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난장] 노병의 눈물

유일선 한국해양대 명예교수 2024. 5. 17.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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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내부 죽음 고질적인 은폐, 명확한 진상 밝혀지지 않아
채상병 사건 실체 규명 위해 대통령이 특검법 수용해야
유일선 한국해양대 명예교수

지난 2일 여당이 퇴장한 가운데 ‘채상병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에서 야당 주도로 통과되었다. 꽃다운 청춘의 영혼이 스러진 지 10개월 만이다. 이때 방청석에서 붉은 셔츠를 입은 한 백발의 노병이 소리 죽이며 오열하고 있었다. 가장 혈기왕성하고 풍부한 상상력으로 미래를 꿈꾸던 젊은 시절, 국가안보의 이름으로 지워진 의무에 3년 가까운 세월을 유보하고 마주한 군의 현실을 경험한 한국 아버지들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 눈물의 의미를 안다.

“얘야. 앞사람이 한 발자국 뛰면 너도 한 발자국 뛰고 그저 앞사람 발뒤꿈치만 보면서 뛰려무나, 눈물겨운 강물이 되어 어서 가자 어서 따라 오너라, 삼대를 이끌고 간다.” 군입대 당시 아버지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입대하는 아들에게 전한 나태주 시인의 심정으로 우리 부모는 자식을 군대에 보냈다.

그런데 아직도 이 땅에 수많은 젊은 목숨이 싸늘한 시신이 되어 돌아오고 있다. 1980년대 반독재 민주화운동을 뿌리뽑기 위해 박정희와 전두환 정권이 자행한 ‘녹화사업’(대학생 머리에 든 ‘빨간물’을 ‘파란물’로 바꾼다는 의미)으로 강제입대해 아직도 진실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채 국가폭력으로 희생된 젊은 영혼들, 구타와 집단폭력에 격분하여 총기 난사로 희생되거나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젊은 영혼들, 온몸에 피멍이 들도록 구타당하고 숨이 끊어진 젊은 영혼들, 가혹행위 기수열외 성희롱 등 군 내부의 부조리로 스스로 생명의 끈을 놓아버린 젊은 영혼들, 국가재난에 동원되었다가 불의의 사고로 스러진 젊은 영혼들.

더 심각한 것은 군 내부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죽음의 실체에 대해 제대로 밝혀진 적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국가와 군 지휘관은 국가안보와 군 조직 보호라는 명목으로 한 인간의 죽음을 ‘조그만 사고’쯤으로 치부하면서 피해자의 귀책사유로 사실을 왜곡하고, 사건을 조직적으로 은폐 또는 축소했다. 박정훈 대령 같은 양심적 군인에 대해서는 군에서 배제하는 조치로 대응했다. “정의와 인권을 바로 세우고, 오로지 진실만을 따라가는 공평한 검사, 처음부터 끝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국민을 섬기고 국가에 봉사하겠다(검사선서문 일부)”고 선언한 대한민국 검사는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는데 한없이 무능하거나 적극적인 동조자로 행세했다. 이런 국가를 상대로 자식의 죽음에 대한 실체를 밝히기 위해 생업을 포기하면서까지 싸워야 하는 유가족의 피눈물나는 고통의 무게를 그 누가 헤아릴 수 있겠는가.

이번 ‘채상병 순직 사건’은 군 내부에서 반복되는 ‘죽음의 악순환 고리’의 단면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정부의 대민지원 사업의 무리한 군 동원, 안전장비가 구비되지 않은 수색 비전문 병력을 배치한 해병대사령부의 수색 강행, 현장 지휘관과 소방당국의 권고를 무시한 군 지휘부의 독단, 해병대 수사단이 적법하게 1사단장 이하 8명의 군 지휘부에 대해 과실치사와 직권남용 혐의 조사보고서를 장관 결재 후 경북경찰청에 이첩했을 때 대통령실의 공직기강비서관실과 국가안보실의 개입으로 이첩보류 기록회수, 이후 대대장 2명 이첩 및 수사단장 보직해임과 집단항명수괴 혐의로 입건, 국방부장관 해병대사령관 1사단장 등의 지휘관답지 않은 책임 회피성 언행과 행동 등. 일련의 과정 어디에도 인간생명에 대한 존중과 국가에 충성, 업무에 정직해야 하는 군의 명예를 찾아볼 수 없다.

병사 가족이 군 지휘관을 고소하고, 군 지휘관은 자신의 보신과 출세를 위해 정치권에 휘둘리며 병사를 지키지도 못하는 군대가 어떻게 국가안보를 책임질 수 있겠는가. 국민은 “군대가서 참으면 윤일병(2014년 군폭력 희생자)이 되는 것이고, 못 참으면 임병장(2014년 총기난사로 사형)이 되는 현실에서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군대에 보내겠습니까”라고 국가에 묻고 있다. 이 물음에 국가는 답해야 한다. 그 답을 위해 특검법은 거부되어서는 안된다. 특검을 통해 군 내부 죽음의 실체를 명확히 규명하여 법과 제도를 개선하고 군문화를 쇄신해야 한다.

국가는 더 이상 억울한 죽음이 없는 군사회를 만들어 장병, 가족과 노병의 눈물을 닦아주고 그들의 명예를 회복해야 한다. 마지막까지 병사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죽어서도 그 전우들과 함께하기 위해 장군묘가 아닌 사병 묘역에 묻힌 채명신 장군의 묘비명 ‘그대들 여기 있기에 조국이 있다’를 보면서 산자로서 젊은 영혼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리고 곽재우 시인의 시 ‘김치찌개 평화론’의 소박한 세계를 꿈꾼다. ‘김치찌개 하나 둘러 앉아 / 저녁식사를 하는 식구들의 모습 속에는....부패와 좌절과 / 거짓 화해와 광란하는 십자가와 덥석몰이를 당한 이웃의 신음이 없다 / 38선도 DMZ도 사령관도 친일파도 / 염병할, 시래기 한 가닥만 못한 이데올로기의 끝없는 포성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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