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의 역사’부터 ‘고향의 추억’까지 한자리 모였다!
[서울&]
신석기시대 시작된 수수·조·벼 농사나
농사로봇 함께할 미래농업을 생각해도
농업 하면 떠오르는 으뜸 단어 옛 고향
‘시골 축소 모형’ 앞 그 모습 다시 떠올라
같은 신화를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 잠겨 있을 고향의 원형을 농업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선사시대부터 미래까지 이어지는 농업의 역사, 농업의 이야기를 둘러보던 발길은 고향의 추억을 느낄 수 있는 2층 전시관에 닿는다. “할아버지 할머니께 이거 보여드리면 좋아하실 텐데, 아빠 어릴 때 이렇게 살았거든.” 아이들과 함께 온 아빠의 이 한마디에 박물관이 따듯해진다.
종자 이야기에 꽂힌 생각 ‘농가월령가’에 빠지다
‘농사는 천하의 대본이라는 말은 결단코 묵은 문자가 아닙니다. 이것은 억만년을 가고 또 가도 변할 수 없는 대진리입니다.// 상업 공업의 원료까지 하나도 농업 생산에 기다리지 않는 것이 없느니만큼 농민은 세상 인류의 생명창고를 그 손에 잡고 있습니다.// 이 변치 못할 생명창고의 열쇠는 의연히 지구상 어느 나라의 농민이 잡고 있을 것입니다.’ -윤봉길 의사의 <농민독본> 중에서
농업박물관을 찾은 사람들을 맞이하는 윤봉길 의사의 <농민독본> 글귀를 읽은 마음은 박물관 지하 1층 전시관인 농업홍보관의 종자 이야기에 꽂혔다. 미래농업을 알리는 전시관에서 20~30년 뒤 농업이 우리 삶에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엿볼 수 있었다. 종자 자원과 첨단기술을 활용해서 농장과 농사로봇을 제어하는 미래 농장 컨트롤타워를 상징적으로 꾸몄다. 미래 인류의 식생활을 풍요롭게 해줄 종자 자원의 잠재적 가치를 보여주려 했다는 안내 문구도 있었다.
종자와 관련된 전시품은 1층 전시관인 농업역사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듬해 쓸 씨앗을 보관했다던 뒤웅박을 찾았다. 전시관에 설치된 ‘농가월령가 터치스크린’을 보다보면 ‘농가월령가’ 9월령에 ‘이삭으로 먼저 잘라 훗날 종자로 따로 두소’라는 말이 나오고 11월령에도 ‘얼마는 제사 때 쓰고 얼마는 씨앗으로 하며’라는 구절이 나온다. 농사의 처음이자 끝이고 다시 처음이 되는 종자, 이듬해 지을 농사의 밑천인 씨앗이 이제는 종자 주권, 식량 주권의 시대를 사는 것이다.
종자 이야기를 찾다가 ‘농가월령가’에 마음을 빼앗겼다. 철마다, 달마다, 절기마다 농사짓는 방법과 세시풍속, 미풍양속을 정리한 조선시대 가사문학작품인 ‘농가월령가’를 볼 수 있는 ‘농가월령가 터치스크린’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농사가 천하의 근본이었던 시절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일 년 열두 달, 24절기를 맞이하고 보내며 옛사람들이 어떤 농사를 어떻게 짓고 집안은 어떻게 돌보고 마을은 어떻게 꾸려갔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힘들었지만 나누며 살았던 시절을 떠올렸다. 1970년대 시골 생활을 추억해보면 ‘농가월령가’는 생활이었다.
농업의 역사를 배우고 역사가 된 유물을 보다
박물관 앞 야외에 놓인 연자방아와 나락뒤주가 눈길을 끈다. ‘소나 말을 이용하여 곡식의 껍질을 벗기거나 가루를 내는 방아’라는 설명과 전시물이 연자방아를 처음 보는 사람들의 이해를 돕는다. 나락뒤주는 탈곡한 벼를 저장하던 것이다. 경남 진주의 한 농가에서 사용하던 것이라고 한다. 1층 입구에는 소의 먹이를 담던 구유가 있다. 강원도 강릉의 농가에서 사용하던 것으로 소나무를 깎아 만들었단다.
1층 전시관인 농업역사관으로 들어섰다. 선사시대부터 근현대의 농사 환경까지 농업의 역사를 훑어볼 수 있었다.
신석기시대에 조, 수수 등 잡곡을 재배했고 벼농사도 지었다고 설명한다. 청동기시대로 들어서면서 땅을 깊이 파서 짓는 ‘갈이농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벼와 오곡을 재배했다는 글귀도 보인다. 농사기구가 철기로 바뀌었고, 의림지·수산제·벽골제 등 나라에서 저수지를 만들어 농사에 필요한 물을 공급하기도 했다. 이때부터 대량 생산 농경 시대가 시작됐다고 한다. 벽골제 수문의 제작과정을 보여주는 축소 모형 전시물이 흥미롭다. 후삼국과 고려시대를 거치면서 계단식 논이 등장했단다. 과학 영농과 농사 전문 책자로 권농정책을 폈던 조선시대 농업 가운데 겨울에 채소를 재배했다던 온실을 재현한 전시품이 눈길을 끈다. 조선시대를 지나 지금에 이르는 농업의 역사가 농업역사관 관람 동선을 따라 이어진다.
곡물이나 감자 등을 나르던 도구인 주루막, 두엄·무·호박·배추 등을 실어 나르던 옹구, 씨를 담거나 수확한 작물을 옮길 때 쓰던 다래끼, 이듬해 쓸 씨앗을 갈무리하거나 작은 물품을 보관하던 뒤웅박, 강원도 산간지역에서 김치나 감자 등을 담아두던 나무독, 볏단이나 보릿단을 내리쳐 곡식의 낱알을 떨어내던 개상, 제주도 절구인 남방애, 모시풀을 쪄서 껍질을 벗긴 뒤 서로 엉키지 않도록 빗질하던 모시빗 등은 듣도 보도 못한 농사 도구들이다.
누군가의 땀이 배고 손때 묻은 유물에서는 온기가 느껴진다. 지역별, 용도별로 전시한 각종 호미를 한눈에 보고 2층 농업생활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사계절 논밭의 소리 들리는 듯
소 밭 가는 소리와 무논에 개구리 소리 울리던 봄, 논밭 길 미루나무 땡볕 동네 아이들 멱 감던 냇물 위로 쓰르라미 소리 짱짱하게 들리던 여름, 황금들녘으로 불어가는 바람에 벼 포기 일렁이며 서걱거리는 소리를 듣던 가을, 겨울 논에 울려퍼지던 아이들 노는 소리. 농업생활관에 전시된 축소모형 전시물을 보면 사계절 논밭의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쟁기로 밭을 갈고 이랑을 만드는 풍경, 여름에 캘 감자를 심는 봄 밭 풍경. 여름 내내 잡초와 씨름하던 밭 옆에서는 옥수수가 익어갔다. 농작물 여물던 가을 밭은 보기만 해도 좋았다. 늦가을 양지바른 밭에는 보리나 밀을 파종하기도 했다. 그런 보리나 밀이 겨울 밭을 푸르게 물들였다.
쟁기로 흙을 갈아엎는 봄갈이는 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못자리할 논에는 소로 논을 갈고 물을 대서 써레질한 뒤 볍씨를 뿌려 못자리판을 만들었다. 모가 뿌리를 내린 논에서 논매기했다. 논매기가 끝나면 마을마다 일꾼들이 모여 잔치를 벌였다. 이를 ‘호미씻이’라고 했다. 누렇게 익은 가을 논에 바람이 불면 황금 물결이 일렁였다. 벼를 베고 탈곡하는 풍경은 가을을 완성했다. 다 내어주고 텅 빈 겨울 논은 아이들 차지였다. 물 고인 논에 얼음이 얼면 동네 아이들은 썰매를 탔다. 손, 발, 귓불이 동상에 걸려도 아이들은 겨우내 썰매를 타고 연을 날렸다.
논일 밭일 사철 시골 풍경을 축소 모형으로 만든 전시품에서 눈길을 쉽게 거두지 못했던 건 그렇게 살았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음속 깊은 곳에 살아 있는 추억이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것이다.
감나무에 감이 열리고 외양간엔 누렁소, 방앗간에 디딜방아, 다듬잇돌 신줏단지 마루 아래 누렁이, 대처에 나간 자식 무탈하고 잘되라고 치성을 드리던 장독대, 가마솥 걸고 군불을 때던 부뚜막 부엌, 엿장수 가위 소리와 가슴 철렁 내려앉던 뻥튀기 소리, 대장간과 생선전을 지나, 콧바람 쐬러 장 구경 나온 사람들이 모여 막걸릿잔을 나누던 주막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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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 정보>
관람시간: 매주 화~일요일. 하절기(3~10월) 오전 9시30분~오후 6시(5시까지 입장), 동절기(11~2월) 오전 9시30분~오후 5시30분(5시까지 입장) 휴관일: 매주 월요일. 1월1일. 설날·추석 연휴. 근로자의 날. 법정 공휴일. 관람요금: 없음 문의전화: 02-2080-5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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