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라인 사태’ 본질은 친일·반일이 아니다

도쿄/성호철 특파원 2024. 5. 17. 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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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라인프렌즈 강남 플래그십스토어 모습./연합뉴스

BTS의 열성팬인 일본인 지인이 최근 특파원에게 “조국은 왜 다케시마(일본인들이 독도를 일컫는 명칭)에 갔나”라고 물었다. 연이어 “다케아키 총무상이 이토 히로부미 후손이란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고 했다. 일본에선 ‘라인야후 사태’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한국 이슈라면 과도하게 기사를 내는 일본 신문·방송이 이번엔 조용하기 때문이다. 자국 이슈이지만 ‘미국의 중국 틱톡금지법’보다 훨씬 보도량이 적다.

지인은 BTS 팬이라, 한국 뉴스를 보다가 라인야후 사태를 알게 된 것이다. 라인야후 사태의 전말을 20~30분간 설명했다. “일본 정부는 법적 구속력도 없는 행정지도를 통해, 사실상 한국 네이버에 지분을 팔라고 압박하고 있다”고 설명하자, “일본의 관치(官治)가 한국에도 민폐를 끼쳤다”는 사과의 말이 돌아왔다. 하지만 “잘못된 일본 관치는 악명 높긴 한데, 그게 왜 ‘반일’이 되는지, 100년도 전에 죽은 인물은 무슨 연관이며, 영토 문제는 왜 등장하는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양국 당국자가 만나, 잘잘못을 가리면 될 일이란 말이다. 정치에 관심 없는 40대 일본인 여성의 의견은 너무도 정론이라, 괜히 ‘한국에선 반일이면 뭐든지 활용하려는 정치인이 있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이유도 없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라인야후 사태에서 일본 정부의 잘못은 명백하다. 법치주의 국가라는 일본이 타국 기업과 관련된 사안에 관치의 칼로 마음대로 개입하고 있다. 미국도 틱톡이 우려되니 금지법을 만들었다. 법치주의 절차는 지켰다. 더구나 한국은 일본에 적어도 적대국 대접을 받을 이웃 나라는 아니다. 윤석열 정부도 잘한 게 없다. 한국 기업이 타국에서 불합리한 대우를 받으면 그게 동맹국이라 해도 즉각 항의해야 옳았다. 본지가 지난달 25일 라인 사태 이슈를 제기하고 나서야 다음 날 주일 한국 대사관에서 부랴부랴 총무성을 찾아가 사실관계를 확인한 건 늦어도 한참 늦었다.

하지만 일부 정치인이 주장하듯, 라인 문제의 본질이 네이버의 라인야후 지분 매각을 찬성하면 친일, 반대하면 반일이란 식이 될 순 없다. 최근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일본 정부가 자본 구조와 관련해 네이버의 의사에 배치되는 불리한 조치를 취하는 일이 절대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당사자인 네이버도 ‘서둘러 지분 매각하진 않겠다’는 분위기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의 입장이 확고해지면 공은 다시 일본 정부와 소프트뱅크에 넘어간다. 단호한 태도로 일본 정부의 대응을 주시할 시점이란 의미다. 반일(反日)의 노래는 부르긴 쉽지만 그게 누구를 위한 노래일지는 한번 생각해볼 일이다. 조용한 일본 언론의 태도는 혹시 일본 국익을 고려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일본 언론들은 요즘 슬슬 ‘라인야후 사태 전말’보다 ‘한국의 이상한 반일’이란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일본을 이기려면, 일본보다 더욱 냉정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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