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의 귀갓길마저 질척해졌다"…야생사진 거장 프란스 란팅, 절망과 희망을 읽다 [김기자의 문화이야기]

김문영 2024. 5. 16.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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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스 란팅 대규모 개인전…오늘부터 7월까지
기후위기로 달라진 생태계와 멸종위기종 포착
40년간 이어간 예술 활동…"사진 속 동물의 내면을 보려 한다"
제인 구달 박사와 깊은 인연…"침팬지도 가족마다 고유한 문화 있다"
거인들의 황혼, 보츠와나, 1989 [사진=플랫폼C]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대표 작가이자 네덜란드 출신 야생 사진 작가인 프란스 란팅이 40년 동안 카메라를 잡고 기록한 대표작 90점을 선보입니다.

BBC가 선정한 '가장 위대한 야생 사진 작가'이자 '야생 자연 사진의 기준을 세운 작가'로 평가받는 프란스 란팅의 아시아 최초 대규모 개인전입니다. 이번 한국 전시에서는 프란스 란팅이 세계 최초로 공개하는 남극 사진도 공개됩니다.

프란스 란팅의 작품은 평론가들과 전문 사진 작가가 선정한 크리스티 자선 경매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자연 사진 40점'에 3점이 포함될 정도로 자연 사진의 역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눈부신데요.

이번 개인전은 기후위기로 인해 멸종 위기종이 된 동물에 대한 안타까운 시선과 함께 생물다양성의 보전이라는 주제를 넣어 '디어 포나(Dear Fauna: 친애하는 동물들에게)'라는 부제로 오늘(16일)부터 7월 31일까지 서울 JCC아트센터에서 열립니다.

내한 기자간담회가 열린 그제(14일) 란팅을 만나, 그가 포착한 기후 위기의 모습과 40년간 야생 사진을 촬영할 때 가진 자신만의 원칙 등을 물어보았습니다.

사진으로 극명히 드러나다…남극 펭귄의 '달라진 삶'

얼음 위 황제들, 남극, 1995 [사진=MBN]

황제펭귄의 무리가 끊어진 길을 마주하고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합니다. 남극의 해빙이 급속도로 녹아내리는 환경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가던 황제펭귄이 바다로 나가서 먹이를 수색한 뒤 새끼한테 돌아갈 길이 막막해 당황하는 장면입니다.

취재진에게 란팅은 "길은 늘 찾을 수 있다"며 "황제펭귄들도 결국은 며칠이 걸렸지만 자신의 새끼에게 돌아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우회하다 보니 평소보다 몇 배로 더 긴 시간을 들여서 먼 길을 돌아가야 했다고 덧붙였습니다.

기후 변화로 어려움을 겪는 다른 펭귄 사진은 이번 사진전에서 세계 최초로 공개됩니다. 남극의 눈이 기후 변화로 인해 녹아내리면서 젠투펭귄이 둥지 서식지로 가는 길이 더 이상 평평하지 않고, 질퍽거리는 깊은 터널이 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젠투 펭귄의 궤적, 남극, 2023 [사진=MBN]


최근 해빙이 녹으면서 어린 황제펭귄이 방수 깃털이 다 자랄 때까지 해빙 위에서 지내지 못해 멸종위기로 몰리고 있다는 연구 결과 등도 나오고 있는 가운데, 란팅의 사진은 극지대의 생명체가 겪는 어려움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장 들려주고 싶은 것은 희망"…지키면 놀라운 자연의 회복력

프란스 랑틴 기자간담회 [사진=플랫폼C]

그렇지만 수많은 멸종위기종을 본 란팅이 가장 전하고 싶어한 것은 희망의 이야기입니다. 란팅은 "전 세계의 뉴스가 절망적인 소식을 전하고 있지만, 희망과 회복력(또는 회복탄력성, resilience)도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한계를 뛰어넘는 회복력을 지닌 자연의 경이를 들려주었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북부에서 자라는 퀴버트리를 언급한 란팅은 "사막에서도 살아남는 법을 배운 나무"이지만 "기후 변화가 계속되면 이 나무도 죽을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그가 발견한 또 다른 희망의 상징은 자연 보존에 적극적인 아프리카의 한 나라, 보츠나와입니다. 이곳의 사막에 야트막이 펼쳐진 물에서 핀 수련을 발견하기도 했는데요.

오카방고 삼각주에서 작업 중인 프란스 란팅, 보츠와나, 1989, 수련, 보츠나와, 1989 [사진=플랫폼C, MBN]


란팅은 "아프리카의 다른 나라에 있는 코끼리보다 더 많은 수의 코끼리가 보츠나와에 있다"며 "코끼리들이 인구 수가 늘어나고 인간이 수렵을 하면서 점차 사라졌는데 보츠나와는 원시 생명을 그대로 보존해 전 세계의 관람객들이 찾는 나라가 됐다"고 언급했습니다.

롱런의 비결은 호기심…"심연을 보려고 합니다"

40년간 야생사진 촬영 작업을 이어갈 수 있었던 원동력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입니다. 란팅에게는 '어머니 지구'가 늘 영감을 주는 대상이었습니다.

사진작가의 숙명은 관찰하는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중립적인 위치를 유지하는 것이죠. 란팅은 피사체의 내면을 보려면 교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중립적인 태도도 중요하지만 열정적으로 더 깊게 보려고 한다고 말했습니다.

4주간 숨바꼭질을 하며 표범을 촬영할 때도 그랬습니다. 숫기가 없는 표범을 촬영하기 위해 텐트를 치고 생활하던 란팅은 어느 날 아침 텐트 앞에 찍힌 이 표범의 발자국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표범과 가까워졌다는 생각에 기뻐했습니다.

표범 한 마리, 보츠와나, 1989 [사진=MBN]


란팅은 "표범이 제 냄새를 맡고 밤에 찾아왔다"며 "이후 표범이 제게 가까이 다가온 그 짧은 순간에 촬영한 이 사진은 저와 표범이 서로에게 얼마나 다가갈 수 있는지를 보여준, 우리 사이를 증명해주는 사진"이라고 의미를 설명했습니다.

암사자 무리를 촬영할 때는, 밤에 사냥하는 그들의 습성을 따라 낮에는 잠을 잤고 이른 저녁에 암사자를 찾았습니다. 그렇게 1달을 쫓아 다니던 란팅이 차에서 내려 촬영을 하자 암사자 떼가 그를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를 해치는 일은 없었습니다.

개입하지 않지만 렌즈를 바라보는 동물들의 모습을 촬영한 란팅의 비결은 '존중'입니다. 그는 동물을 향해 존중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고, 모든 동물을 인간처럼 대하면서 관계를 형성했기에 이러한 촬영이 가능했다고 밝혔습니다.

90세 맞이한 제인 구달과 깊은 인연…"모든 개별 생명체가 중요"

프란스 란팅은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동료들은 물론 세계적인 영장류 학자인 제인 구달 박사와도 깊은 인연이 있습니다. 2주 전에 그의 미국 캘리포니아 자택을 제인 구달이 방문해 구달의 90세 생일을 다 함께 기념했을 정도입니다.

란팅은 "90세인 구달은 충분히 은퇴하고 집에서 쉴 수 있는데도 지금도 지구를 여행하면서 환경 보전 등에 대한 메시지를 내고 있다"며 자신도 열정적인 구달의 발자국을 따라서 젊은 세대에게 희망을 주는 메시지를 계속 전파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침팬지의 대모' 제인 구달이 침팬지가 도구를 사용할 수 있고 복잡한 사회 시스템을 갖췄다는 획기적인 연구 결과를 발표했듯이, 란팅은 야생 침팬지를 촬영하는 과정에서 침팬지 가정의 독특한 문화를 발견하는 성과를 낸 바가 있습니다.

물먹는 침팬지, 세네갈, 2007 [사진=플랫폼C]


동료인 자신의 아내와 함께 세네갈에서 침팬지를 6주 동안 추적한 란팅이 침팬지도 사람처럼 침팬지의 가족마다 고유한 문화가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침팬지의 활동 시간에 맞춰 매일 새벽 3시부터 등산하는 생활을 한 덕에 알게 된 사실입니다.

그는 바로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인류 사회의 각 공동체가 고유한 문화가 있듯이 침팬지도 각 가정마다 특이한 행동 양식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다양성의 가치를 더욱 실감하게 됐습니다.

그는 모든 생물종이 위협당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흔히 "'종'을 보존해야 한다"고 하는 말은 충분하지 않은 것 같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리고는 침팬지의 사진을 바라보는 취재진에게 이런 말을 전했습니다.

"다양성은 잘 짜여진 카페트의 실과 같은 것 같습니다.(Diversity is like the thread of one well-organized carpet.) 모든 개별 생명체와 공동체가 중요하죠.(Every individual matters, and every community is important.)"

반복 재생산하는 위대한 자연…"기성 세대의 실수로부터 배우겠죠"

하마의 궤적, 잠비아, 2015 [사진=플랫폼C]

자연은 스스로의 모습을 반복 재생산합니다. 란팅은 '어머니 지구'의 표피층도 함께 둘러 보았습니다. 현미경으로 보듯이 살펴보면 볼 수 있는 작은 패턴도 아주 높은 곳에서 바라보면 볼 수 있는 큰 패턴도 모두가 삶의 일부입니다.

아프리카 잠비아에서 하마들이 밤에 풀을 뜯으려고 루앙와강을 건너자, 강바닥에 생긴 새로운 물길이 주위로 영양분을 나르는 모습도 아름다운 생태계의 한 장면입니다.

네덜란드 출신인 랑틴은 이처럼 아름다운 자연을 해치는 기후 위기의 발단에 대한 인식은 모국인 네덜란드도 전 세계와 같다고 전했습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1세대가 경제 활력만을 고려했고, 다음 세대가 '어쩌면 우리 부모가 완벽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 결과를 고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란팅은 희망을 읽고자 했습니다. 그는 "새 세대는 분명히 기성 세대의 실수로부터 배울 것이고 그것이 영감의 원천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최근 젊은 세대를 만나면 그들의 열정을 보고 많이 배운다"고 말했습니다.

프란스 란팅 최초 내한…사진 애호가들 위한 '공개 강습'도

프란스 랑틴, 전시회장 앞 [사진=플랫폼C]

이번 전시는 프란스 란팅의 아시아 최초 대규모 개인전인 만큼 작가가 직접 전시 큐레이션에 참여해 더욱 풍성하고 완결된 구조를 갖게 되었습니다. 오리지널 프린트로 채워져 더욱 강렬한 색감이 돋보일 예정인데요.

화사한 사진의 색감에 대해 란팅은 "문학 작품 속 마술적 현실주의와 그림에 나타나는 초현실주의 화풍에 영감을 받아 빛을 활용하고 렌즈를 선택한다"며 "예술가가 예술 작품을 만들 때 현실을 바꿔서 보듯이 저도 빛을 다르게 사용했을 따름이기에 일각에서 사용하는 '조작'이라는 단어는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전시장에서는 이번 전시의 취지에 공감한 안테나 소속 음악인인 루시드폴의 앰비언트뮤직 앨범 'Being-with(비잉 위스)' 음원이 흐르는데요요. 향기까지 더해져 마치 자연 속을 걸으며 야생을 만나는 듯한 공간 연출을 한다는 계획입니다.

한국을 최초로 방문한 프란스 란팅 작가는 내일(17일)과 모레(18일)는 JCC아트센터에서 마스터 클래스와 특강 시간을 가집니다. 모두에게 열린 자리로, 사진작가와 사진 전공 학생, 사진 동호인 등 사진을 사랑하는 이들의 큰 관심이 예상됩니다.

[ 김문영 기자 kim.moonyoung@mbn.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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