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감독상→사퇴 요구’ 롤러코스터 탄 염기훈 “그래도 수원 팬 응원 덕분에 비길 경기 이기고, 질 경기 비긴다”
박효재 기자 2024. 5. 16. 10:39
K리그2 수원 삼성 염기훈 감독은 최근 한 달 새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지난달 7일 충북 청주전을 시작으로 코리아컵 경기까지 내리 5연승을 달렸다. 수원 삼성은 이 기간 리그 선두로 치고 올라섰고, 염 감독은 4월 ‘이달의 감독상’도 받았다. 정상의 기쁨도 잠시, 5월 들어 리그 최하위였던 천안 시티전 패배까지 2연패에 빠졌다. 성난 팬들은 경기장에서 염 감독 사퇴를 외쳤다.
수원의 레전드 출신 감독으로 만감이 교차할 법하다. 선수 시절 수많은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던 그였지만, 지난 시즌에는 감독 대행으로 구단 역사상 최초의 2부 강등을 경험한 사령탑이 됐다. 정식 감독으로서는 첫 시즌인 이번 시즌에는 시즌 초반부터 혹독한 감독 신고식을 치르고 있다. 그런데도 염 감독은 희망을 얘기했다. 지난 14일 경기 화성에 있는 클럽하우스에서 만난 염 감독으로부터 소회와 이번 시즌 각오를 들었다.
5연승과 2연패, 희망과 실망 오간 격동의 한 달
염 감독은 감독 사퇴 요구에 힘들지 않으냐는 말에 “선수 생활할 때도 마찬가지지만 최소 두 번에서 많으면 네 번까지 고비가 온다. 이번이 첫 고비라고 생각한다”며 각오를 다졌다. 그러면서 “선수들에게 영향이 갈까 걱정될 뿐 팬들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한다”고 말했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이 크고, 사랑이 컸던 만큼 미움도 큰 법이다. 1995년 창단한 수원은 K리그에서 1998년과 1999년, 2004년, 2008년까지 네 차례나 우승한 명문 구단이다. 하지만 2008년 이후 리그 우승은 없고 FA컵에서만 3회 우승한 게 전부다. 지난 시즌에는 K리그1 최하위로 처지며 다이렉트 강등되는 수모까지 겪었다.
강등 이후 팬들의 관심이 뚝 떨어질 거라는 우려와 달리 수원은 2부에서도 구름 관중을 몰고 다닌다. 홈에서 6경기를 치른 현재 평균 관중은 1만381명으로 이 부문 1위다. 리그 성적 1위 안양(6382명)보다 많고, K리그1 선두 포항(9013명)보다도 많다. 수원 팬들은 지난 11일에도 비를 맞아가며 수원월드컵경기장(빅버드)을 찾았지만, 리그 최하위였던 천안에 0-1로 지자 염 감독 사퇴를 외쳤다.
염 감독이나 가족들에게 힘든 시간이다. 이날 이번 시즌 들어 처음으로 빅버드를 찾은 염 감독의 아들은 처음 보는 광경에 눈물을 터뜨렸다. 선수 시절에는 환호만 받던 아빠가 팬들에게 질타의 대상이 된 걸 보고 충격을 받았다. 염 감독은 자신처럼 축구를 하는 아들에게 “이건 아빠의 일이지 너의 일이 아니니까 너는 운동에만 전념하라”고 했다면서 “원래 아들과 따로 자는데 같이 자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해줬다”고 말했다.
“승격 부담감 이겨내는 것이 최대 과제”
왜 이토록 수원 팬들은 강도 높게 비난할까. 염 감독은 “승격을 하기 위해서는 경험 있는 감독이 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팬분들은 선수로서 나를 응원했지만 감독으로서는 솔직히 경험이 부족하고 초보다”고 몸을 낮췄다. 그는 지난 시즌까지만 해도 플레잉코치로 선수들과 함께 그라운드를 누볐고, 후반기에는 감독 대행으로 변신했다. 이번 시즌에는 정식 감독 직함을 달았다.
구단은 초보인 염 감독에게 승격이라는 중책을 맡겼다. 염 감독은 오랫동안 선수로 뛰면서 누구보다 선수들의 장단점을 잘 알고 있다는 점을 구단이 높이 평가했다고 전했다. 전임 김병수 감독 경질 이후 선임이 늦어지면서 선수들도 하나둘 이탈하던 시기였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염 감독은 “욕심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감독 대행을 맡았을 때는 그저 팀만 보고 내가 뭐라도 할 수 있는 걸 하자고 생각했다”면서 “그 짧은 기간인 3~4개월 동안 선수들이 많이 바뀐 걸 봤다”고 말했다. 선수들의 훈련 태도, 경기장에서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얻었다. 다른 팀에서 먼저 코치 경험을 하는 것도 생각해봤지만, 이미 감독 대행까지 한 자신을 다른 팀에서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라는 현실적인 판단도 감독직 수락에 작용했다.
우여곡절 끝에 시작한 염기훈 사령탑 체제에서 수원은 환상적인 4월 한 달을 보냈다. 염 감독은 어떻게든 골을 넣으려는 선수들의 공격적인 자세가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봤다. 연패는 했지만 최근 2경기에서도 슈팅 기회를 많이 만들어내는 것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공격수들이 뭔가 급한 모습을 보인다. 최대한 냉정하게 경기에 임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훈련하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며 문제점을 짚었다.
승격에 대한 부담감을 잘 이겨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날 인터뷰 전에도 주장단과 면담을 한 염 감독은 “선수들이 하는 얘기가 비기고 있어도 지는 느낌이 든다고 하더라. 왜냐면 올해는 꼭 이겨야 하고 승격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서라고 한다”고 전했다. 그런 압박감에 먼저 골을 먹거나 골이 안 나올 때 당황하고 실수도 늘고 있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미디어데이 때 무패 승격 호언장담도 선수들의 사기를 끌어 올리기 위해서 한 행동이다. 염 감독은 강등 이후 패배 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선수들에게 자신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는 “요즘은 선수들이 우리 감독이 무슨 얘기를 했는지 다 기사를 찾아본다. 그래서 내가 기자회견 때 강하게 나가야 선수들도 힘을 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만 하고 기자회견장에 갔다”고 말했다.
실제로 겪어본 2부리그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1부보다 더 절박한 선수들이 많다 보니 일대일 경합 상황에서 포기하는 법이 없었고, 경험 많은 감독들의 지략에 당한 적도 있다. 특히 난타전이 될 줄 알았던 부산 아이파크와의 경기는 예상 밖이었다. 부산 박진섭 감독은 다른 팀과 경기할 때는 점유율을 높이 가져가면서 주도하는 경기를 펼쳤지만, 수원전에서는 라인을 내려서서 역습하는 전략으로 승리를 거뒀다. 염 감독은 상황 대처 능력에서는 2부 모든 팀 감독이 자신보다는 높다는 점을 인정했다. 1부에 있을 때와 달리 라인을 내려서 밀집수비를 펼치는 팀들을 뚫는 법을 찾는 것도 과제가 됐다.
“닮고 싶은 감독은 서정원, 디테일은 신태용”
염 감독은 우선 선수들의 신뢰를 먼저 얻는 감독이 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아무리 좋은 전술을 짜도 선수들이 안 따라와 주면 그걸 구현할 수 없다”면서 “최대한 내가 먼저 가식없이 다가가고, 선수들과 웃으면서 지낼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장 닮고 싶은 지도자로는 서정원 청두 룽청(중국) 감독을 꼽았다. 염 감독은 “그때는 서 감독님을 위해서 뛰자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면서 “구단 예산이 줄어드는 시점이었지만 그때 준우승도 두 번 하고 FA컵에서 성적도 좋았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수원은 서 감독 재임기간 중인 2016년과 2019년 FA컵 우승을 차지했다.
신태용 인도네시아 대표팀 감독으로부터는 전술적 디테일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염 감독은 선수 시절인 2017년 신태용 사령탑 체제에서 대표팀으로 뛰면서 일본을 꺾고 동아시안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염 감독은 “신 감독님은 포워드가 여기 있으면 우리가 어디까지 가야 하고, 볼이 여기 있으면 어디까지 내려와 주고까지 정해줬다. 일본과 경기 때 상대 선수들이 볼 차는 것 자체를 엄청나게 힘들어했고, 우리가 정말 많이 볼을 빼앗았다”고 돌아봤다. 염 감독은 오는 18일 부천전을 앞두고는 세세하게 선수들의 상황별 위치를 다시 점검한다는 계획이다.
팬들의 각별한 사랑에 앞으로 경기가 부담되지 않냐는 말에는 “선수 때도 그렇고 그런 응원 때문에 한 발 더 뛴 게 사실이다. 못했을 때 혼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팬분들의 응원 덕분에 지고 있다가 비기는 경기, 비기고 있다가 이기는 경기가 늘었다”며 응원을 부탁했다.
박효재 기자 mann616@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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