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가 만난 사람]“산업 대개조 골든타임 1년 남아… 아차 하면 2, 3류로 전락”

박형준 산업1부장 2024. 5. 16.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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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경식 경영자총협회 회장
변화속도 빨라 글로벌경쟁력 사라져… 노동-규제 개혁, 세제 개편 해야
韓도 보조금 지급 검토할 때… 트럼프, 韓에 투자 불평 못할 것
中, ‘韓과 협력해야 한다’ 생각해
지난달 22일 서울 마포구 한국경영자총협회 회관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는 손경식 경총 회장. 80대 나이로 여겨지지 않을 정도로 인터뷰 내내 목소리에 힘이 넘쳤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지난달 22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한국의 경제 기적은 끝났나’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FT는 한국 경제에 대해 “과거 성장 모델의 주축이었던 저렴한 에너지 가격과 값싼 노동력 등이 흔들리고 있다”며 “저출산에 따른 인구 위기로 미래 성장에 대한 우려도 더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국의 1970∼2022년 연평균 성장률은 6.4% 수준이었다. 하지만 생산성이 낮게 유지되면 2020년대에 2.1%로 둔화하고 2030년대에는 0.6%, 2040년대에는 ―0.1%로 마이너스 성장 국면에 진입할 것이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12월 이 같은 분석을 담은 보고서를 냈다.

국내외에서 한국 경제가 정점을 찍고 내려갈 일만 남았다는 ‘피크 코리아’론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한국 경제의 역동성을 높일 돌파구는 없을까.

한국 산업계 원로 경영인인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겸 CJ그룹 회장(85)에게 길을 물었다. 그는 “산업 대개조를 해야 한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1년 정도”라고 말했다. 기업들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선 무엇보다 ‘기술’에 승부를 걸 것을 조언했다. 국회 여야와 정부의 협력도 당부했다.

손 회장과의 인터뷰는 지난달 22일 대면으로 진행됐고, 이달 중순 서면 인터뷰를 추가했다. 다음은 주요 내용.》




―한국 경제의 역동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지금이 매우 중요한 시점이다. 인공지능(AI)이라는 새로운 기술이 나오고, 반도체는 국가 대항전이 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산업이 새로운 변화를 시작하고 있기에 우리가 너무 늦으면 곤란하다. 변화 속도가 너무 빨라 아차 하면 2류, 3류로 떨어지게 된다. 그럼 우리 경제의 글로벌 경쟁력도 다 사라진다. 지금 바로 산업 대개조를 해야 한다.”

―산업 대개조를 한다고 하면 어떤 분야에 가장 힘을 쏟아야 하나.

“기술이다. 기술력이 있어야 제대로 사업을 할 수 있다. 과거에는 노동력을 무기로 글로벌 경쟁에 나섰지만 지금은 혁신 기술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기술을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에 초점을 두고 산업 구조를 바꿔야 한다.”

―산업 대개조를 하기까지 골든타임은 어느 정도 남았나.

“1년 정도라고 생각된다. 중국과의 기술 격차가 점차 줄어들고 있고, 일부 산업에선 1년 정도 한국의 기술력이 중국을 앞섰다고 분석한다. 그런데 과연 1년 후에도 ‘한국이 중국에 1년 앞섰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약 1년의 골든타임을 놓치면 중국에 추월당할 수 있고, 한국이 더 이상 따라잡기 힘들어질 수 있다.”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KEIT)이 13일 발표한 ‘2023년 산업기술 수준 조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산업기술은 중국보다 불과 0.3년 앞선 것으로 평가됐다. 10년 전만 해도 한국의 산업기술은 1년 이상 중국에 앞섰지만 최근 이 격차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혁신 기술 개발 외에 또 무엇이 중요한가.

“노동 대개혁을 해야 한다. 한국의 노동시장은 국제 기준에 비해 고용 유연성이 부족하다. 대체 근로 허용, 파견 대상 업무 확대, 파업 시 사업장 점거 금지, 성과를 반영하는 임금체계 등이 이뤄져야 한다. 국제적으로 높은 법인세와 상속세를 과감하게 낮추는 것도 우리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규제 개혁도 지속되어야 한다. 정부가 여러 규제 개혁을 위해 노력해 왔지만, 좀 더 획기적으로 철폐돼 외국 기업들도 ‘한국에서 사업 할 만하다’고 느끼게끔 만들어야 한다.”

―정부의 산업 지원이 해외 경쟁국보다 약하다는 평가도 있다.

“최근 미국, 일본 정부의 반도체 보조금이 많이 조명됐다. 해외의 경우 보조금은 반도체 외 분야에도 지원된다. 제가 아는 한국의 화장품 기업이 미국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데, 코로나 시절 미국 주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10억 원 받았다. 한국 정부도 폭넓은 부문에서 보조금 지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국내에서 특히 반도체에 보조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정부는 공식적으로 보조금 지급 방침을 밝힌 적은 없다. 다만 반도체 기술을 국가전략기술로 지정하고 관련 시설 투자나 연구개발(R&D) 비용에 세액공제 혜택을 주고 있다.

―보조금은 외국 기업 투자 유치와도 연결될 것 같다.

“맞다. 그리고 외국 투자 유치를 위해 또 하나 개선돼야 할 게 있다. 최근 ‘외국 기업인이 중대재해처벌법 때문에 한국 지사장으로 오고싶어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자칫 잘못하면 자신이 전과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이 좀 더 늦춰져야 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은 2022년 1월부터 50인 이상 기업을 대상으로 우선 시행됐고, 올해 1월부터 50인 미만 기업까지 전면 시행됐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영세 중소기업·소상공인들이 준수하기 어려운 지나치게 광범위하고 불명확한 의무를 부과한다”며 지난달 1일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여소야대’인 이번 총선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이나.

“여야 모두 (한국 경제 성장을 위한) 변화 필요성에 공감하리라고 믿는다. 큰 수준의 산업 개편이 필요한데 여기에는 정부 예산도 필요하고, 세제 정책도 뒷받침돼야 한다. 국회와 행정부가 서로 잘 손발을 맞춰 나가야 한다. 궁극적인 목표가 비슷하면 협치도 할 수 있다고 본다.”

―특별히 정치권에 주문하고 싶은 게 있나.

“지금 노동 관련 이슈가 많은데, 기업이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서고 또 외국에서도 한국으로 투자가 밀려오면 노동 이슈는 자연히 줄어든다. 정치권이 그렇게 투자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 줬으면 좋겠다. 기업 활력을 높이는 법안은 신속하게 처리하고, 활력을 떨어뜨리는 법안은 늦추거나 유예하길 희망한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산업계에서 가장 걱정하는 것은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제2조, 제3조 개정안) 재발의다. 근로자를 어떻게 규정하느냐의 문제인데 원청과 하청 관계에서 원청의 책임을 많이 묻는 내용이 담겨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도 좀 보류해 줬으면 좋겠다. 사고가 나면 중소기업은 당장 사장이 붙잡혀 간다. 50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사장 없으면 다 무너진다.”

노란봉투법은 2023년 11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으나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최종 부결됐다. 하지만 야당은 22대 국회에서 노란봉투법을 다시 발의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올해 경제 상황을 어떻게 예측하나.

“올해 한국 경제는 지난해(1.4%)보다 높은 2% 중후반 성장률을 기록하고, 물가상승률은 2%대로 떨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덕분에 국민과 기업의 어려움이 다소 완화될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글로벌 경기 둔화, 고금리 지속 등 불안요인들이 올해도 계속될 것으로 보여 경제 회복을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올해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는 ‘트럼프 리스크’에 대한 우려도 높다.

“트럼프 후보가 과거 대통령 시절 한국에 ‘왜 투자도 많이 안 하면서 혜택만 보느냐’고 불평했다. 하지만 트럼프 후보가 올해 말 당선된다고 해도 더 이상 그 소리를 하지 못할 것이다. 지금은 한국 기업이 미국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누군가가 투자하라고 강제해서 그런 게 아니다. 미국이 사업 하기에 좋은 나라이기 때문에 한국 기업이 스스로 미국에 가 투자를 하고 있다. 트럼프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한국과 미국이 잘 지낼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2022년 대만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8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을 앞질렀다.

“대만 정부가 일하는 게 굉장히 역동적인 것 같다. 반도체 기업에 파격적으로 지원한다. 그렇게 해도 대만 국민들은 ‘정부가 왜 특정 대기업만 지원하느냐’와 같은 비판을 안 한다. 한국 국민들이 정부의 기업 지원을 비판하면 정부가 일을 할 수가 없다. 한국 국민들도 정책의 온기가 기업을 넘어 어디까지 확산되는지, 그 이면을 봐 줬으면 좋겠다.”

―미중 갈등 이후 한국 기업이 중국 관련 사업을 접고 있다.

“중국은 바로 옆에 있는 이웃 나라이고, 또 산업 구조상 협력할 수밖에 없다. 과거에는 약 25% 수출이 중국으로 갔고, 작년에는 19.7%로 줄었다. 앞으로 더 줄어든다 해도 중국은 여전히 큰 나라여서 헤어질 수 없다. 중국 역시 ‘한국과 협력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올해 3월 경총이 중국의 경제단체와 함께 베이징에서 포럼을 했다. 인리(尹力) 중국공산당 베이징시 위원회 서기 등 고위 인사들이 대거 나와 우리를 환대했다. 중국 참석자들은 ‘요즘 양국 관계가 소원해지고 있는 것 아닌가’ 걱정하고 있었다. 한중 협력에 대한 공감대는 분명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일 기업인들은 정치에 휘둘리지 않는 협력 관계 구축을 외치고 있다.

“매년 한일 최대 민간교류 행사인 ‘한일축제한마당’ 한국 측 실행위원장을 맡아 오면서 한일 양국의 관계 개선에 문화의 영향력이 대단히 크다는 점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한국 음식과 음악, 영화 등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고 일본 진출도 확대해야 한다. 그럼 자연스럽게 일본 국민들의 한국에 대한 호감과 이해도가 높아져 미래지향적인 관계로 나아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손경식 회장(85)

―1939년 서울 출생

―1961년 서울대 법학과 졸업

―1968년 삼성전자공업(현 삼성전자) 입사

―1973년 삼성화재 이사

―1993년 CJ 대표이사 부회장

―1995년∼현재 CJ그룹 대표이사 회장

―2005∼2013년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2018년∼현재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박형준 산업1부장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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