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라 죽였다" 살인범 자백에도…경찰 "여혐은 아냐" 결론, 왜 [뉴스속오늘]

전형주 기자 2024. 5. 17. 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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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 피의자 김성민. /사진=뉴스1

2016년 5월17일 새벽 1시5분쯤. 서울 서초구 강남역 인근 건물의 공용화장실에서 23세 여성이 살해당했다. 여성은 이 건물 1층 주점에서 술을 마시다 잠시 화장실에 갔다가 변을 당했다.

범인은 30대 남성 김성민으로, 피해자와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다. 그는 전날 밤 11시42분쯤부터 건물에 숨어 화장실을 지켜보다 피해자가 나타나자 범행을 저질렀다. 범행 전까지 남성 6명이 화장실에 출입했지만, 김성민의 칼끝은 여성인 피해자만을 노렸다.

김성민은 범행 이튿날 경찰에 붙잡혔다. 자신이 근무하는 식당에 출근하는 길이었다.

김성민 "평소 여자들한테 무시당해 범행"
A씨의 남자친구가 범행 장소인 화장실에서 A씨를 발견하고 놀라 계단 난간에 몸을 기댄 채 발버둥치며 오열하는 모습이 담겼다. /사진=JTBC 뉴스화면 캡처

김성민은 경찰 조사에서 "평소 여자들한테 무시당해 범행했다"고 진술했다. 그 근거에 대해서는 "여자들은 의도적으로 지하철에서 천천히 걸어 나를 지각하게 한다"고 했다.

또 자신이 서빙을 하던 식당에서 최근 주방 보조로 옮기게 됐는데, 이 역시 여성한테 음해를 당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내가 여성들로부터 여러 피해를 당했지만 참았는데 최근에는 일까지 못하게 되는 등 직업적으로 피해를 입어 더이상은 못참겠다고 느꼈다. 이렇게 있다가는 내가 죽을 거 같으니 내가 먼저 죽여야겠다"고 했다.

다만 식당 측은 김성민의 위생 상태가 불결해 직무를 바꾼 것이라고 짚었다. 김성민은 조현병 진단을 받은 2008년부터 1년 이상 씻지 않는다거나 노숙을 하는 등 일상생활에서 자기 관리 기능을 거의 잃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여성 혐오 범죄 아냐" 결론, 왜?
서울 서초구 강남역 10번출구에서 시민들이, 여자라는 이유로 희생된 ‘묻지마 살인’ 피해자를 추모하고 있다. /사진=뉴스1

경찰은 이 사건을 정신질환자의 '묻지마 범죄'로 결론지었다. 김성민과 면담한 서울지방경찰청 프로파일러는 ▲김성민이 범행 당시 심각한 피해망상을 겪고 있던 점 ▲범행 동기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 ▲피해자와 일면식도 없는 점 등을 들어 김성민의 피해망상이 범행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또 김성민이 화장실에 들어온 여성을 보자마자 바로 공격한 점으로 미뤄 범행이 목적에 비해 계획적이지 않아 정신질환자 범죄의 특성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프로파일러는 "혐오(증오)범죄와 정신질환 범죄는 구분해 정의를 내려야 하는데 이 경우는 정신질환 범죄"라며 "혐오범죄는 특정 집단에 대한 편견에 기인한 것이고, 정신질환 범죄는 정신질환 때문에 생긴 특정 집단에 대한 피해망상과 환청 등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피해망상 때문에 반감을 가지는 것은 혐오범죄에 속하지 않는다"며 "지난해 특정 민족이 한국에 와서 한국을 망친다는 망상을 지닌 환자가 해당 민족 사람 3명을 살해했는데 이는 환자의 피해망상에 의한 정신질환 범죄이지 인종혐오 범죄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난 운이 좋아 살았습니다"
/사진=뉴스1

경찰의 결론에 여성단체는 반발했다. 강남역 10번 출구에는 피해자를 추모하는 내용의 쪽지가 나붙었다. "내가 희생자가 될 수도 있었다"는 심리적 공황이 추모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쪽지에는 "저도 같은 23살 여자입니다. 알바 매장도 범행 장소에서 가깝고, 일주일에 한번은 이곳에 옵니다. 여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벌벌 떨어야 하는 게 속상합니다", "당신은 운이 나빴고, 나는 운이 좋았던 것뿐인 현실에 분노한다" 등 내용이 담겼다.

신경아 한림대 교수(사회학)는 "이런 사건의 2차적 부작용은 여성들의 '심리적 위축'이나 '자기검열' 등으로 이어지며 여성을 더욱 무력화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왜 남성을 모두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냐"는 반발도 나왔다. 일부 남성은 강남역 외벽에 "이런 걸 계기로 여혐을 일반화하지 마라", "한 인간쓰레기가 살인을 저질렀다고 온 남성을 모욕하지 말라" 등 쪽지를 붙였다.

변호인 선임 거부한 김성민…"난 유명인사"
/사진=뉴스1

재판에 넘겨진 김성민은 "나 혼자 재판을 받을 수 있다"며 변호인 선임을 거부했다. 뒤늦게 국선변호인이 선임됐지만, 김성민은 접견과 변론을 거부하는 등 돌발행동을 벌였다.

그는 자신의 양형에 유리한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는 조현병 관련 자료도 전부 제출하지 않았다. 또 취재진을 보고 "기자들이 많이 온 것을 보니 내가 이렇게 인기가 많고 유명인사인 줄 몰랐다"고 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태도를 보였다.

재판부는 김성민에게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아울러 치료감호와 2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부착을 명령했다.

검찰과 김성민 측은 항소했지만, 항소심은 "원심의 형이 너무 무겁거나 가벼워 합리적인 범위를 벗어났다고 인정할 수 없다"며 기각했다. 이후 대법원은 2017년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전형주 기자 jhj@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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