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연극인 임영웅

박동우 무대미술가·홍익대 공연예술대학원 교수 2024. 5. 17.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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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우(무대미술가·홍익대 공연예술대학원 교수)

"동우씨, 급히 좀 와줘야겠어요." 공연을 앞두고 경남 창원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뭔가 심각한 문제가 생겼나 보다. 비행기와 택시로 부랴부랴 도착한 KBS 창원홀, 객석 한가운데의 연출가 옆으로 가서 앉았다. "동우씨, 저 나무를 한 자만 오른쪽으로 옮기면 어떨까." "그게 좋겠습니다." 그가 마이크를 들고 지시했고 무대감독이 앙상한 나무를 들고 30㎝ 옮겼다. "어때? 이게 낫지 않아?" "예, 그렇습니다." "그렇지? 역시 이게 낫지? 됐어요. 바쁠 텐데 이제 올라가서 일 봐요."

30년 전 객석에 앉아 있던 그 연출가는 한국 현대연극계의 거장 임영웅 선생이다.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의 유일한 무대장치인 나무 한 그루를 고작 30㎝ 옮기기 위해 아들뻘인 신인 무대미술가를 왕복교통비를 지불해가며 부르신 것이다. 파리도 더블린도 아닌 경남 창원 공연을 위해, 그 도면을 그린 당사자의 동의를 구하기 위해 말이다. 아무리 젊은 신인이라 하더라도 함께 작품을 만드는 예술동료로서 그 고유의 업무를 존중하신 것이다. 당시 관례론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무대에 올라가는 모든 것을 늘 다시 확인했다. 폭 25m의 광활한 무대도 그럴진대 9m의 산울림 소극장은 오죽했으랴.

1987년 초 산울림 소극장 개관 3주년 기념공연의 포스터 디자인을 의뢰받아 임영웅 선생을 처음 만났다. 그 자리에서 나는 인쇄물보다 무대를 더 잘할 수 있다고 말씀드렸고 선생님은 내게 선뜻 연극 '숲 속의 방'을 맡기셨다. 그게 내 데뷔작이 됐다. 임 선생님은 평생 파트너로 일하신 무대미술계의 거장 장종선 선생이 갑작스레 작고하신 후 '이제 누구와 작품을 해야 하나' 하던 참에 당돌한 신인을 만났다고 후일 말씀하셨다. 그 후 임 선생님이 연출하시는 모든 작품을 디자인하면서 나는 본격적으로 연극을 배웠다.

임 선생님은 늘 손수 대본을 건네주셨다. 산울림 소극장 1층에 있는 카페 산울림에서 대본을 주고 맥주를 따라주며 작품보다 주로 이런저런 세상 얘기를 하셨다. 내가 무대스케치와 평면도를 만들어 다시 찾아왔을 때도 비슷한 장면이 펼쳐졌다. "수고했어요. 검토해볼게" 하곤 며칠 후 전화를 주셨다. "동우씨, 중앙에 있는 책상을 반 자(15㎝)만 앞으로 옮길 수 있을까. 그 뒤에서 둘이 연기해야 하는데 좀 좁을 것 같아서 말이지." 나는 그렇게 연극을 배웠고 그 스승은 지난 5월4일 세상을 떠나셨다.

임 선생님은 평생 연극을 하셨다. 고교 시절 연극을 시작해 일간신문과 방송국에 재직하면서도 연극을 계속하셨다. 1966년엔 한국 최초 뮤지컬 '살짜기 옵서예'를 연출하셨다. '환절기' '북간도' 등 다수의 국립극단 연극을 연출하고 1969년 '고도를 기다리며'의 한국 초연 이후 직장생활을 접고 연극에 전념하셨다. 1970년 극단 산울림을 창단했고 1985년에는 서울 동교동에 산울림 소극장을 세우고 끊임없이 공연을 올리셨다. 1990년 더블린 국제연극제에 참가한 '고도를 기다리며'는 아이리시타임스 1면 헤드라인에서 '한국의 고도는 기다릴 만한 가치가 있었다'는 극찬을 받았고 2002년 일본 순회 뮤지컬 '갬블러'는 30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우리나라 해외공연 사상 최대 성공을 거뒀다.

임 선생님은 유치진-이해랑-차범석으로 이어지는 한국 사실주의 연극 계보의 적장자로 불리지만 그는 "무슨 ~주의 같은 말은 평론가들이 필요에 따라 붙이는 것일 뿐 연극은 본질적으로 인간의 이야기고 내가 그리고자 하는 것은 생생한 인간의 모습"이라고 하셨다. '좋은 연극을 열심히'라는 모토 아래 70년 외길 연극인생을 살아온 임영웅 선생은 본인의 분신 같은 소극장 산울림을 남겨두고 하늘로 가셨다. 그곳에 먼저 가 계신 장종선 선생과 만나 이제 하늘울림 극장을 짓고 또 한 편의 연극을 하시겠지. 좋은 연극을 열심히!

박동우 무대미술가·홍익대 공연예술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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