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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 기자 2024. 5. 16.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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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은 기계가 사람의 마음을 대신할 수 있다고 말하는 기술이다.

사람이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사람이 굳이 움직이지 않아도, 사람이 굳이 기억을 쥐어짜지 않아도, 사람이 수행해야 할 작업의 결과물을 대신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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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재에서]

2023년 1월18일치 <타임>에 실린 오픈에이아이(AI) 생성 이미지. 데이터 라벨링 노동을 하다 혐오 콘텐츠에 노출된 케냐 노동자들을 이미지화했다. <타임>은 오픈AI의 경쟁력을 가능하게 한 노동자들을 보여주고자 이 이미지를 사용했다고 밝혔다.

인공지능은 기계가 사람의 마음을 대신할 수 있다고 말하는 기술이다. 특정한 과업과 마주한 사람이 뇌에 저장된 여러 기억을 종합해 과업에 적합하다 생각하는 결과물을 내놓는 것처럼, 특정한 과업과 마주한 기계는 빅데이터를 통해 평소 학습(머신러닝)해둔 정보를 종합해 많은 사람이 함께 적합하다 생각한 결과물을 생성한다. 그래서 인공지능은 주로 자동화라는 단어와 묶인다. 사람이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사람이 굳이 움직이지 않아도, 사람이 굳이 기억을 쥐어짜지 않아도, 사람이 수행해야 할 작업의 결과물을 대신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클릭 한 번으로 모든 것을 해낼 수 있는 이런 기술적 가능함 자체를 ‘진보’라 여기며 감탄한다.

그런데 이런 통념에 반론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우선 인공지능을 자동화라는 단어와 묶기 어려운 근거가 하나둘씩 나오고 있다. 자동화로 알려진 작업 뒤에 사람의 그림자 노동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아마존의 세계 최초 무인 자동화 매장인 ‘아마존 고’의 인공지능 기반 무인 자동결제 시스템인 ‘저스트 워크 아웃’ 기술 뒤에 1천여 명의 인도 노동자가 ‘데이터 라벨링’ 노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이번호 ‘AI 인문학’) 네이버의 메신저 앱 라인(LINE) 쇼핑 사이트에도 실시간 상품 소개 페이지를 생성하고 오류를 바로잡는 ‘데이터 라벨링 하청 기업’ 크라우드웍스의 노동자들이 존재한다. 크라우드웍스의 ‘데이터 작업자 풀’은 60만 명에 이른다.(이번호 ‘표지이야기’) 건당 단가 20원에서 시작해 ‘디지털판 인형 눈 붙이기’로 불리는 노동 착취가 횡행하지만, 이들은 노동자가 아니라 프리랜서다. 인공지능 시스템으로 “소수의 기업가와 투자자만 부유”해지는 반면, 노동자들은 “공장주와 부유한 지배층에 맞서 일터에서, 이어서 정치 영역에서 길항 권력”이 되어 “더 나은 노동 조건과 더 높은 임금을 협상”(<권력과 진보>)할 수 있는 자격조차 얻지 못하고 형해화한 채 착취당하고 있다.

‘데이터 라벨링 하청 기업’ 크라우드웍스 소개 화면

이뿐만이 아니다. 인공지능은 사람 이상으로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다. 챗지피티(GPT)와의 대화는 구글 검색보다 10배의 전력을 소비한다. 대화에 쓰이는 텍스트 생성형보다 이미지 생성형 인공지능은 더 많은 에너지를 쓴다. 이미지 하나를 생성하기 위해 스마트폰 한 대를 충전할 수 있는 양의 전력이 필요하다. 전기뿐만 아니다. 챗지피티와 한 번 대화하는 데 물 500㎖가 소비되고, 챗지피티의 거대언어모델을 학습시키는 데는 70만ℓ의 물이 쓰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70만ℓ는 핵발전소 냉각탑을 채우는 데 필요한 물의 양이다. 이런 모든 소비가 사람의 삶을 다시 옥죌 것이다. 그리고 이 압박은 ‘노동자의 자격조차 얻지 못하고 형해화해 있는’ 사람들을 향할 것이다.

우리가 인공지능의 발전 속도에 발맞춰 ‘진보’하고 있다고 감탄하기 전에 먼저 이런 기술적 가능함이 정말 진보가 맞는지 되물어야 하는 까닭이다. 특히 이 기술적 가능함이 대체 무엇을 위한 가능함인지, 나아가 누구를 위한 가능함인지를 정확하게 물어야 한다. 이 누락된 물음을 위해 잠시 멈춰서서 생각해보자는 것이 이번호 <한겨레21>이 던지고 싶은 이야기다. 목적을 알 수 없고 모두가 이득을 공유할 수 없는 발전은 진보가 아니다.

이재훈 편집장 nang@hani.co.kr

*‘만리재에서’는 편집장이 쓰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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