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요 사태’ 누벨칼레도니에서 ‘틱톡’은 왜 차단됐나 [특파원 리포트]

안다영 2024. 5. 17.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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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뉴칼레도니아로 익숙한 남태평양의 프랑스령 섬 누벨칼레도니에 비상사태가 선포됐습니다. 현지시각 13일 밤부터 헌법 개정에 반발하며 시작한 시위가 유혈 소요 사태로 번지며 인명 피해가 잇따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사태를 촉발시킨 헌법 개정안은 누벨칼레도니에서 10년 이상 거주한 사람에게 지방선거 투표권을 주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친독립 성향의 원주민 카나크족은 이렇게 될 경우 외부에서 유입된 이들로 유권자가 확대돼 원주민 입지가 좁아질 거라며 반대하고 있습니다.

방화와 약탈 등 사태가 격화되자, 프랑스 정부는 소요 발생 이틀 만에, 누벨칼레도니에 군 병력 배치 등의 조치와 함께 섬 전체에서 '틱톡' 사용까지 금지하는 비상사태를 선포했습니다. 프랑스 정부가 금지 사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누벨칼레도니 자치 정부 측은 틱톡이 증오의 메시지를 유포하고 폭력을 조장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 전례 없는 SNS 차단 조치 왜?

프랑스 정부가 틱톡 차단에 나선 근거는 국가가 심각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비상사태 선포 시, 특정 대중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가브리엘 아탈 프랑스 총리는 이번 조치를 취하면서, '테러 행위를 선동하거나 묵인'하는 프랑스의 모든 온라인 통신 서비스의 차단을 요청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폭동을 이유로 소셜네트워크를 차단한 건 프랑스를 넘어 유럽연합 차원에서도 사실상 처음이라고 일간 '르 몽드'는 전했습니다. 지난해 알제리계 청소년이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숨진 '나엘 사건'으로 프랑스 전역에서 폭동이 일어났을 때, 마크롱 대통령은 "통제 불능 상태가 되면 소셜네트워크를 차단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긴 했지만, 실행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프랑스가 비상사태를 선포하면서까지, 전례 없는 SNS 차단 조치에 나선 이유는 뭘까요. 이번 소요 사태를 이끄는 세력은 누벨칼레도니 원주민 가운데서도 20대 안팎의 청년들입니다. 주로 SNS를 통해 소통하는 청년층이 SNS상에서 폭동 계획을 도모하는 걸 막겠다는 게 프랑스 정부의 판단입니다. 실제 지난해 '나엘 사건' 당시 상당수의 청소년이 SNS로 폭동 시간과 장소를 공유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또 SNS를 통해 확산한 폭동 영상이 다른 원주민들까지 자극할 수 있다는 점도 프랑스 정부가 우려하는 바입니다.

누벨칼레도니 시위 현장에서 찍힌 원주민 청년. 사진 출처: AFP


비상사태는 현지시각 16일 새벽부터 최소한 12일 동안 유지됩니다. 프랑스 정부가 이 기간 안에 소요 사태를 진화해야 할 또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바로 다음 달 11일, 파리올림픽 성화가 누벨칼레도니에 도착하기 때문입니다. 소요 사태가 진정되지 않는다면 성화 봉송도 차질을 빚게 될 가능성이 커집니다. 성화가 프랑스 해외 영토까지 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해온 프랑스로서는 내부 갈등을 전 세계에 중계하는 꼴이 될 수 있습니다.

■ 왜 유독 틱톡만 차단?

그럼 페이스북이나 X(옛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 다른 SNS는 두고, 왜 틱톡만 차단시킨 걸까요. 프랑스 공영 방송인 '프랑스앵포'는 이번 시위를 주도하는 친독립 성향의 원주민 카나크족이 가장 선호하는 소통 수단 중 하나가 틱톡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시위 주동 세력이 틱톡을 가장 활발히 쓰는 20대 안팎의 청년층이라는 것도 이유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프랑스 정부가 공개적으로 말 못할 속사정도 있어 보입니다. 틱톡이 중국 기업이라는 점 때문입니다. 앞서 미국 의회는 자국민의 개인 정보 유출 가능성을 이유로 틱톡 금지법을 통과시키고, 여러 서방 국가들은 틱톡을 가짜뉴스의 온상으로 지목하기도 했습니다. 프랑스 정부 역시 틱톡에서 소요 사태 관련 가짜뉴스 확산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특히 중국 기업이 운영하는 틱톡에서 작용할 중국 정부의 보이지 않는 손이 신경 쓰일 겁니다.

친독립 성향의 원주민 카나크족 단체가 헌법 개정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 출처: AFP


이번 사태에서 중국이 왜 등장하는지 설명하려면 2021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2018년, 2020년에 이어 누벨칼레도니의 분리독립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마지막 주민투표가 있었습니다. 1, 2차 투표 모두 반대 여론이 앞섰고, 마지막 3차 투표에서는 압도적인 반대표로 분리독립이 무산됐습니다. 다만 원주민들을 중심으로, 독립을 지지하는 이들이 투표 보이콧을 선언하며, 마지막 투표 결과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갈등의 여파가 이번 사태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분리독립 투표가 한창이던 당시, 전문가들은 누벨칼레도니가 프랑스에서 분리 독립에 성공하면, 중국의 영향력이 커질 거라 내다봤습니다.누벨칼레도니는 세계 니켈 매장량의 10%가 매장된 천연 자원의 보고이자, 인도·태평양 지역의 주요 전략 거점이기도 합니다. 이런 누벨칼레도니에 눈독을 들여온 중국으로서는 누벨칼레도니의 분리 독립이 절호의 기회가 되는 셈입니다. 막대한 투자로 천연 확보에 나서는 한편, 중국 해군 기지가 누벨칼레도니에 들어올 수 있단 전망도 나왔습니다. 일각에서는 이런 이유로 누벨칼레도니의 독립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게 중국이라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결국 헌법 개정 반대에서 시작된 이번 사태가 분리 독립 움직임을 재점화시킬 수 있단 것, 어쩌면 프랑스 정부가 가장 피하고 싶은 상황일 겁니다.

이번 조치를 둘러싼 반응은 엇갈립니다. 프랑스 정부가 근거로 삼은 테러와의 연관성은 근거가 약하다며, 이번 결정의 적법성을 놓고 논쟁의 여지가 있다고 주장하는 쪽이 있습니다. 반면 다른 쪽에서는 무장 반란을 선동하는 장으로 틱톡을 지목하며, 공공 질서와 보안 회복이 더 시급하다고 주장합니다. 이 논쟁을 떠나 한 가지 분명해 보이는 건 틱톡이 서방 사회와 중국 간 주도권 다툼의 장이 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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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다영 기자 (browneyes@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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