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테크 Lab] 친구 따라 강남 가지 못할 바에는…
예적금에만 신경 쓴 부부
친구들은 재테크로 큰 돈 모아
수익성 추구해도 괜찮을 시기
재테크 감각 익히는 게 중요해
여기 20년간 휴가 한번 없이 직장 생활을 해온 부부가 있다. 원래 부유했던 친구들은 암호화폐며 부동산이며 재테크에 성공해 잘나가는데, 부부가 손에 쥐고 있는 건 작은 빌라가 전부다. 재테크라도 했으면 좋으련만, 부부는 적금 외엔 아는 것이 없다. 더스쿠프와 한국경제교육원㈜이 "돈이 돈을 버는 것 같아서 속이 상한다"는 부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최근 고등학교 친구들과 모임을 가진 박희영(가명·41)씨. 40대 주부들이 모여서 하는 얘기는 대부분 자식 키우는 것과 재테크, 2가지다. 이날도 박씨는 친구들과 재테크 얘기에 열을 올렸다.
한 친구는 암호화폐 투자에 성공해서 벌써 노후 준비를 끝냈다고 했다. 다른 친구는 "다소 무리를 해서 입주했던 아파트 가격이 엄청 올랐다"면서 "입주했을 때보다 2배 가까운 금액을 받고 나왔다"며 자랑했다.
그런 친구들을 곁에서 지켜보는 박씨는 마음이 착잡해졌다. 자신과 달리 친구들은 원래 부유한 편에 속했다. 돈 문제와 관련해 별걱정 없이 살았고, 남은 돈을 재테크에 투자해 더 많은 돈을 벌었다. 박씨 입장에선 돈이 돈을 벌어들인 셈이다. 박씨는 '자신만 계속 뒤처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괴로웠다.
열심히 살지 않은 것도 아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중소기업에 취직해 사회생활을 한 지 20년. 그동안 나름 푹 쉬었던 때라곤 딸(12)을 낳은 후 3개월 출산휴가를 받은 게 전부였다. 남들이 대수롭지 않게 간다는 유럽 여행 한번 못 가봤다.
"열심히는 살았지만, 지혜롭진 못했던 것 같다"고 박씨는 말했다. 재테크를 전혀 몰랐다. 적금이 최고라 믿었기에 여윳돈이 생기면 무조건 적금통장에 박아 넣었다. 그러는 사이 어느덧 40대가 됐고, 재테크에 성공한 주변 친구들을 보면서 조금씩 노후 걱정이 커졌다. '친구들처럼 진작에 재테크를 시작하면 어땠을까' 하는 자책감이 박씨를 사로잡았다.
설상가상으로 남편 황희준(가명·44)씨가 잘 다니던 직장을 나온 것도 불안감을 키웠다. 곧바로 재취업하긴 했지만, 박씨의 걱정은 줄어들지 않았다. 예전 직장과 비교하면 복지나 상여금이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 놓여있는데도 두 사람이 여전히 '미래를 그리는 법'을 깨우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부터 어떻게 노후를 대비해야 할지, 은퇴 후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도 감을 잡지 못했다. 부부는 이런 자신들의 부족한 점을 채우기 위해 재무상담을 받기로 결심했다.
필자가 상담을 통해 파악한 부부의 재정 상태는 이렇다. 둘 다 중소기업을 다니는 부부의 월 소득은 590만원으로 남편이 350만원, 아내가 240만원을 번다. 정기지출은 공과금·관리비 15만원, 식비·생활비 137만원, 통신비 18만원, 교통비·유류비 56만원, 부부 용돈 85만원, 보험료 52만원, 대출원리금 상환 52만원, 자녀 학원비 12만원, 가족 회비 10만원 등 437만원이다.
1년에 걸쳐 쓰는 비정기지출로는 명절비·경조사비(100만원·이하 1년 기준), 자동차 비용(129만원), 휴가비(100만원), 의류비·미용비·의료비(100만원) 등 429만원이다. 월평균으로 계산하면 35만원이다. 금융성 상품은 적금 총 100만원, 주택청약종합저축 5만원, 비상금 용도로 저축하는 예금 5만원 등 110만원이다.
이렇게 부부는 한달에 총 582만원을 쓰고 8만원을 남기고 있다. 자산은 현금 1200만원이 전부다. 몇년 전, 자가 빌라(시세 3억1000만원)를 매입하면서 주택담보대출(잔여금 1억3000만원)을 받은 탓에 모아놓은 돈을 거의 다 썼다.
부부에게 은퇴 이후의 삶은 멀고도 가깝다. 정년퇴직까지 20년 남짓 남았다곤 하지만, 살다 보면 눈 깜짝할 새에 은퇴 시기에 다다르기 마련이다. '노후 준비는 아무리 빨라도 늦지 않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물론 무턱대고 허리띠를 졸라매란 얘긴 아니다. 현재 삶의 밸런스가 무너지지 않는 선에서 현명하게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다가올 사건·사고도 효율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은퇴로 인한 소득 감소나 가족력이 있는 질병 발생 등의 리스크를 인지하고, 이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방식으로 노후를 준비하는 것이 가장 좋다.
이런 관점에 입각해 부부의 가계부를 살펴보니 몇가지 문제가 도출됐다. 부부가 한달에 100만원가량 저축하고 있긴 하지만, 지출에 군살이 많았다. 137만원에 달하는 식비·생활비는 3인이 아니라 4인 가구 기준으로 잡아도 적지 않은 액수다. 이밖에 부부 용돈(85만원), 보험료(52만원) 등도 줄여야 할 부분이다.
부부가 은행 상품에만 '올인'하는 점도 문제다. 부부의 나이대라면 아직까진 안전성보다는 수익성을 추구해도 괜찮다. 재테크 경험이 부족해 원금을 잃는다 해도, 40대 초반이면 충분히 만회가 가능하다. 조금이라도 젊었을 때 소액으로라도 주식이나 펀드를 시작해 경제 감각을 익혔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부부로부터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느라 1차 상담 시간을 많이 할애했다. 마지막으로 약간의 지출을 줄여 '워밍업'을 하기로 했다. 타깃은 부부 용돈이다. 친구, 직장 동료 등 부부는 평소 지인들과의 모임을 자주 갖는다.
그러다 보니 커피값, 술값으로 용돈을 쓰는 경우가 잦다. 말이 용돈이지 따로 용돈 예산을 정하지 않고 그냥 월급 통장에서 가져다 쓰는 수준이다. 그러다 보니 매월 예상보다 많은 지출이 발생한다.
부부는 각각 25만원씩 한달에 총 50만원만 용돈으로 지출하기로 했다. 불필요한 지출이 발생하지 않게끔 지인들과의 모임 횟수도 대폭 줄이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부부의 용돈은 85만원에서 50만원으로 35만원 줄었다. 부부의 여유자금도 8만원에서 43만원으로 늘었다. 나이대에 비해 부부의 소득이 그리 많지 않으므로, 지출을 대폭 줄이는 방식으로 미래를 설계해야 한다. 부부는 필자의 요구를 잘 따라올 수 있을까.
서혁노 한국경제교육원㈜ 원장
shnok@hanmail.net | 더스쿠프 전문기자
이혁기 더스쿠프 기자
lh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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