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의 도시의 정원사] 도심 버려진 곳마다 꽃… ‘정원 만들기’ 열풍

박원순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 국립세종수목원 전시원실장 2024. 5. 16.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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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사한 전원주택에 딸린 여유로운 정원이 아니어도, 도시에서도 마음만 먹으면 어디서나 자투리 공간을 활용한 정원을 만들고 즐길 수 있다. 도로변이나 주차장 모퉁이, 건물 주변과 옥상, 심지어 크고 작은 화분이나 화단 등 도시에 존재하는 다양한 틈새 환경은 수많은 식물들의 보금자리가 된다. 도시 골목마다 집이나 상점 앞에 내놓고 키우는 각양각색의 식물 화분들을 보면 기분 좋은 감정과 색다른 영감이 생겨난다. 어쩌다 부지런한 꿀벌과 나비, 박각시나방이 꽃을 찾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수십 년 전부터 도시 곳곳의 방치된 공간에 식물을 심고 정원을 만드는 ‘게릴라 가드닝’이 여러 나라에서 유행한 것은 조금이라도 푸르른 자연과 함께하고픈 시민들의 열망 때문일 것이다. 1973년 뉴욕의 정원 활동가 리즈 크리스티(Liz Christy)와 동료들이 버려진 땅에 씨앗을 뿌려 정원을 만들면서 이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사례 중에는 5월 1일 ‘국제 해바라기 게릴라 가드닝의 날’을 꼽을 수 있다. 매년 이날이 되면 전 세계 게릴라 가드너들이 도시 곳곳의 버려진 땅에 해바라기를 심는다. 2007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시작되었는데, 도시 정원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사람들에게 자연과 더 가까워질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이다.

공공의 주도하에 보다 체계적인 방식으로 자투리 공간을 정원으로 만들고 있는 사례도 있다. 산림청이 주관하고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에서 주최하는 ‘정원드림 프로젝트’다. 지난 4년간 500명에 이르는 조경‧산림‧원예 분야 전공 학생들이 프로페셔널 정원 작가들과 함께 전국 지방 주요 도시의 공터와 유휴 부지에 100곳의 정원을 만들었고, 올해도 역시 진행 중이다. 시민들은 새롭게 조성된 정원에서 산책과 휴식을 즐기고, 학생들은 앞으로 수많은 정원을 만들고 가꿀 전문가로 성장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값진 현장 경험을 얻고 있다.

최근 서울시(오세훈 시장)도 시민들이 일상 곳곳에서 즐길 수 있는 녹지와 숲이 우거진 정원 도시를 위해 발벗고 나섰다. 각 자치구에서 만들고 있는 ‘매력 정원’을 비롯해 1000여 곳에 이르는 공간이 정원으로 탈바꿈할 예정이다. 무미건조했던 화단에 다채로운 꽃이 계절마다 풍성하게 피어나면 아름다울 뿐 아니라 꽃가루 매개 곤충들에게 꿀과 꽃가루를 풍부하게 제공할 수 있다.

도시의 거리가 사람들의 시선이 머무는 곳마다 형형색색의 꽃들로 아름답다면, 하늘을 향해 무성한 가지와 잎을 펼치는 크고 높은 나무들은 서로 연결되어 새와 곤충의 보금자리이자 이동 통로가 된다. 이렇게 도시의 자투리 정원들이 점점 더 숫자가 많아져 보다 큰 규모의 녹지와 연결되면 전체적으로 놀라울 정도로 풍부한 생물 다양성을 보여줄 수 있다. 스튜어트 카우프만이 <혼돈의 가장자리>에서 소개한 카오스 이론과 같이 크고 작은 복잡함 속에서 자발적으로 거대한 질서가 생겨나게 되고, 결국 전체는 그 부분들의 합보다 더 커지게 되는 것이다. 마치 따로 떨어진 여러 가닥의 실들을 서로 묶다 보면 어느 순간 전체 실들이 하나로 연결되어 거대한 망을 형성하게 되는 현상과 같다.

이미 1998년부터 ‘정원 속 도시’를 표방한 싱가포르는 도시의 모든 녹지와 정원을 연결하여 누구나 가장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누릴 수 있는 공원 연결망(Park Connector Network)을 완성했다. 푸른 숲길을 걷다가 때로는 멋진 정원 벤치에 누워 나무 사이 하늘을 보기도 하며 자전거를 타고 시원하게 달리다 보면 어느새 도시를 한 바퀴 돌게 된다. 여기서 오래된 나무들은 녹색 랜드마크 역할을 하는데, 그 중심에는 150년 이상 역사를 지닌 싱가포르 식물원이 있다. 이제 싱가포르는 2020년부터 ‘자연 속 도시’라는 비전을 내걸고 한 차원 앞선 정원 정책과 서비스를 펼치고 있다.

도시 정원의 효과성을 보다 구체적으로 확인하고 검증하려면 생태계 서비스(Ecosystem Servises)라는 개념을 적용해 볼 필요가 있다. 1997년 미국의 경제학자 로버트 코스탄자(Robert Costanza)가 대중화시킨 이 개념은 생태계가 인간에게 제공하는 서비스의 경제적 가치를 금전적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이 연구에 따르면 생태계 서비스는 각각 지지, 공급, 조절, 문화에 관련된 네 가지 분야로 나뉜다. 도시 정원은 특히 생물 다양성과 기후 변화와 관련된 ‘조절’ 서비스, 그리고 사회적 유대감, 레크리에이션, 치유와 같이 사람들이 자연과의 상호작용에서 얻는 고품질 ‘문화’ 서비스를 상당 부분 제공할 수 있다. 도시 정원의 생태계 서비스에 대한 가치가 더 체계적으로 정리되면 정책을 만들거나 공간을 계획하는 사람들이 정원의 긍정적 효과를 적극적으로 적용하고 확대하는 데 설득력 있는 근거가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원 관련 분야뿐 아니라 사회심리학, 문화인류학 등 인문사회학적 연구도 함께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도시 정원을 만드는 전문가들과 대다수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 묵묵히 그 정원을 직접 유지하고 관리하고 보살피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와 지원, 작업 환경 개선도 이제는 중요하게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다양한 식물을 키워내는 재배가, 시민 정원사와 숲 해설가, 자원 봉사자가 그들인데, 정원에 진심인 이들이 좀 더 좋은 여건에서 가드닝을 할 수 있는 문화 정착과 체계적인 교육 프로그램 개발이 시급하다.

계절의 여왕 5월은 우리가 정원에 대해 가장 많은 것을 향유하고 나누는 시간이다. 이번 주부터 ‘서울, 그린 바이브(Seoul, Green Vibe)’라는 주제로 뚝섬한강공원 일대에서 열리는 서울국제정원박람회는 꽃과 정원을 사랑하는 시민들과 작가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정원 문화와 트렌드를 즐기고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아울러 곧 다가오는 5월 22일 ‘국제 생물 다양성의 날’을 맞아 산림청 산하 기관을 중심으로 전국 단위에서 열리는 각종 세미나와 캠페인, 전시도 눈여겨볼 일이다. 도시 곳곳에 만들어지는 정원들이 앞으로 얼마나 지속 가능하고 아름답게 생물 다양성에 기여할 수 있는지는 우리 모두의 관심과 참여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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