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월의쉼표] 마음에 드는 결론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소설 쓰는 후배를 만났다.
후배는 그럼에도 언제나 자신이 소설가임을 잊지 않는다고 했다.
근데 선배, 그러면 이론상으로 소설가에게는 만사에 불평할 일이 하나도 없어야 하고 세상에 소설가만큼 좋은 직업도 없어야 하는 거 아녜요? 현실은 왜 안 그럴까요? 제가 말해놓고도 자신의 유체이탈식 화법이 어이없었는지 후배는 말끝에 가볍게 실소했다.
에이, 그러니까 제 결론은요, 정신 차리고 소설 열심히 쓰자 뭐 그런 거예요.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후배는 그럼에도 언제나 자신이 소설가임을 잊지 않는다고 했다. 산책할 때도, 장을 볼 때도, 씻을 때도 먹을 때도, 지인의 장례식에 가고 결혼식에 갈 때도 저는 계속 소설에 대해 생각해요. 아, 저런 인물을 소설에 등장시키면 재미있겠네. 저런 장면을 소설에 삽입하면 근사하겠네. 저런 대사를 소설에 넣으면 정말 그럴듯하겠네, 하고요. 문제는 그렇게 생각은 많이 해도 그 생각들이 실제 집필로 이어지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거지요. 쓸데없이 생각만 하느라 허비하는 시간에 차라리 아무 생각 말고 한 줄이라도 쓰는 게 나을 텐데.
그런 다음 후배는 스스로 자신의 말을 반박했다. 하지만 저는 사실 소설 쓰는 사람에게 쓸데없는 것이란 없다고 생각해요. 예컨대 쓸데없이 생각만 하느라 시간을 허비하는 사람은 쓸데없이 생각만 하느라 허비하는 시간에 대해 잘 알고, 계획만 세우다 번번이 포기하는 사람은 계획만 세우다 번번이 포기하는 상황에 대해 잘 알고, 말만 번지르르하고 실천은 뒷전인 사람은 말만 번지르르하고 실천은 뒷전인 사람에 대해 잘 아는 법이니까요. 그것들이 언젠가 어떤 식으로든 소설에 반영될 수 있으니 쓸데없는 게 아니잖아요.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논리정연한 하소연에 딱히 끼어들 필요도 그럴 틈도 없었다. 근데 선배, 그러면 이론상으로 소설가에게는 만사에 불평할 일이 하나도 없어야 하고 세상에 소설가만큼 좋은 직업도 없어야 하는 거 아녜요? 현실은 왜 안 그럴까요? 제가 말해놓고도 자신의 유체이탈식 화법이 어이없었는지 후배는 말끝에 가볍게 실소했다. 에이, 그러니까 제 결론은요, 정신 차리고 소설 열심히 쓰자 뭐 그런 거예요. 갑자기 논리가 비약되며 성급하게 결론으로 치달았으나 그 결론이 마음에 들었으므로 나는 잠자코 따라 웃었다.
김미월 소설가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한덕수 탄핵 때 ‘씨익’ 웃은 이재명…“소름 끼쳐, 해명하라” 與 반발
- "경찰차 막아라!" “대통령 지켜라”… 영장 발부 후 아수라장 된 尹 관저 앞 [밀착취재]
- 선우은숙 “녹취 듣고 혼절”…‘처형 추행’ 유영재 징역 5년 구형
- “아내가 술 먹인 뒤 야한 짓…부부관계 힘들다” 알코올중독 남편 폭로
- 이세영, 얼굴·가슴 성형수술로 달라진 분위기 “회사에서 예쁘다고...”
- “남친이 술 취해 자는 내 가슴 찍어…원래는 좋은 사람“ 용서해줘도 될까
- 황정음, 이혼 고통에 수면제 복용 "연예계 생활 20년만 처음, 미치겠더라"
- 은지원, 뼈만 남은 고지용 근황에 충격 "병 걸린 거냐…말라서 걱정"
- 사랑 나눈 후 바로 이불 빨래…여친 결벽증 때문에 고민이라는 남성의 사연
- "오피스 남편이 어때서"…男동료와 술·영화 즐긴 아내 '당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