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그들 평범한 가족, 5·18 그 해 계엄군을 법정에 세웠다

강현석·고귀한 기자 2024. 5. 16.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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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재판서 형사처벌’ 최초 확인
피해자 가족, 증언 모아 범인 특정
전두환에게까지 진정서 보내
5·18 첫 법적 단죄이자 유일 사례
경향신문이 단독 입수한 계엄군 A상사에 대한 군사법원의 판결문. 법원은 시민 김형진씨에게 대검을 휘둘러 구속 기속된 포병학교 소속 A상사에게 1980년 8월25일 징역 2년을 선고했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 때 무고한 시민에게 대검을 휘두른 계엄군이 그해 8월 군사재판에서 형사처벌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5·18 기간 시민을 상대로 잔혹한 범죄를 저지른 계엄군이 법적 처벌을 받은 첫 사례이자 유일한 사례다. 44년 전 계엄군에 대한 단죄를 이끈 것은 국가, 사회가 아니라 ‘가족’이었다.

경향신문은 1980년 8월25일 진행된 A상사(당시 36세)의 ‘전교사(전투병과교육사령부) 보통 군법회의 판결문’을 최근 입수했다. 군사법원은 그날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중상해)’으로 구속 기소된 포병학교 소속 A상사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다.

판결문을 보면 5·18 기간 ‘광주사태 진압 잠정중대(임시 편성 부대) 선임하사’로 근무한 A상사는 5월23일 오후 3시쯤 전남 광산군 송정읍 신촌리 동부파출소 앞(현 광주 광산구)에서 김형진씨(당시 29세)를 M16 소총에 착검한 대검으로 여러 차례 찔렀다.

계엄군은 5월21일 오후부터 광주 외곽을 봉쇄해 고립시키는 작전을 폈고, 포병학교도 송정읍 지역을 차단하며 시민 통행을 막았다. 김씨는 고향 나주 영산포로 가려고 이곳을 찾았다가 계엄군에게 ‘통행이 언제 가능한지’를 물었다고 한다. 이때 A상사는 작전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격분하며 위협했다. 김씨가 인근 식당으로 도망치자 뒤쫓아 와 착검된 대검으로 가슴을 찔렀다. 김씨가 식당 밖으로 다시 도망가자 이번에는 김씨 왼쪽 다리에 대검을 박았다.

중상을 입은 김씨는 긴급 수술을 위해 국군광주통합병원으로 이송됐다. 그는 배부자상과 우측혈흉, 폐 절단, 늑간동맥 파열 등 진단을 받고 폐 절제 수술 등을 받았다. 6월20일까지 국군통합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조선대병원으로 옮겼지만 병원비가 없어 7월5일 퇴원해야 했다.

가족들은 대낮에 벌어진 계엄군의 잔혹행위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당시 상황을 목격한 시민들을 통해 A상사의 신원을 특정했다. 1980년 6월24일 광주·전남 계엄분소장인 소준열 전교사령관에게 탄원서를 냈다. 당시 전두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상임위원장에게도 진정서를 보냈다.

전교사 헌병대는 김씨의 큰형 무정씨가 제출한 탄원서를 토대로 A상사를 6월27일 구속했다. 헌병대는 A상사에게 중상해 혐의를 적용해 전교사 계엄 보통군사법원에 구속 송치했다.

A상사는 징역 2년 형 선고 나흘 만에 군법재판 관할관인 소준열 전교사령관으로부터 ‘형 집행 면제’를 받았다. 60일 동안 구속된 A상사는 이등병으로 강등된 뒤 전역한 사실을 취재로 확인했다. 피해자 김씨는 퇴원 뒤 호흡곤란 등 후유증을 겪다가 1983년 11월4일 사망했다.

김희송 전남대 5·18연구소 교수는 당시 선고 의미를 두고 “목격자가 많고 범죄가 명확하니 계엄군도 A상사를 처벌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면서 “엄혹한 시절, 불이익을 감수한 가족들의 용기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5·18 연구자인 노영기 조선대 교수는 “이 사건은 당시 공수부대뿐 아니라 일반부대 소속 계엄군들도 대낮에 대검으로 시민들을 거리낌 없이 찔렀을 정도로 반인륜적 범죄가 만연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A상사처럼 잔혹한 범죄를 저질렀던 다른 계엄군도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앞서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광주 주남마을과 송암동 지역에서 시민들을 즉결 처형한 계엄군 여러 명여러 명의 신원을 특정했다.

5·18조사위 위원인 민병로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5·18진상규명 특별법은 ‘조사 결과 범죄행위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 위원회가 검찰총장에게 고발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면서 “명확한 범죄행위에 대해서는 지금이라도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현석 기자 kaja@kyunghyang.com, 고귀한 기자 g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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