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게 나는 ‘가해자’였다 [책&생각]

한겨레 2024. 5. 17.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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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살인범 에스(S)가 자살시도를 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그러나 그의 남은 생은 감옥에서 살도록 정해져 있다.

그렇기에 내면에서 인간으로서 뉘우치거나 과거와 다르게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수록 더욱 괴로울 것이다.

당시의 일을 '군대에 간 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했던 관행'쯤으로 얼버무리는 가해자와 '삼 년이 어제같이 느껴지는' 피해자의 숨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 섬세한 소설은 가해와 피해에 대해 묵직한 알레고리를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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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2024 제15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중
김남숙 지음 l 문학동네(2024)

연쇄살인범 에스(S)가 자살시도를 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미수에 그친 뒤 S가 소란을 일으켜 죄송하다고 사과의 뜻을 밝혔다는 결론을 접하며 생각했다. 연쇄살인을 저지르고 평생을 감옥에서 살아가게 된 이 인물은 어떻게 삶을 유지하고 있을까. 얼마나 괴로울까.

살인범을 변호하는 게 아니다. 살인을 저지른 이는 감옥에서 마땅히 죗값을 치러야 한다. 다만 누군가를 죽인 후에도 여전히 ‘인간’인 그의 여생에 시선이 머물렀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S도 인간인 이상 감옥에 갇힌 뒤 후회했을 것이다. 다시 잘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을 것이다. 실오라기만 한 분량이라 해도 분명, 갱생의 의지가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남은 생은 감옥에서 살도록 정해져 있다. 그렇기에 내면에서 인간으로서 뉘우치거나 과거와 다르게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수록 더욱 괴로울 것이다. 선택지가 없기 때문에. 바깥으로 나가서 시도할 수 있는 일이 없기에.

범죄자 혹은 사회적으로 비난받는 이들의 ‘이후의 삶’에 관심이 생긴 것은 최근의 일이다. 나도 모르는 새 내가 사람들에게 특정한 범주의 ‘가해’를 하며 살아왔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그런 시선이 생겨났다. 내 안에 다른 누군가가 살다 간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오랜 시간 타인들에게 피해를 주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는 망연자실했다. 그리고 마음의 감옥에 갇혔다. 내 자신의 사례로 체험을 하고서야 비로소, 물리적으로 감옥에 갇힌 이들의 여생에 마음이 가닿았다. ‘가해자’라 불리는 이들을 처음으로 같은 인간으로 사유하게 된 것이다.

가해자 혹은 피해자는 고정된 배역이 아니다. 우리는 살면서 누군가에게 가해자가 되기도 하고 돌아서면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내가 피해자인 경우에 대해서는 빠르게 인식하지만, 반대의 경우엔 쉽사리 인식하지 못한다. 수십 년간 가해를 저지르면서 전혀 깨닫지 못하기도 한다. 자신이 저지른 가해에 대한 인식은 대개 외부에서 오는 파열에서 시작된다. 때로 파열은 걷잡을 수 없다. 현인들이 지나칠 정도로 겸손한 이유이고, 인간이 끝없이 자신을 돌아보아야 하는 이유다.

단편 ‘파주’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심리를 돋보기를 들이댄 듯 세밀하게 포착해낸 작품이다. 당시의 일을 ‘군대에 간 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했던 관행’쯤으로 얼버무리는 가해자와 ‘삼 년이 어제같이 느껴지는’ 피해자의 숨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 섬세한 소설은 가해와 피해에 대해 묵직한 알레고리를 던진다. 두 사람의 심리를 엿보고 기술하는 시선이 제3자인 가해자의 동거인이라는 점도 알레고리를 치밀하게 만든다. 복잡한 문제를 단순하게 처리하지 않는 무기로 제3자가 영리하게 활용되는 셈이다. 우리는 어느 때 가해자가 되는가. 어느 때 진정으로 사죄하게 되는가. ‘그저 그 안에서 죽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킨 가해에 대한 적정한 보상은 무엇인가. 용서는 어떤 형태로 이루어져야 하는가. 뻔하지만 누구도 답할 수 없는 문제를 다시 한 번 곱씹게 만드는 묵직한 소설이다. 복잡한 문제를 복잡하게 그려낸 소설이 응당 그러하듯, 이 소설 또한 인간의 본성과 ‘저질러버린 죄’에 대해 여러번 곱씹어 숙고하게 만든다.

정아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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