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가치 ‘가이드라인’의 암초[시평]
밸류업 공시 기업에 인센티브
구체안 제시 없어 시장 불안감
외자 유입과 연관성도 불확실
면책제도 따른 위험 함께 봐야
실천 못할 경우 허위공시 우려
신중하고 충분한 논의 거쳐야
한국거래소가 ‘기업가치 제고 계획’ 가이드라인을 5월 중 확정할 것을 예고하면서 상장기업들 의견을 수렴하느라 바쁘다. 취지는 국내 상장기업들의 저평가된 주가를 높이는 것이라고 한다. 2022년 기준 국내 코스피200 기업들의 현재 시장평균 주가수익비율(PER)은 11.3이고, 주가순자산비율(PBR)은 0.9이다. 미국이 각각 20.4와 4.2이고, 일본이 16.3과 1.4, 그리고 선진 23개국 평균이 17.9와 2.9임을 고려할 때 국내 시장이 저평가된 것이 사실이다. 일부 언론은 지난 2월에 가이드라인 도입 논의를 시작한 후 외국인의 뭉칫돈이 국내 자본시장에 유입되고 있으며, 지난 5일까지 외국인이 코스피시장에만 6조 원어치 이상을 순매수했다는 수치도 제시한다.
그런데 가이드라인 도입과 외국인 투자 증가 간에 직접적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기에는 시기상조인 듯하다. 오히려 긍정적인 효과에 대한 기대보다는 기업가치에 미칠 영향을 다각도에서 신중히 분석한 후 타당성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지난 2일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 2차 세미나’에서는 상장기업의 개별 특성에 맞춰 자율적으로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세우고 이를 1년에 1회 정기적으로 공시하는 것을 재확인했다. 다만, 공시를 의무화하기보다는 자율로 하되 공시 기업에 인센티브(유인책)를 주는 방식을 취할 것으로 보인다.
1차 세미나에서는 공시 우수기업 표창, 모범 납세자 선정 시 우대, 세액공제 사전심사 우대, 법인세 공제·감면 컨설팅 우대, 부가·법인세 경정 청구 우대, 가업승계 컨설팅 등 5종 세정 지원과 감리 제재 조치 시 감경, 거래소 연부과금·추가상장수수료·변경상장수수료 면제, 불성실 공시 관련 거래소 조치 유예, 거래소 공동 기업설명회(IR) 우선 참여 기회, 밸류업 지수 편입 우대 등이 유인책으로 예시됐으나, 2차 세미나에서 그 구체적인 내용이 제시되지 않아 시장의 불안감은 고조된 상태다.
공시 내용으로는 ‘기업 개요’ ‘현황 진단’ ‘목표 설정’ ‘계획 수립’ ‘이행 평가’ ‘소통’이 목차로 구성돼 필요 사항을 기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기존 공시 내용과 중복되는 내용도 있지만, ‘계획 수립’과 관련해 자사주 소각 및 배당 등 주주환원 계획, 비효율적인 자산 처분 계획 등과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중장기적인 목표 제시는 새로이 공시돼야 할 내용이다.
문제는, 새로운 공시 내용이 전혀 예상치 못한 요인으로 실천 불가능한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거래소 측은 목표 설정과 관련해서는 ‘면책제도’, 즉 예측 정보란 문구를 기재하면 책임을 배제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물론, 목표 설정의 경우에는 예측 정보 문구를 기재하면 면책될 수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계획 수립과 관련해서는 그리 간단해 보이지 않는다.
자사주 소각 및 배당, 비효율적인 자산 처분 등의 계획은 주식 시세, 경쟁사와의 관계, 경영권 위협 여부, 손익 규모, 자산의 효율성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실천 여부가 결정된다. 계획대로 실천을 강행하면 큰 변동성으로 인해 커다란 손실이 발생할 수도 있다. 문제는, 큰 손실이 우려돼 계획을 변경하거나 실천을 지연하는 경우 자본시장법 및 증권관련집단소송법상 허위공시에 해당할 수 있다는 점이다.
허위공시는 증권집단소송의 대상 행위 중 가장 빈번히 발생하면서도 기업의 존립을 위협할 가능성이 큰 위법행위다. 설령, 증권집단소송이 아니더라도 주주들로부터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당할 가능성도 있다. 가이드라인 도입 전에 증권관련집단소송법 및 자본시장법상의 허위공시 관련 규정에 대한 보완이 병행돼야 하는 이유다.
현재 이 가이드라인을 시행하고 있는 나라는 일본뿐이며, 그나마 시행한 지 채 1년이 지나지 않았다. 더욱이 일본에는 증권관련집단소송법 자체가 없다.
사전 규제가 많은 우리 자본시장법의 특성상 가이드라인이 또 다른 규제로 기업들을 옥죄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밭 팔아 논 샀는데 쌀밥은 고사하고 보리밥도 못 먹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것이다.
기업가치 제고 가이드라인을 서둘러 도입하기보다는 좀 더 충분한 논의를 거친 후 도입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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