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명 과학적 근거’ 어디에…“결과 왜곡” “증거 부족” 반발

강윤서 기자 2024. 5. 16.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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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인용한 의사수 추계 보고서 연구자들, ‘2000명’ 일제히 반박
‘의사 1만 명 부족’ ‘5년간 2000명’ 지적…“보고서 일부만 인용”
의사 측 “47건 중 2000명 언급 문서는 1개…배정위 명단 공개해야”

(시사저널=강윤서 기자)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2월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2024년 제1차 보건 의료정책심의위원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 여론'을 앞세워 탄력 받아온 의대 증원 정책이 암초를 만났다. 법원에 제출된 정부의 근거 자료가  공개된 직후 의료계의 반박이 쏟아지면서다. 정부가 정책 추진의 지렛대로 활용한 '의사 수 부족 추계 보고서'의 연구자들마저 결과 왜곡을 지적하면서 '2000명' 숫자는 또다시 심판대에 올랐다. 

16일 정부와 의료계 입장을 종합하면, 양측은 '의대 증원 규모의 근거'와 '정책 추진의 절차적 정당성'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의대 증원 집행정지의 항고심을 맡은 서울고등법원은 두 쟁점을 들여다보기 위해 정부에 2000명 증원의 과학적 근거 자료를 제출하라고 요청했고, 정부는 관련 자료 47건과 별도 참고자료 2건을 냈다. 여기에 전국 40개 의대에 증원분을 배분한 의대정원배정위원회(배정위)의 회의록과 실명 명단은 빠졌다.

정부가 2000명 산출 근거로 제출한 자료는 이미 갑론을박이 일던 보고서였다. 정부는 미래 의사인력 추계를 연구한 홍윤철 서울대의대 교수, 신영석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 명예위원, 권정현 한국개발연구원(KDI) 박사의 보고서 3개를 제시했다. 

보건복지부가 3개 보고서를 검토해 내린 결론은 '현재 의사 수 5000명 부족, 현재 수준 유지 시 2035년엔 1만 명 부족'이다. 이에 따라 2035년 1만5000명이 부족, 그 중 1만 명을 증원을 통해 해결하겠다는 방침이다.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은 "의대 교육과정 6년을 감안할 때 2025년 2000명 증원이 필요하단 계산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연구자들은 본인의 보고서가 극히 일부만 인용됐다고 꼬집었다. 미래 의사인력 추계는 시대별 의료환경 변화에 따라 바뀌기 때문에 각 시나리오의 현실성과 합리성을 검증한 뒤 채택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홍윤철 교수는 의사 측이 법원에 낸 참고서면에서 "정부는 제 보고서에서 '65세~80세 사이 의사의 생산성이 65세 미만의 의사보다 50% 감소할 때 부족한 의사 수'를 가정한 시나리오에서 추계 수를 사용했다"며 "그러나 (보고서엔) 2000명이란 숫자를 언급한 적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500~1000명이 가장 합리적인 증원 규모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의사 수가 1만 명 부족하단 정부의 해석도 반박했다. 홍 교수는 "추계 시나리오에 따라 65~80세 의사의 하루 생산성을 75%로 둘 경우 부족한 의사 수는 7000명, 의료전달체계를 개선해 북유럽과 같이 주치의 제도를 시행할 경우에는 의사는 2600~3300명이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신영석 명예위원도 지난 3월 국회토론회에서 정부의 의대 증원 속도가 너무 빠르다고 지적했다. 그는 "2035년만 보고 2000명 증원에 동의하냐고 묻는다면 동의했겠지만, 5년간 1만 명 늘리는 방침엔 속도 조절을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했다. 이어 "2000명씩 1만 명이 아니라 (10년간) 1000명씩 1만 명으로 늘리는 게 용이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권정현 KDI 박사 역시 본인의 연구가 호도되는 방식으로 인용됐다고 지적했다. 그가 제안한 시나리오는 2024년부터 1000명씩 증원해 총 4000명을 증원하는 안과 매년 5% 증원해 2030년까지 4500명 정원 유지하는 안, 7%, 10% 증원 등이다. 2000명씩 5년간 증원하는 안은 없었다. 권 박사는 "의대 증원을 하다가 의료 수요 변곡점을 고려해 수요 감소 시점에는 정원을 다시 줄이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5월14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행정대학원 한국정책지식센터에서 '의사 정원 어떻게 해야 하나?'란 주제로 열린 정책 & 지식 포럼에서 홍윤철 서울대 의대 교수가 발제하고 있다. ⓒ연합뉴스

'2000명' 언급 자료 1개…배정위 명단은 '익명'

보고서 해석을 둘러싼 잡음 외 제출 자료 자체에 대한 논란도 이어졌다. 정부가 제출한 49건의 자료는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 회의록, 대한의사협회(의협)과의 의료현안협의체 관련 보도자료, 교육부의 배정위 회의 결과 자료 등이다. 또 '3000명 증원'을 제안한 대한종합병원협의회의 의견 자료와 의사 평균 연봉이 3억100만원에 달한다는 내용의 '의사 인력 임금 추이' 통계도 있었다. 의사 측은 "(전체 자료 중) 2000명이 구체적으로 언급된 문서는 증원분이 발표된 당일인 2월6일 진행된 보정심 회의록이 유일하다"고 비난했다.

의사들이 촉각을 세우고 기다린 보정심 회의록엔 정부 증원안에 대해 참여자 23명 중 19명이 찬성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반대자 4명은 증원 자체는 동의하나 2000명 규모를 비판했다. 회의록에선 의대 증원 규모를 두고 의사들은 많아야 700명, 시민단체는 3000명 등 여러 입장이 오간 것으로 확인됐다. 보정심은 위원장인 조규홍 복지부 장관을 포함해 공급자(의사단체 등)와 수요자(환자·소비자단체) 대표, 정부 측 보건의료 전문가 등 전체 25명 참여위원으로 구성됐다. 당시 의협과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는 회의에 불참했다. 

의료계는 '절차적 정당성'이 확보되지 못했다고 맞섰다. 보정심 회의가 정부의 정책을 확인하는 요식행위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회의록에서 한 위원은 "2000명 숫자에 대한 토론이나 의견이 없는 상황에서 회의가 끝난 직후 2000명 증원이 발표될 건데 보정심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반면 정부는 보정심이 의결기구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일부 핵심 자료가 빠진 것도 문제다. 의료계는 전국 40개 의대에 2000명 증원분을 배분한 배정위의 회의록과 참석자 명단을 공개할 것을 촉구했다. 교육부 산하 배정위는 지난 3월14일 구성된 이후 이튿날 첫 회의를 열었고, 총 세 차례 비공개 회의를 가졌다. 첫 회의 이후 5일 만인 3월20일, 전국 32개 의대별 증원 규모를 결정했다.

정부는 법원에 배정위 관련 자료로 회의록 대신 회의 내용 요약본과 익명으로 처리된 명단을 제출했다. 박 차관은 배정위 명단에 대해 "(불이익을 막기 위해) 제출 자료에 익명으로 처리하되 직위는 표기하겠다"며 "의대 교수인지, 어디 소속 공무원인지 등을 알 수 있도록 표기하는 수준으로 정리해 제출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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