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농협금융, 중앙회 그늘에서 벗어나라

김유진 기자 2024. 5. 16.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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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감독 당국의 칼날이 농협금융지주를 향했다. 2012년 농협의 신경분리(신용과 경제사업의 분리) 이후 농협금융지주가 국내에서 다섯 번째 손에 꼽히는 금융그룹으로 성장했지만, 여전히 농협중앙회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며 각종 금융사고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이 농협금융을 겨냥한 시발점은 NH투자증권의 최고경영자(CEO) 선임 문제다. 농협중앙회와 농협금융은 계열 증권사의 CEO를 선임하는 문제를 두고 이견을 보였다. 규정상으로는 농협금융의 임원후보추천위원회(임추위)가 자회사 CEO 선임권을 가지고 있다. 임추위가 여러 후보의 역량을 평가해 가장 적합한 인물을 CEO로 선임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사실상 농협중앙회가 농협금융 자회사 CEO의 인사권을 가지고 있다. 금융지주 회장부터 사외이사, 자회사 대표이사까지 선임하는 임추위에는 비상임이사가 포함된다. 그런데 이 비상임이사 자리는 대대로 농협중앙회의 뜻을 대변하는 단위농협 조합장 출신이 임명됐다. 비상임이사를 통해 농협금융 인사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다.

농협중앙회의 입김이 있어도 임추위가 제대로 돌아간다면 객관적이고 투명한 방식으로 임원을 뽑을 수 있다. 하지만 금감원이 2022년 농협금융을 검사해 보니 2018년 12월부터 2022년 3월까지 열린 임추위 94회 중 절반에 가까운 43회가 회의 개최일에 임박해서 사외이사진에 안건을 보낸 것으로 나타났다. 안건을 충분히 검토할 시간을 보장받지 못한 사외이사는 결국 회사의 의견에 따르는 ‘거수기’ 역할에 그칠 수밖에 없다.

농협금융지주 출신 고위급 인사는 “지주 회장이 계열사 대표는커녕 같이 일을 해나갈 지주 임원급 인사도 인사 발표 직전 아는 식이다”라며 “다른 금융지주는 전문성을 따져 임원 자리에 적합한 인물을 선임하지만, 농협금융지주는 승진할 인물을 먼저 고르고 나중에 적당한 임원 자리에 배치하고 있다”라고 귀띔했다.

농협금융의 지분 100%를 가지고 있는 농협중앙회가 금융지주와 계열사 CEO를 선임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건 당연하다. 농협법에서도 ‘중앙회는 중앙회의 자회사가 그 업무수행 시 중앙회의 회원 및 회원 조합원의 이익에 기여할 수 있도록 정관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지도·감독해야 한다. 해당 자회사에 대해 경영개선 등 필요한 조치를 요구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농협금융이 금융사고 예방을 위한 내부통제가 중요한 금융회사라는 점이다. 금융 전문성을 가진 CEO도 복잡한 금융사업 및 상품 구조 탓에 내부통제를 놓치는 일이 빈번히 발생한다. 하물며 전문성이 없는 CEO라면 내부통제를 놓칠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 농협금융의 경우 은행이나 보험에 잠깐 파견을 갔다 온 농협중앙회 인사가 전문성 있는 CEO로 둔갑해 지주와 계열사로 내려오는 경우가 빈번하다. 농협의 특수성을 반영한 결정이 금융사고의 가능성을 키울 수 있는 것이다.

감독 당국이 농협금융의 지배구조를 문제 삼는 것 역시 이러한 이유에서다. 이복현 금감원장 역시 지난 3월 농협의 지배구조를 가리켜 “자칫 잘못하면 금산분리 원칙과 내부통제, 규율통제 같은 것이 흔들릴 여지가 있어 챙겨봐야 한다”라며 “합리적인 지배구조와 상식적인 수준의 조직문화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라고 했다.

금감원은 오는 20일 농협금융에 대한 정기검사에 착수한다. 이를 두고 감독 당국이 농협의 특수성을 놓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물론 농협의 특수성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고객들은 농협의 특수성보다 ‘내 돈이 안전하게 보관될 것’이라는 금융회사로서의 농협금융을 믿고 돈을 맡긴다는 점을 분명 기억해야 한다. 농협중앙회가 철저하고 투명한 내부통제를 통해 법적으로 보장된 권한을 행사한다면 농협금융 성장의 과실은 농협과 농업인에게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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