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2라운드 '판정패'에 투쟁동력 잃은 의료계…대치는 지속될 듯

CBS노컷뉴스 이은지 기자 2024. 5. 17. 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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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법 '집행정지 신청 기각'으로 2025학년도 의대증원 사실상 확정
의협·교수단체 등 '증원 전면 백지화' 입장 같지만…'투쟁 실익 없다'는 분석도
'큰 산 넘었다'는 정부도 웃을 상황 아냐…전공의 복귀 가능성 여전히 낮아
환자단체 "전공의·의대 교수 등 현장 돌아올 수 있게 다양한 방안 준비해야"
정부의 의과대학 증원·배분 처분을 멈춰달라는 의대생·교수·전공의·수험생의 신청이 항고심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자 의료계가 즉시 대법원에 재항고하겠다고 밝혔다. 16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 붙은 의대증원 반대 홍보물. 연합뉴스


현 정부 '의료개혁'의 일환인 의대 증원·배분 처분을 멈춰 달라는 의료계의 집행정지 신청이 2심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으면서, 의사들의 대정부 투쟁 동력이 떨어질 거란 전망이 나온다.

대학별 모집인원 자율조정으로 확대 규모는 2천에서 1500명 안팎으로 줄었지만 의대 증원이 '공공복리'에 해당한다는 사법부 결정에 따라 정책 강행의 명분을 얻게 된 정부와는 대조되는 처지인 셈이다.

의대생·전공의·의대 교수 등은 즉시 재항고 방침을 밝혔으나 대입 모집요강이 확정되는 이달 안에 대법 판결이 나오기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2025학년도 증원 자체를 뒤집기는 어려워진 만큼 '증원 전면 백지화'가 최대 요구였던 의료계로선 투쟁의 '실익'이 없다는 회의론이 부상할 수밖에 없게 됐다.

다만, 뒤따를 입시 혼란을 감안할 때 애당초 집행정지 인용을 기대하긴 무리였다는 점에서 작금의 의·정 갈등은 '기약 없는' 장기화 국면에 들어갈 거란 우려도 제기된다.

17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이날 오전 대한의학회,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와 함께 전날 서울고법 행정7부가 내린 증원 집행정지 각하·기각 결정 관련 입장문을 발표한다.

전날 저녁 온라인 총회를 열고 향후 대응방안을 논의한 전의교협의 회의 결과 등이 반영될 예정인데, 이들이 '증원 전면 백지화'라는 기존 입장을 번복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이번 소송의 원고 측인 전의교협은 법률대리를 맡은 이병철 변호사(법무법인 찬종)와 함께 지난 13일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의대 2천 명 증원'을 뒷받침할 만한 과학적 근거가 전무(全無)하다고 비판하는 등 법원 결정 직전까지 치열한 여론전을 주도했다.

이들은 앞서 정부가 '증원규모를 2천 명으로 결정한 회의록 등을 제출하라'는 재판부 요구에 제출한 50여 개 근거자료 일체를 공개하며 "(의대증원 필요를 역설한) 정부의 주장은 (서울대 등) 기존 보고서 3개를 인용한 주장 외에는 없었다. 도대체 2천 명은 어디서 나온 숫자인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서울고법은 신청인들이 의대정원 문제의 직접적 이해당사자가 아니란 이유로 심리조차 없이 각하한 1심과 달리, 이달 중순까지 '입학정원을 확정하지 말라'며 제동을 걸어 인용 결정을 향한 의료계 내 기대심리에 불을 지폈다. '모든 행정행위는 사법적 심사·통제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재판부 발언에 고무된 의협 등은 의대교수 수천 명과 의사·의대생·학부모 등 4만여 명의 탄원서를 제출하며 화력을 집중했다.

그러나, 법원은 과다한 증원으로 의대 교육 질이 하락할 수 있다는 의료계의 주장을 일부 인정하면서도 "이 사건 처분의 집행을 정지할 경우 의사인력 확충을 통한 필수의료·지역의료 회복이라는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며 정부의 손을 들어줬다.

의대 정원이 늘지 않음으로써 발생할 불이익과 증원 이후 적절한 의대 교육을 받지 못하게 되는 의대생·전공의 등의 손해를 비교할 때 전자가 사회적으로 훨씬 더 큰 '마이너스'란 취지다.

전의교협 등은 즉각 재항고에 나설 방침이다. 이 변호사는 "대법원은 기본권 보호를 책무로 하는 최고법원이고 정부 행정처분에 대해 최종적 심사권을 가지므로 5월 31일 이전에 심리·확정해 주실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지만, 사안의 시급성·중대성을 고려해 판단을 서두르더라도 이달 내 최종 결론 도출은 불가능하다는 게 중론이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 따르면, 각 대학은 이달 말까지 정원 변동사항을 반영한 '수시 모집요강'을 발표해야 한다. 부산대 등 일부 대학들은 증원 관련 충분한 학내 합의가 없었다며 학칙 개정을 부결시켰으나, 이번 법원 결정으로 학교별 증원 절차도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은 2025학년도에 한해서나마 의대 증원 정책을 유보시킬 수 있다는 일말의 희망이 의료계에 남아 있었다면, 이제는 추가로 쓸 '카드'도 마땅치 않다는 분석이다.

16일 오후 광주 동구 전남대병원에서 의료진과 환자가 이동하고 있다. 서울고법이 의대생과 교수, 전공의 등이 의대 정원 2천명 증원·배분 결정의 효력을 멈춰달라며 정부를 상대로 낸 집행정지 신청의 항고심에 대해 기각을 결정함에 따라 27년 만의 의대 증원 최종 확정을 앞두게 됐다. 연합뉴스


이른바 '빅5' 병원을 수련병원으로 둔 서울대·연세대 등 19개 의대가 소속된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는 '주 1회' 정례휴진을 이어감과 동시에 1주일간 집단 휴진을 단행하는 방안 등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의비 최창민 위원장(서울아산병원 호흡기내과 교수)은 교수 휴진이 '환자를 버리는 것'으로 매도되는 상황을 두고 "그렇게 몰아가시면 일하는 사람들이 너무 힘이 빠진다"며 "(휴진은) 저희가 '살아남으려고' 추진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만약 인용 결정이 나면 고려하고자 했던 '진료 정상화'에 대해선 "이제 물 건너갔다"고 선을 그었다. 최 위원장은 많은 병원들이 '도산 위기'에 처한 현실을 언급하며 "모든 의료사태의 책임은 정부가 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만, 휴진 기간 등을 늘리더라도 참여규모가 얼마나 될지는 미지수다. 의대 교수들은 지난 2월 20일 전후해 현장을 동시에 빠져나간 전공의들처럼 결집된 집단행동을 꾀하기는 어렵다. 휴진 여부 자체가 과별 상황과 교수들의 개인 사정에 따라 좌우되기 때문이다.

설령 의협이 의료계 최고의 강경파로 꼽히는 임현택 회장을 중심으로 개원의 총파업 등으로 투쟁 범위를 넓힌다 해도 실제 여파는 그리 크지 않을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단 정부라고 마냥 웃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전날 '의대정원 관련 대국민 담화' 브리핑에서 "법원 결정으로 우리 국민과 정부는 의료개혁을 가로막던 큰 산 하나를 넘었다"고 했지만, 석 달째 최대 현안인 전공의 이탈 문제가 이를 계기로 해소될 거라는 시각은 많지 않다.

앞서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사직 당시 내세운 7대 요구사항 중 최우선 조건이었던 '필수의료 정책패키지 및 의대 증원계획 전면 백지화'가 사실상 무산된 만큼 이제 와 굳이 돌아올 까닭도 없다는 해석이다.

법정 다툼으로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진 의·정 갈등이 되레 전공의들의 반감을 더 키울 거란 우려도 나왔다.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 김성주 대표는 "환자들이 진료 차질을 겪는 상황은 전혀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며 "의료계는 오히려 (대정부 강경 노선을) 더 강하게 밀어붙일 것 같다"고 염려했다.

한국중증질환연합회는 사법부 판단을 환영하면서도 의료계에 대한 정부의 '설득'과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개혁의 동반자여야 할 의료계를 상대로 '시시비비(是是非非)'만을 따지는 태도로는 사태 해결이 난망하다는 지적이다. 연합회는 "환자 치료권이 가장 핵심과제임을 의료계에 전달해 달라"며 "(정부가) 사직 전공의와 의대 교수들이 의료현장에 복귀할 수 있도록 다양한 노력과 방법을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지난 1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의대증원 집행정지 법원 결정 관련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는 모습. 왼쪽 이주호 교육부 장관, 오른쪽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박종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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