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이 당은 뭐 하는 당이냐"…'다시 한번 기회'는 오지 않았다 [스프]
21대 국회 임기가 끝나는 5월 29일, 정의당이 걸어온 원내 진보정당 20년 역사도 막을 내린다. 지난 총선, 10% 가까운 비례대표 정당 지지를 받았던 정의당은 이번 총선에선 3% 문턱을 넘지 못했다. 총선 실패의 대가는 냉혹하다. 언론의 주목도, 당의 위상은 쪼그라들었다. 30억 원 넘는 부채에 정당보조금이 대폭 줄면서 당직자 열 명 중 아홉 명은 실직자가 될 거란 이야기도 나온다. 등록하는 후보가 없어 당대표 선거 일정이 밀릴 지경이다.
사실 실패는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었다.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 참패한 뒤 당의 방향성을 고민하던 이들이 총선을 앞두고 뿔뿔이 흩어진 것만 봐도 그렇다. 조성주·류호정은 새로운선택을 거쳐 개혁신당에, 박원석·배복주는 새로운미래에 합류했다. 일부는 사회민주당이나 한국농어민당으로 갔다. 조국혁신당에서 원내 입성에 성공한 신장식 정도를 제외하면 정의당을 떠난 이들의 선택이 효과적이었는지 의문이지만 말이다.
아예 정치를 떠난 정의당 지도부도 있다. 양당이 독식하던 서울 관악구의회에 입성하며 청년 정치인으로 주목받았던 이기중 당시 정의당 부대표 이야기다. 이 전 부대표는 제3지대론을 주장하던 '세 번째 권력'에 참여하다 지난해 11월 돌연 정계 은퇴를 발표했다. 당시 이 전 부대표가 남긴 글에서 변화하지 않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고민과 좌절을 엿볼 수 있다.
일찌감치 정의당의 실패를 예감했던 이 전 부대표는 정치를 떠나 노무사 겸 라이더로 생활하고 있다. 그와 함께 정의당이 실패한 이유를 복기해 봤다.
Q. 언제, 왜 정치를 그만뒀나?
A. 지난해 11월 지도부 총사퇴가 결정되면서 부대표직을 내려놓고 정치를 떠났습니다. 페이스북에서 제 글을 봐주는 이들이 있고 관악구 출마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은퇴한 것에 대해 소명하기 위해 공식 선언으로 남겼어요. 정의당 재창당 과정에서 당이 제3지대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녹색당과 선거 연합을 하겠다는 게 당내 다수 의견이었습니다.
Q. 총선 참패, 예상했나?
A. 부대표가 됐을 때부터 지도부 안에서는 이번 총선 의석 수는 0~2석이다, 3% 지지율이 간당간당한 정도라고 생각했어요. 21대 총선에서 10% 가까운 지지를 받았지만 이후 4년 동안 정의당이 캐스팅보트 잡을 상황은 아니었어요. 유력한 스피커가 심상정 의원밖에 안 남았는데 그 발언력이 약해진 측면도 있어요. 정의당의 여러 실책이 있지만 일단 언론에 나오지 않는 게 제일 컸어요.
정의당이 가장 좋았을 때가 2017년 대선입니다. 문재인 후보 당선이 확실시되는 상황서 정의당이 민주당의 보완재 역할을 자임했고 거기에 많은 국민들이 동의하면서 이후 지지율이 괜찮게 나왔죠. 그러나 조국 사태 이후 민주당이 도덕적 문제점을 노출했을 때 정의당은 이쪽 편을 들 거냐 말 거냐 질문에 계속 놓였고 항상 명확한 선택을 하지 못했어요. 이쪽에선 민주당 2중대, 저쪽에선 국민의힘 2중대란 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반보수 전선에서 복무하기를 원했던 범민주진보 성향을 가진 사람들과 양당에서 독립적인 제3세력 역할을 해주길 바랬던 중도층의 지지를 동시에 다 잃었습니다.
Q. 총선 전략의 문제는 없었나?
A. 이번 총선의 실패는 4년 전 총선에서 이미 시작됐다고 봐요. 애초 4년간 쌓인 문제들이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 해도 극복하긴 어려웠다고 판단해요. 4년 전 실패는 선거제를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로 바꾸면서 의석이 많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민주당이 위성정당을 만들지 않을 거라고 오판한 거죠. 사실 청년에 비례 1, 2번을 할당한 것도 10명 이상 당선될 거라고 상정했기 때문이에요. 당시 비례 후보만 37명이 당내 경선에 출마했는데 많이 당선될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고, 2000년대부터 활동한 당 활동가들은 정치인으로서 성장 가능성을 고려해야 하고, 생계 문제도 있는 거죠. 당시 비례 경선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실망하고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 그때부터 이미 실패는 노정됐다고 볼 수밖에 없겠죠. 그렇게 해서 떠난 사람들과 지지자들의 원망과 원한 같은 게 청년 의원들에게 집중이 됐고, 그러면서 당내 분열과 갈등이 지속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Q. 정의당은 계속된 위기에 어떻게 대응했나?
A. 현실성 있으면서도 구체적인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현장에서 더 열심히 하자, 지역과 노동을 강화하자. 이런 이야기는 굉장히 게으르고 원론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매번 어떤 위기가 올 때마다 평가를 하면 그런 이야기가 계속 반복됐어요. 그런 건 하면 좋은 건데 못하는 상황이라는 게 있는 거고, 정의당이 괜찮을 때도 그런 건 잘 못했어요, 구조 자체가 이미 안 되는 상황인데 그런 평가와 대안들은 굉장히 공허했다고 생각해요.
포지션 전략이 굉장히 중요했다고 생각해요. 민주당과 차별화된 노선이나 정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지금은 없기 때문에, 우리는 어디에 있는 무엇을 하는 당이냐는 것을 보여줘야 해요. 당의 정체성이 모호하다는 것은 정책 노선의 문제라기보다는 우리가 발 딛고 있는 땅이 어디냐, 다른 정당과의 관계가 어떻게 되느냐가 중요한 거예요.
Q. 구체적인 사례를 들자면?
A. 정의당은 조국 사태 이후 끊임없이 흔들리면서 반성한다는 말을 수도 없이 했는데, 뭐가 잘못이었고 왜 그런 판단을 했는지 고민했다면 이후로는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죠. 그러나 똑같은 오류를 반복했어요. 민주당과 손잡고 간다고 빨리 결정하는 것도 아니고, 계속 고민하는 모습만 보이다가 마지막에 결정할 때는 늘 민주당의 손을 들어주는 식으로 하니까, 대중이 보기에 도대체 이 당은 뭐 하는 당이냐는 생각이 드는 거죠.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심상정 의원 득표보다 적은 표차로 당선됐을 때 교차투표층의 대거 이탈은 예정된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독자 노선을 갔어야 했는데, 이후 검수완박에 손을 들면서 돌아오지 않을 교차투표층에게 손을 내밀고 중도층은 내쳤죠.
총선 전 이재명 대표가 현행 선거법을 유지하되 위성정당을 만들겠다고 이야기했을 때 정의당의 메시지는 '그 고민을 이해한다'가 일성이었어요. 참여할지 여부를 놓고 한참 내부 논의를 한 뒤 참여하지 않겠다고 판단했어요. 원칙이 아니라고 판단했다면 처음부터 강하게 비판했어야죠. 2020년에는 강하게 위성정당을 비판하며 정의당은 원칙을 지키는 정당이다, 민주당에 뒤통수를 맞았다, 이 전략으로 총선에서 10% 가까이 받았잖아요. 그런데 이번에는 위성정당을 제대로 비판하지도 못하고, 할까 말까 고민하는 모습만 보였어요. 원칙을 지켰다지만 그걸 자랑스럽게 이야기하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린 거예요.
결국, 정의당이 포지션을 분명히 선택하지 못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Q. 왜 확실한 포지션을 선택하지 못했나?
A. 현실적으로 당내에서 그 두 가지 포지션에 대해서 각각 지지하는 사람들이 거의 반반이었는데, 그랬기 때문에 더욱 결정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지도부에 선택해야 한다고 이야기했어요. 물론, 한쪽을 선택하면 다른 한쪽이 떠나 당이 깨지는 거니까 쉽진 않았지만요. 지금까지 당 지도부와 주요 정파들은 당을 깨지 않기 위한 선택을 하다가 함께 넘어지게 된 겁니다.
Q. 세 번째 권력과 함께 제3지대론을 주장했는데.
A. 진보정당이 80년대 운동에서 내걸었던 사회주의, 사민주의, 복지국가 이런 것들은 이미 민주당에 많이 흡수됐습니다. 우리가 처음 진보정당을 시작할 때 이야기한 진보라는 게 어느 정도 시효를 다한 것 아닌가, 또 한편으로는 민주당이 진보로 불리는 상황에서 정의당이 민주당과 같이 진보로 묶이면서 조국 사태 등 민주당 쪽에 도덕적인 문제가 발생해도 정의당이 편을 들어줘야 하는 이런 상황들. 그래서 진보라는 게 어떤 가치가 아니라 이제는 그냥 하나의 지명을 의미하게 된 것이 아닌가, 옛날 운동권 동창회 같은. 그런 고민 끝에 새로운 가치와 정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Q. 막상 제3지대에 합류하지는 않았다.
A. 정의당의 부대표이고 지도부였기 때문에 당이 내가 주장하는 길로 가지 않는다고 해서 나 혼자 이탈해서 가는 것은 책임지는 모습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정의당 자체가 제3지대 재편에 역할을 하길 바란 건데 결국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제3지대 상황 자체가 원래 생각했던 이상적인 모습으로 굴러가지 않을 것 같아서 결국 이쪽도 실패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민주당이나 국민의힘에서 일부 세력이 이탈한다고 하더라도 계파 간의 갈등, 인물 간의 갈등으로 인한 분화이지 가치에 대한 것은 아닌 것 같았어요.
Q. 제3지대에서 진보적 가치가 실현가능한가?
A. 진보가 시효를 다한 것에는, 우리가 왜 민주당이 도덕적이지 못하고 개혁적이지도 못한 사안에 대해서도 편을 들어줘야 하냐는 회의가 있었어요. 노회찬 의원은 민주노동당이 처음 생겼을 때 '민노당과 민주당 사이에는 한강이 흐르고, 민주당과 한나라당 사이에는 실개천이 흐른다'고 말했고, 통합진보당 이후 야권 연대 노선을 가면서는 '외계인이 쳐들어오면 한국과 일본도 손을 잡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진보정당이 처음 생겼을 때는 민주당을 보수정당으로 치부하면서 두 거대 정당의 차이보다 우리와의 차이가 더 크다고 이야기했고 실제로도 그런 노선을 걷기도 했어요.
그런데 지금 와서는 그런 게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정의당은 민주당과 편을 먹어야 하는 것처럼 생각하잖아요. 80년대식의 반독재 사고방식으로 봤을 때 국민의힘과는 멀고 민주당과는 가까운 것으로 느끼겠지만, 조국 사태라거나 검수완박 같은 것을 봤을 때 오히려 이준석 같은 사람 하고도 말이 더 잘 통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다만, 당을 같이 할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생각이 있었고요.
Q. 어떤 정책과 가치를 제시하려고 했나?
A. 정책과 가치라는 건 거의 모든 정당들이 다 일치해가고 있다고 봐요. 심지어 박근혜 후보도 대선 때는 경제민주화나 복지국가 뭐 이런 이야기를 다 했죠. 정책에 있어서는 말로는 큰 틀에서 합의가 이뤄진 거고, 오히려 진영 논리와 서로 잡아넣기 위해서만 치열하게 싸움이 이뤄졌기 때문에, 이런 것들을 타파하기 위해서 다당제와 제3지대가 필요하다고 봤고 기존의 진영 논리를 넘어서는 세력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진보에서 내놓은 정책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새로 평가해 봐야 하는 것 아닌가. 대표적으로 최저임금 인상, 공수처, 검수완박 등은 실제 어떤 결과 낳았는지 제대로 된 평가가 없었다고 봐요. 제대로 작동했는지 냉정하게 평가하고 반성할 부분은 반성했어야 하지만 이뤄지지 않았어요.
Q. 제3지대 빅텐트 과정은 어떻게 평가하나?
A. 제3지대가 이낙연·이준석이라는 정치인 두 명으로 상징되도록 판이 만들어져 버렸고, 민주당 비명계에서 일부 계파가 나온 정도였죠. 사실 정의당이 이 안에서 어떤 일정한 정치세력으로서 역할을 했다면 좀 다른 판이 만들어질 수도 있었다고 생각했어요. 이낙연·이준석과 다 같이 할 수는 없었겠지만, 그래도 제3지대에서 어떠한 역할을 하겠다, 우리가 생각하는 제3지대는 어떻게 되어야 한다는 식으로 그 과정에 개입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아예 정의당이 빠져버린 게 제일 큰 문제라고 생각해요. 이낙연·이준석도 새로운 가치나 다당제를 제시했다기보다는 결국 자기가 있던 당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어 살기 위해 한 것 아니냐 이렇게 비치면서 제3지대 자체가 쪼그라들었어요.
Q. 조국혁신당은 정의당을 대체하는 진보정당인가?
A. 조국이라는 사람에 대한 호오와는 별개로 조국혁신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바라는 정치세력이라는 것은 결국 기존에 정의당이 해왔던 역할이 맞다고 봐요, 100%는 아니지만요. 정의당은 진보정당으로 사회적 약자를 위해 노동 등 정책 펼친다는 측면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반보수 전선에서 민주당보다 더 선명하게 싸우는 정당이란 이미지가 있었죠. 평가를 떠나 그걸 좋아해서 지지해 주던 사람들이 이번에는 누가 윤석열 대통령과 가장 제대로 싸울 사람이냐, 가장 철천지원수가 누구냐고 했을 때 조국이라고 보고 선택한 거죠.
다만, 조국혁신당이 정책과 노선에서 앞으로 어떻게 갈지는 여전히 미지수라고 봐요. 조국 대표가 이재명 대표를 만났을 때 민주당은 몸이 무거우니 우리가 더 선명하게 싸우겠다고 이야기했지만, 사실은 민주당도 그 덩치에 비해서 굉장히 세게 나가고 있거든요?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의 선명성 경쟁은 진보적인 정책이나 약자를 위한 정치라기보다, 윤석열을 어떻게 끌어내리고 검찰을 어떻게 해체할 것이냐 이런 경쟁이 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정반석 기자 jbs@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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