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의 ‘전국민 25만원’은 포퓰리즘… 헌법상 ‘처분적 법률’과 달라[Deep Read]

2024. 5. 16.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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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영수의 Deep Read - 처분적 법률
25만원 지급法, 위헌성 큰 ‘집행적 법률’로 봐야… 정부 재정권한 완전 배제로 삼권분립 위배
장래의 손해 고려 없이 현재의 혜택만 노린 포퓰리즘… 재정 악화로 미래세대에 큰 부담 줄 것

한동안 ‘시행령 통치’라면서 법률로 해야 할 것을 시행령으로 하려 한다는 비판이 나오더니, 이제는 정부의 정책으로 해야 할 것을 법률로 하겠다면서 ‘처분적 법률’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법률에 의한 신용사면을 한다거나 처분적 법률로 전 국민에게 25만 원씩 지급하자는 주장 등이 그것이다.

이들은 헌법이 허용하는 처분적 법률과는 거리가 멀다. 이재명 대표가 이끄는 더불어민주당은 헌법상의 처분적 법률을 오독(誤讀)하고 있다.

◇헌법이 말하는 것

민주당은 전 국민 25만 원 지급 법안을 왜 처분적 법률이라고 부를까. 마땅히 행정처분으로 해야 할 것을 법률로 한다는 점에서 그 특수성이 있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위에서 거론된 것들은 정확한 의미의 처분적 법률과는 다르다.

헌법학에서 말하는 처분적 법률(Maßnahmegesetz)은 독일에서 탄생해 국내에서도 많이 사용되는 개념으로, 법률의 일반성이 매우 제한되는 법률을 말한다. 법률이란 원래 헌법 제11조 ‘법 앞의 평등’의 취지에 따라 불특정 다수에게 적용돼야 하며, 그런 의미에서 ‘일반성’이 요구된다. 그런데 일반적 법률 규정에 따라 처리하기에 부적절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특정 사건의 해결을 위해 특별한 법률을 제정하는 상황이 생기며, 이런 특수성을 감안해 이를 처분적 법률이라 부른다.

처분적 법률의 대표적인 예로는 5·18 특별법, 세월호 특별법 등을 들 수 있다. 특정 사건에 대한 조사 및 처벌 등에 대해 여타의 사건에 적용되는 법률들과는 다른 특별한 조사기구의 설치, 특별한 기준의 적용 등이 필요하다고 해서 처분적 법률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자칫 법률의 일반성에 반한다. 즉 ‘법 앞의 평등’에 위배돼 위헌으로 판단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처분적 법률의 경우에도 그 범위가 과도하게 협소한 것은 아니어야 한다. 특정인의 특정 행위를 법률로 직접 단죄하는 개별사건(인)법률은 위헌이라는 점에서 처분적 법률과는 다르다.

이런 취지에서 볼 때 민주당이 전 국민에게 25만 원씩 지급하겠다는 것, 혹은 모든 신용불량자의 기록을 말소하는 신용사면을 하겠다는 것 등은 그 대상이 특정인이나 특정 사건으로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처분적 법률이라고 볼 수 없다.

◇25만 원 의제

민주당이 추진하는 25만 원 법안은 처분적 법률이 아니라 집행적 법률로 봐야 한다. 집행적 법률이 모두 위헌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헌법상 정부의 권한에 속하는 것을 국회가 법률로 무시할 경우엔 삼권분립과의 충돌로 인한 위헌이 문제가 된다. 이 법률은 정부의 재정 권한이 완전히 배제된다는 점에서 위헌 소지가 크다고 볼 수 있다.

또 어떤 정책, 어떤 법률이라도 그로 인해 혜택을 보는 사람과 손해를 보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예컨대 범죄인을 처벌하는 법률은 범죄자들에게는 손해이지만, 범죄의 (잠재적) 피해자들에게는 혜택이기 때문에 정당한 법률로 인정된다.

다만 현재의 혜택만을 생각하고 장래의 손해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매우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재정과 관련된 문제들은 현재의 혜택과 미래의 부담을 합리적으로 조정해야 한다. 각종 지원금을 통한 혜택이 무조건 나쁜 건 아니지만, 그 경우에도 지원금을 지급함으로써 얻는 효과와 재정적자로 인해 미래 세대의 부담이 되는 것들을 합리적으로 조정해야 한다.

따라서 지원금 지급에는 정밀한 계획이 있어야 한다. 국민에게 획일적으로 25만 원을 지급할 경우 어떤 효과가 있을 것인지, 소득 정도에 따라 차등 지급할 경우 어떤 효과가 나타날 것인지, 실질적 지원이 필요한 특정 계층에 지원을 집중할 경우 효과가 어떨지에 대한 섬세한 분석이 필요하다.

또한 이런 재정 집행으로 국가채무를 계속 늘림으로써 미래 세대에 더 큰 부담을 지우는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그 부담의 배분은 어떻게 할 것인지, 이것이 세대 간 갈등을 심화시키는 것은 아닌지 등에 대해서도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요컨대 현재 세대가 25만 원을 받고, 미래 세대가 ‘25만 원+이자’를 갚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충분한 검토와 공감대 형성이 있어야 한다.

◇포퓰리즘은 안 돼

이 때문에 헌법은 재정에 관한 권한을 정부에 주었지만, 국회가 이를 통제하도록 정하고 있다. 헌법 제54조 제1항에서 정부의 예산안에 대해 국회가 심의·확정하도록 하고, 헌법 제58조에서 국채 모집 등에 대해 국회 의결을 얻도록 한 것은 그 때문이다.

거꾸로 국회는 정부 재정을 통제하되 재정권을 직접 행사하려 하면 안 된다. 헌법 제57조에서 국회의 예산 증액이나 새로운 비목 설치를 위해서는 정부 동의를 얻도록 한 것은 이런 취지이다.

이렇게 볼 때 전 국민에게 25만 원씩 지급하자는 주장은 그 효과성 측면이나 공감대 측면에서 근거가 매우 취약하다. 정부의 재정권을 무시하고 국회가 법률로써 재정권을 사실상 행사한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다. 포퓰리즘 정책에 의한 재정 악화라는 후폭풍을 피하기도 어려워질 것이다.

기존에도 기초연금 도입 등과 관련해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이 많았다. 그러나 정부와 국회의 협의에 의해 도입된 것이기에 위헌 논란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런데 정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전 국민에게 25만 원씩 지급하는 법률을 만드는 것에 대해 위헌 주장이 나오는 것은 국회에서 추진하려는 법률 내용이 정부의 재정권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정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국가의 재정 상황이나 지원 효과 등을 고려해 정부가 지원 대상의 범위나 지원 액수·시기 등을 조정할 수 있도록 법률이 만들어진다면 이를 위헌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미래 세대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 정치에는 미래가 없다. 어떤 정책을 포퓰리즘으로 볼 것인지에 대해서는 크고 작은 논란이 따른다. 분명한 건 현재 세대를 위해 미래 세대를 희생시키는 정책은 포퓰리즘이며, 이는 국가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가로막는다는 점이다.

◇책임지는 정치

그러잖아도 최근 저출생·고령화로 인해 미래 세대에 대한 걱정이 많은 시점에 오히려 전 국민 지원금으로 미래 세대의 부담을 키우는 정책이 과연 정당할까. 당장은 지원금 혜택을 받는 국민의 호응을 얻을 수 있을지 몰라도, 머지않은 장래에 이런 정책은 부메랑이 돼 돌아올 수밖에 없다. 미래 세대를 무시하는 정치, 미래 세대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 정치에는 미래가 없다.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헌법학자

■ 용어 설명

‘처분적 법률’은 행정집행이나 사법재판을 매개로 하지 않고 직접 국민에게 권리·의무를 발생케 하는 법률. 헌법재판소 판결(89헌마32)에 의하면 법률이 직접 자동집행력을 갖는 법률을 의미.

‘일반성’은 법률의 규범. 법률이 어느 특정 대상과 사안만 규율 대상으로 하는 게 아니라 법률 구성 요건에 해당하는 유사한 수많은 사안을 지속적으로 규율하므로 이를 일반성·추상성으로 부름.

■ 세줄 요약

헌법상 ‘처분적 법률’: 법률의 일반성이 매우 제한되는 법률. 이는 자칫 ‘법 앞의 평등’에 위배될 수 있어 그 범위가 과도하게 협소해서는 안 됨. 특정인·특정 행위를 법률로 규율하는 개별사건(인)법률은 위헌임.

25만 원 의제 : 민주당의 전 국민 25만 원 법안은 처분적 법률 아닌 집행적 법률로 봐야. ‘집행적 법률’ 자체가 위헌은 아니지만 이것이 정부의 재정 권한을 완전히 배제할 경우, 삼권분립 충돌에 따른 위헌 소지가 커짐.

포퓰리즘은 안 돼 : 25만 원 의제는 국회가 법률로 정부 재정권을 행사한다는 점에서 공감대가 떨어지고 포퓰리즘에 따른 재정 악화도 우려돼. 현재 세대를 위해 미래 세대를 희생시키는 정책은 지속가능 발전의 방해 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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