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초처럼 기사회생하길”…뚝섬 ‘세송이물망초의 정원’에 눈물도

김예진 2024. 5. 17. 07:0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슬프기만 했던 물망초 꽃들이 햇살 아래 반짝이는 유리 온실 속에서 시들지 않는 꽃으로 다시 피어났다. 납북자·억류자·국군포로 송환을 기원하는 상징물인 ‘세송이물망초‘를 모티프로 한 예술작품이 뚝섬 한강공원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16일 서울국제정원박람회가 시작된 서울 광진구 뚝섬 한강공원 한켠, 나난강 작가의 작품 ‘세송이물망초의 정원’이 설치됐다.

통일부는 납북자·억류자·국군포로에 대한 대내외 관심 환기를 위해 적극적인 캠페인을 펴고 있다. 이번 작품 공개는 그 일환이다. 나난강 작가가 아티스트피를 받지 않고 재능기부 형태로 설치작품을 만들었다. 작품은 유리온실 안에  물망초와 소나무, 파초, 나비 형상이 희망의 밝고 푸른 빛으로 어우러진 모습이다. 입출구 쪽에는 납북자·억류자·국군포로들의 사연과 역사를 알 수 있는 영상물이 재생된다. 관람객은 자유롭게 온실을 드나들며 작은 물망초 정원을 거닐 수 있다.

16일 서울 광진구 뚝섬한강공원에서 개막한 '2024 서울국제정원박람회'를 찾은 시민들이 납북자·억류자·국군포로 문제·상징 '세송이물망초의 정원'을 관람하고 있다. 서울시는 이날부터 오는 10월8일까지 '2024 서울국제정원박람회'를 개최하고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정원을 관람객들에게 선보인다고 밝혔다.  이제원 선임기자
나난강 작가는 이날 제막식에 참석해 “‘나를 잊지 말아요’란 꽃말의 물망초는 북에서 돌아오지 못한 우리 국민을 뜻하고, 사시사철 푸른 소나무는 애국가에 등장할 정도로 우리 국민들이 사랑하는 나무이자 강인한 의지의 국민성을 상징하기에 북에서 우리 국민이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민화에 자주 등장하는 파초는 겨울엔 죽어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봄이 되면 다시 새순이 돋는 식물로 기사회생을 의미하고, 비록 작은 정원이지만 나비들의 날갯짓이 작지만 큰 효과를 불러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나비를 배치했다“고 설명했다.

제막식에 참석한 납북자·억류자·국군포로의 가족들도 감사를 표했다. 최성용 납북자가족모임 대표는 “세 명(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을 하는 동안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며 “이제 납북자 전담부서가 만들어져 생사확인이라도 되겠구나 희망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손명화 국군포로가족회 대표는 “저는 45년 북한에 살다 대한민국에 온 지 18년이 됐다”며 “(북한에 사는 동안) 국군포로 자녀로 태어난 죄로 연좌제를 당했는데 대한민국에 와서 보니 뜻깊은 행사를 하게 돼 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납북자·억류자·국군포로 가족들이 16일 ‘세송이물망초의 정원’ 제막식에 참석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예진 기자
이신화 외교부북한인권대사는 “‘세송이물망초’는 납북자·억류자·국군포로와 그 가족들의 긴 고통을 상기시킨다“며 “우리 국민을 반드시 데려오겠다는 우리들의 약속을 담고 있다”고 말했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은 “납북자·억류자·국군포로 가족들이 잠시나마 위안을 얻을 수 있길 바란다”며 “물망초를 활용해 다양한 문화행사를 진행해 더 많은 시민이 함께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납북자·억류자·국군포로 문제 해결은 자국민 보호라는 중대한 국가적 책무이고 분초를 다투는 시급한 목표라는 김 장관님 말에 적극 동의한다”며 “이 문제는 우리 국민 모두가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으로 함께할 때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제막식 현장은 국제정원박람회에 왔다가 유리온실 앞에서 발걸음을 멈춘 시민들이 함께해 대성황을 이뤘다. 남북관계가 단절돼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일이 없던 통일부 입장에서는 깜짝 흥행이었다. 마이크 고장으로 오 시장과 김 장관, 이 대사 축사가 거의 들리지 않았는데도 시민들이 유리온실을 감상하러 몰려들고 유리온실이 베일을 벗을 땐 “우와”하는 탄성과 박수가 나오기도 했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이 16일 서울 광진구 뚝섬 한강공원에서 열린 ‘세송이물망초의 정원’ 제막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김예진 기자
모델 겸 방송인 장윤주씨가 제막식에 깜짝 방문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장씨는 현장 취재진과 인터뷰에서 “친구 나난강 작가의 초대로 왔는데 저도 미쳐 알지못했던 부분들에 대해 알고 마음이 아팠다”며 “아직까지 그곳에서 어떻게 지내는지조차 알 수 없는 가족분들, 북한에 계신 우리 동포분들에게 안부를 전해드리고 싶고 이런 마음이 많은 분들에게 전해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고 소감을 말했다.

한편 이날 현장에는 행사에 대한 상반된 반응도 공존했다. 납북자·억류자·국군포로 문제를 협상할 대화 자체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 현재 남북관계의 한계도 고발됐다. 

‘세송이물망초의 정원’이 베일을 벗고 있는 모습. 통일부 관계자가 1인시위 중인 칼기납치피해자 가족 황인철씨와 대화하고 있는 모습. 김예진 기자
1969년 칼(KAL)기납치 사건으로 납북된 황원 MBC PD의 아들인 황인철 씨는 행사 시작 전 작품 앞에서 행사 항의문구를 적어 들고 1인시위를 벌였다. 그는 기자에게 “정부 대책이 실질적 해결에 맞춰져 있지 않고 이벤트 위주”라고 비판했다. 또 다른 편에선 한 시민이 무슨 작품인지 모르고 유리온실에 왔다가 의미를 알고 나서 눈물을 쏟기도 했다.

‘세송이물망초의 정원’ 작품은 2024서울국제정원박람회가 열리는 오는 10월까지 같은 자리에서 유지된다.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