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8.한국항공대 항공우주박물관
‘해피 플라이트’, ‘크래쉬 포인트’, ‘아멜리에: 하늘을 사랑한 여인’…. 한국항공대역 계단에 영화 제목이 새겨져 있다. 한국항공대 교정에 대한항공 여객기가 서 있다. 엄청나게 큰 비행기 바퀴 옆에 서 보고 길게 뻗은 날개를 올려다본다.
고양특례시 덕양구에 자리한 한국항공대 항공우주박물관(관장 황호원)은 최첨단 분야인 항공우주 과학의 실상을 눈으로 보고 직접 체험할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다. 6·25전쟁 중인 1952년 개교한 한국항공대는 항공우주를 전공하는 대학생과 일반인에게 항공우주 과학과 기술을 친근하게 접할 수 있도록 2004년 8월 우주항공박물관을 개관한다.
첨단 정보기술과 멀티미디어 시설을 적극 활용해 체험학습 효과를 높이는 새로운 체계를 구현한 것이 항공우주박물관의 자랑이다. “우리 박물관은 국내 항공우주 전문 인력을 양성해 온 한국항공대의 교수와 대학원생, 직원들이 참여해 직접 멀티미디어 영상물을 만들고, 국내 유수의 벤처기업과 협동으로 가상 체험시설을 구축하고 콘텐츠를 개발했습니다. 교내 대학생 동아리가 항공기 전시 모델의 제작에 참여했지요.” 손봉희 학예사는 전시물을 기증해 준 국내외 관련 기업과 기증자들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 한눈에 살펴보는 항공우주발달사
박물관에 들어서면 비행기 동체를 연상시키는 아치형 구조물을 만난다. 연표를 중심으로 시대별 특징을 소개하고 관련 항공기의 이미지를 함께 배치해 항공우주의 발달사를 다루고 있다. 설명을 듣고 대형 TV로 18분짜리 영상물을 감상하면 항공우주의 역사를 이해하게 된다. 실물 크기의 우주복을 살펴보고 보잉 707기를 개조해 1981년까지 운항했던 우리나라 대통령 전용기의 VIP시트에서 기념촬영을 한다. 1991년부터 2004년까지 진행됐던 한국형 전투기 사업(KFP)의 일환으로 국산화된 F-16기의 몸체를 보여준다. 앞전 날개 플랩과 꼬리날개 수평안전판 앞전, 플랩 작동용 기어박스, 후방 동체의 엔진 장착 부분을 지지하는 벌크 헤드 프레임의 실물이다. 무게를 줄이기 위한 장치가 곳곳에서 발견된다. 하늘을 날려면 튼튼하되 가벼워야 한다.
세계의 항공 우표가 전시돼 있다. 해체되기 전의 소련과 북한 등 공산권 국가와 유럽을 포함해 530여종의 희귀하고 다양한 항공 우표다. 세계지도 위에 국가별로 우표를 구분해 전시하고 있다.
손 학예사가 하늘을 나는 비행의 원리를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유선형의 날개 단면을 잘 보시면 양력을 최대화하고 항력을 최소화하도록 설계됐지요.” 양력을 발생하는 에어포일(airfoil)의 원리를 친절하게 설명해 주지만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에어포일’이라는 용어를 들은 것으로 만족하며 비행기 각 부분의 명칭을 읽어본다.
시대를 대표하는 항공기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 정교하게 제작된 80여점의 플라스틱 모델이 눈길을 끈다. 1m 남짓한 크기의 모델마다 상세한 제원과 특징을 알려주는 설명이 부착돼 있다. 최초의 동력 비행기는 라이트 형제가 제작한 플라이어(Flyer)기다. 일본의 YS-11기, 최신의 민간 여객기종인 보잉 777-200ER, 에어버스사의 A300-600 슈퍼트랜스포터, 라팔 등 다양한 모델을 만난다. 최신 기종들은 상부와 측면, 배면을 살펴볼 수 있도록 입체적으로 전시돼 있다. “비행기 날개 윗면과 아랫면의 압력 분포를 액주 압력계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양력시험 풍동입니다. 이것은 비행기가 이륙하고 착륙할 때 바퀴의 작동을 볼 수 있는 랜딩기어장치입니다.”
멀티미디어 영상실은 소규모 극장으로 24명을 수용할 수 있다. 여객기의 내부 환경이 연상되도록 구성한 영상실에서 교수진이 제작한 콘텐츠의 주제는 항공우주 과학기술과 로켓 및 우주과학기술, 항공우주발달사다. 주제별로 15분에서 20분이 상영되는데 편한 시간에 맞춰 관람할 수 있다.
항공기 엔진과 프로펠러, 주요 실물 계기와 부품을 볼 수 있는 항공기의 구조 코너가 재미있다. 1950년 6월 발발한 6·25전쟁 당시 명성을 날렸던 F-86F 세이버 전투기에 사용한 J47-GE-27 터보제트 엔진을 볼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가장 뛰어난 기종으로 알려진 머스탱에 장착됐던 GE사의 패커드 V-1650엔진도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민항공기로 교통부에 등록됐던 L-16 비행기의 엔진도 만날 수 있다. 다양한 프로펠러와 비행기의 방향지시계, 선회경사계, 자세계, 자이로스코프, 고도계, 속도계, 승강계 같은 실물 계기들을 살펴본다.
2층 전시장의 주제는 우주 과학 기술이다. 미국과 러시아, 유럽 등 우주 선진국의 로켓 역사를 기반으로 로켓에 대한 구조와 원리를 소개한다. 시대의 변화에 따른 하이브리드(hybrid) 로켓도 만날 수 있다. 중국은 우주 과학 산업에도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최초의 위성을 발사한 창정1호와 2003년 유인 우주선 선저우 5호 발사에 사용됐던 창정-2F 등 중국 우주산업의 현재를 알려주는 11개의 로켓 모형은 중국의 위용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우주 기술은 어느 수준에 도달했을까. 우리나라 최초의 실용위성 아리랑 1호의 모형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중앙 통로에 관람객의 눈을 즐겁게 하는 전시물이 있다. 우주에서 먹을 수 있는 각종 우주식량과 우주복, 각종 우주선을 기념하는 패치들이 눈길을 끈다. 자신의 이름과 사진, 신상정보를 입력하면 즉석에서 우주인증을 발급받을 수 있는 코너도 있다. 미국 NBC TV에서 방영됐던 ‘스타트렉’의 비행체 모형에 발광다이오드(LED)를 설치해 실감 나는 모습을 보여준다.
■ 대한항공 A300-600 항공기 속으로 여행
옥외 전시장은 더욱 흥미롭다. “우리나라 최초로 교통부에 등록된 민간항공기는 L-16입니다. T-37 제트기는 공군에서 훈련기로 사용했던 기종이고 FA-200은 한국항공대에서 교육 훈련용으로 사용했던 것입니다.” 박물관 관계자가 두 대의 소형 비행기를 가리킨다. “이 ‘X-4기’와 ‘X-5기’는 우리 한국항공대 항공기제작반 학생들이 직접 설계 제작해 시험비행까지 완료한 것입니다.”
박물관에 들어설 때부터 궁금했던 대한항공 여객기 문이 드디어 열린다. 비행기 안이 널찍하다. “이 에어버스 A300-600R 기종은 대한항공에서 총 29대 중 15번째로 도입한 항공기입니다. 22년간 대한항공에서 운항한 후 2022년 6월16일 한국항공대 개교 70주년을 기념해 기증한 것이지요.” A300은 1990년대 대한항공에서 동남아 지역 중장거리 노선을 담당하던 기종이다. “A300 항공기를 제작한 에어버스 항공사는 대한항공과 깊은 인연이 있습니다. 1970년대 초 에어버스사는 신생 항공기 제작사로 항공기의 인지도와 신뢰도가 낮아 유럽 외에는 판매 실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이때 대한항공에서 A300B4 항공기 4대를 도입한 후 성공적으로 운항해 에어버스가 민항기 제작사로 성장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당시 조중훈 대한항공 회장은 에어버스사 상장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프랑스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기도 했습니다.”
A300 항공기를 한국항공대에 설치하기까지 매우 어려운 과정이 있었다. 대형 항공기를 이전 설치하기 위해 항공기 동체를 분해해 이동하고 다시 재조립하는 과정은 약 1년2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이런 과정을 A300 항공기 안에서 영상물로 시청할 수 있다. A300 항공기 내부에서 진행되는 체험활동은 어린이들에게 특히 인기가 높다. 박물관에서 진행하는 체험 프로그램은 사전 예약을 통해 가능하다.
고양시에는 첨단과학과 관련된 특별한 박물관이 또 있다. 고양로봇박물관과 포마자동차디자인미술관은 또 다른 정보와 즐거움을 제공하는 곳이다. 고양아람미술관과 고양어린이박물관, 세계적인 수준의 중남미박물관도 멀지 않은 곳에 있으니 함께 둘러보면 좋겠다. 김준영(다사리행복평생교육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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