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갱지에 5·18 “화장” 메모 첫 발견…실종 73명 찾는 단서 될까

정대하 기자 2024. 5. 17.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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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위 “민간인 3명 가족 동의 화장”
사망 사실 인정받았지만 ‘행방불명’
1980년 5월 ‘광주시 매장관계기록’엔 행방불명 의혹이 가장 많은 지원동과 형무소(광주교도소)라는 장소 옆에 ‘화장’이라고 적힌 메모가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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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18 민주화운동 시기에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광주시의 주검 처리 관련 기록물에서 ‘화장’이란 단어가 적힌 메모가 발견됐다. 실종자의 행방과 관련해 새로운 단서가 될 수 있는 만큼, 당시 광주시의 관련 기관 등을 상대로 실종 주검의 화장 가능성 등에 대해 면밀한 재조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화장’ 메모는 검찰 등에 제출된 5·18 당시 광주시 기록물을 정수만 전 5·18 유족회장이 스캐닝해 파일 형태로 보관하고 있던 것을 최근 한겨레가 확인한 것이다. 16절 갱지에 수성펜으로 작성된 이 메모엔 ‘지원동, 형무소, 화장-장의사 협회 연락’이란 글자와 함께 ‘자체 인도’ ‘공원묘지’ 등 주검 처리와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문구가 나온다. ‘5구’ ‘6구’ ‘28구’ 등 주검의 수를 나타내는 듯한 표현, 시간으로 추정되는 ‘12:15’ ‘11:00’이라는 숫자 표기도 등장한다.

5·18 단체들이 메모에 주목하는 것은 5·18 당시 사망한 사실은 인정받았으나 주검을 찾지 못해 ‘행방불명’ 처리된 희생자 73명의 ‘행방’을 찾는 데 단서가 될 수도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 때문이다. 이 메모에 ‘화장’과 함께 적힌 ‘지원동’과 ‘형무소’(각화동 옛 광주교도소)가 5·18 당시 희생자 주검을 목격했다는 진술이 집중된 장소라는 점도 예사롭지 않은 대목이다. 특히 광주교도소는 주검을 봤다는 진술은 많은데, 그 주검들이 이후 어디로 갔는지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광주교도소에서 주검을 목격한 이들은 여럿이다. 3공수여단 하사였던 김승식(69)씨는 지난 7일 전남 해남에서 한겨레와 만나 “5월21일 오후 광주교도소에 도착한 군 트럭에서 13구의 주검을 내렸다”고 증언했다. 3공수여단 하사였던 유아무개씨는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5·18조사위)에 “5월21일 밤 한 상사의 지시로 밤에 9구를 구덩이에 매장했다”고 증언했다.

당시 광주교도소에서 근무했던 소설가 홍인표(78)씨는 지난 2020년 한겨레에 “5월21일 오후 해거름 무렵 3공수여단 부대원들이 시민 3명을 매장하는 것을 봤다”며 “2~3일 뒤 주검 3~4구를 헬기로 실어 나간 것을 봤다”고 말했다.

1980년 5월 3공수여단 하사였던 김승식씨. 정대하 기자

광주교도소에서 사라진 주검은 최소 17구다. 1980년 5월31일 계엄사령부는 ‘광주사태 진상 조사’ 결과에서 광주교도소 주변에서 28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했지만, 광주교도소 구내(8구)와 광주교도소 앞 야산(3구)에서 11구만 발견됐다. 단순하게 집계해도, 김승식 전 하사가 본 사망자 13명 중 10명의 주검을 찾지 못한 셈이다.

1980년 5월 광주교도소 교도관이었던 홍인표 작가. 정대하 기자

광주에서 화순으로 나가는 길목에 위치한 지원동도 항쟁 기간 계엄군의 총격으로 사상자가 많았던 곳이다. 5·18조사위는 1980년 5월23일 오전 11시에 발생한 주남마을 마이크로버스 사건과 관련해 양민석, 채수길, 김재형, 김정, 김현규, 손옥례, 고영자, 김남석, 김윤수, 김춘례, 박현숙, 백대환, 황호걸 등 13명이 사망했고, 홍금숙만 생존했다고 밝혔다. 허연식 5·18조사위 조사4과장은 “군인 증언과 군 자료 등을 통해 마이크로버스엔 17명이 탔다는 사실을 확인했지만, 주검은 13구만 발견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또 다른 마이크로버스 총격 사건이 있었다는 주장도 끊이지 않는다. 당시 지원동에서 꽃집을 운영하던 김종화(77)씨는 2021년 5월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5월23일 오전 8시30분~9시15분 군인들이 마이크로버스를 총격했고, 주검 10구를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당시 김씨가 목격했던 마이크로버스는 총격을 받아 길에 전복된 상태였는데, 홍금숙 등이 탔던 마이크로버스는 전복되지 않았다는 진술로 미뤄 별개의 사건일 가능성이 크다.

광주시 동구청 상황일지 메모.

5·18 민주화운동 이후 정부로부터 5·18 희생자로 인정받고도 주검을 찾지 못한 이는 73명에 달한다. 5·18기념재단은 2020년 광주교도소 암매장 의혹을 파헤치려고 발굴 조사를 벌였지만 주검을 찾는 데 실패했다. 당시 허연식 조사위 과장은 “바다에 주검을 투기했다는 ‘수장설’을 일부에서 제기했지만,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했다”고 말한 바 있다.

2020년 광주교도소 암매장 발굴 현장. 한겨레 자료사진

남은 것은 화장 의혹이다. 이와 관련해 5·18조사위는 “전북 전주승화원에서 계엄군 2명을 화장했고, 광주 일곡화장장에선 5월28일 가족 동의로 희생자 3명을 화장한 사실은 있지만, 주검을 대량으로 몰래 화장했다는 의혹은 밝혀진 게 없다”고 밝혔다. 그런데 일곡화장장에서 화장한 민간인 희생자 김명숙, 오세현, 함광수 3명의 사망 장소는 지원동이나 광주교도소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대체 두곳에서 목격된 그 많던 주검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정수만 전 5·18유족회장은 “1980년 광주시 매장 관계 기록에서 ‘화장’이라는 말이 나온 것은 ‘주검 화장설’을 파헤칠 단서가 될 수 있다. 당시 시립묘지 위탁 관리업체인 무등묘원과 장의사협회 관계자 등을 상대로 면밀하게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대하 김용희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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