원하는 수준의 물갈이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거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 또는 한 전 위원장 등 특정인의 책임을 백서에서 따져야 하는 지를 두고 다양한 의견이 나오는데, 이는 본질을 벗어난 소득 없는 논쟁이다. 해당 내용을 빼고 백서를 만드는 게 더 어려울 듯하다. 이번 총선 참패의 원인 가운데 하나가 '정권 심판론'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선거를 지휘한 인물은 한 전 위원장이다.

이를 대전제로 두고 세밀하고 명확한 분석이 나와야 한다. 다행히 이전 백서를 보니 내용은 충실히 담길 것으로 예상된다. 바라는 것은 다음 23대 총선을 앞두고는 꼭 이 오답노트를 펴봤으면 한다. 그리고 다시 틀리지 않았으면 한다.

☞공감언론 뉴시스 russa@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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