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권태기가 없었으랴…KBO리그 최고 홈런타자 최정의 ‘초심’[스경x인터뷰]

배재흥 기자 2024. 5. 16.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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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SSG 최정이 14일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린 스포츠경향 창간 19주년 기념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4.5.14. 정지윤 선임기자


“최정 선수, 혹시 입단했을 때 기억나요?” 스포츠경향 창간 19주년을 맞아 지난 14일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만난 최정(37·SSG)은 기자의 질문을 받고 아주 잠시 생각에 빠졌다. 찰나의 시간여행을 하고 돌아온 최정의 입가엔 옅은 미소가 번졌다.

유신고를 졸업한 최정은 2005 KBO 신인드래프트 1차 지명으로 SK(현 SSG)의 지명을 받았다. 지금도 그는 입단 당시 받은 유니폼의 재질과 감촉을 기억한다. 최정은 “팀에 처음 합류해서 받은 유니폼을 거울 앞에서 몸에 막 대보고 입어봤다. 구단 로고를 보면서 ‘진짜 프로 선수가 됐구나’라는 설렘을 느꼈다”고 말했다.

프로 유니폼을 처음 입고서 마냥 행복했던 19살 최정은 그 유니폼이 지닌 의미를 가벼이 여기지 않았다. 지금도 그 마음은 변함없다. 최정은 올해 입단한 2005년생 고졸 신인 선수들과 비슷한 마음가짐으로 20번째 시즌을 보내고 있다.

야구보다 축구를 더 좋아했던 어린이, 그 소년이 스포츠경향이 창간했던 2005년 데뷔해 KBO리그 최고의 홈런타자가 되기까지의 이야기다.

2005년 신인 시절 최정. SSG 제공


축구를 좋아했던 소년


최정은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 야구를 접했다. 그전까진 야구가 어떤 운동인지도 잘 몰랐다. 야구보다 축구와 농구를 좋아했다. 본인 표현을 빌리면 “야구라는 스포츠는 아예 신경을 쓰지 않았다.”

활동적인 어린이였던 최정은 새로운 것에 도전하길 좋아했다. 야구도 ‘한 번 해보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다. 그는 “당시 학교에서 야구부를 포함해 여러 클럽의 부원 모집 용지를 돌렸다. 야구가 좋아서 한 것보단 그중 야구부가 걸린 것”이라며 “야구부에 들어가기 전엔 ‘그린스카우트’(청소년 환경 단체) 활동도 했다”고 설명했다.

야구에 재미를 붙인 계기도 단순하다. 일단 테스트를 보러 온 신입생 중 방망이를 잘 쳤고, 무엇보다 유니폼을 입었다는 게 중요했다. 최정은 “야구부원은 다른 학생과 달리 유니폼을 입고 등하교를 한다. 그게 되게 좋았다”며 “초등학교 땐 일명 ‘뽕’이 달린 야구화를 신고 다녔는데 그게 또 재밌었다”고 미소를 지었다.

조금 더 진지하게 야구를 하게 된 건 중학교 2학년 때부터다. 최정은 “그때쯤 야구를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공부도 하지 않고, 야구만 하던 때라서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며 “더 잘하게 되고,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면서 야구에 점점 빠져들었다”고 말했다.

고교 시절 이영민 타격상을 받는 등 전국구 선수로 이름을 날린 최정은 2005년 SK에 입단해 프로 선수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그는 “프로 첫 타석(2005년 5월7일 LG전)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땐 왼쪽 타석에 들어갔는데, 잘 쳤다고 생각한 타구가 좌익수에게 잡혔다”며 “그때 투수가 최원호 한화 감독님이었다”고 추억했다.

지난달 24일 부산 롯데전에서 개인 통산 468번째 홈런을 치는 최정. 연합뉴스


권태기가 왜 없었으랴


최정은 꾸준함의 대명사다. 프로 첫해인 2005년을 제외하고 올해까지 19시즌 연속 두 자릿수 홈런을 터트렸다. 지난달 24일엔 꾸준함의 가치가 빛난 대기록이 탄생했다. 그는 이날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롯데와 원정 경기에선 4-7로 뒤진 5회초 2사 롯데 선발 이인복의 가운데로 몰린 초구 슬라이더를 받아쳐 KBO 개인 통산 468번째 홈런을 날렸다. 최정은 이승엽 두산 감독의 현역 시절 기록(467개)을 뛰어넘어 이 부문 단독 1위에 등극했다. KBO리그 최고의 홈런타자로 우뚝 선 순간이다.

최정은 늘 야구에 진심을 다하려고 애썼다. 끊임없이 자신을 의심하며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항상 뭔가 부족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새로운 것을 배우는 걸 좋아했다”며 “그래서인지 누구보다 월등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어떤 기록을 달성하더라도 내가 해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고 말했다.

야구를 하는 게 언제나 설레고 재밌었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돌이켜보면 최정도 야구에 싫증을 느꼈을 때가 있었다. 2014, 2015년이 그랬다. 최정은 “야구에 대한 권태기가 왔던 시절인 것 같다. 2014시즌 종료 후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었고, 해외에도 갈 수 있는 여러 이슈가 있었다. 그때 많이 방황했다”고 회상했다.

부상까지 겹친 시기라서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쳤을 때다. 그래도 선수로서 본분을 다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싫다고 놓아 버리면 선수 개인의 손해라는 생각으로 연습과 노력은 계속했다”며 “몸까지 다치고 아프다 보니까 마음처럼 잘 안 돼 힘들었다”고 전했다. 최정은 2014년 14홈런, 2015년 17홈런에 그쳤다.

방황은 길지 않았다. 최정은 2016년 데뷔 첫 40홈런을 기록하며 지난날의 아쉬움을 털어냈다. 그 후로도 자신의 선택에 후회를 남기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했다. 그는 “후배 선수들이 미국 진출도 많이 하고, 큰 꿈을 향해 나아가는 걸 보면 개인적으로 아쉽고, 후회되기도 한다”며 “멘털을 다시 잡고 정말 열심히 한 덕분에 기록(홈런)을 이룰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프로야구 SSG 최정이 14일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린 스포츠경향 창간 19주년 기념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4.5.14. 정지윤 선임기자


여전히 (마음만은) 19살


최정은 야구라는 스포츠가 초심을 잃기 어려운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어제 홈런을 쳤어도, 오늘 삼진을 당할 수 있는 종목이라서다. 그는 “야구는 하루가 지나면 모든 게 리셋된다. 그래서 항상 초심으로 야구를 해야 한다”며 “초심을 잃을 수가 없고, 잃어서도 안 되는 종목”이라고 강조했다.

매일 희비가 엇갈리지만, 그렇게 쌓인 기록은 선수들에게 명예로운 훈장이 된다. 그러나 최정은 기록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 이것도 초심이라면 초심이다. 그는 “통산 기록은 기사를 통해 접한 적이 더 많다”며 “당일, 최근 기록만 보지, 통산 기록을 보고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초심은 잃지 않되, 초심으로 야구하지 말아라”는 글귀를 한동안 마음속에 품고 야구를 했다.

지금의 최정이 19살 최정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와도 관련이 있다. 그는 “어릴 때는 자신감도 많이 없고, 긴장도 많이 됐다. 그래서 시합 때 좋은 성적이 나오지 않았다”며 “더 당당하고, 자신 있게 야구하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요즘 애들처럼 눈치 안 보고 과감하게 야구를 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고 말했다.

최정은 14일 기준 개인 통산 470홈런을 기록 중이다. 앞으로 홈런 30개를 추가하면 KBO리그 최초 500홈런 고지를 밟는다. 거울 앞에서 프로 유니폼을 입고 웃음 짓던 19살 최정은 19년이 지난 현재 KBO리그 역사에 남을 또 하나의 신기록을 향해 걷고 있다.

최정은 “예전에는 새로 배운 걸 실전에 적용하며 결과를 내는 재미로 야구를 했다. 지금은 내가 가지고 있는 기술이나 능력을 끌어올려야 하는 시기 같다”며 “이승엽 두산 감독님의 기록을 뛰어넘어 굉장히 영광스러웠고, 이젠 500홈런이란 목표도 생겼다”고 전했다.

이어 “그게 전부는 아닐 테지만, 앞으로도 좋은 성적을 내려고 노력하면 달성할 수 있을 거로 믿고 열심히 하겠다”며 “기록을 떠나 ‘야구 참 잘했던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고 각오를 밝혔다.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여전히 마음만은 19살이다.”

최정이 웃었다.

프로야구 SSG 최정이 14일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린 스포츠경향 창간 19주년 기념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4.5.14. 정지윤 선임기자


인천 | 배재흥 기자 he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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